1월1일 형님이 문병을 왔습니다.
같이 식사를 하고나서 갑자기 물었습니다.
이제 다시 생업을 위해 일도 해야 할것이고
집사람도 집으로 돌아가야 할텐데 어떤 준비를 하느냐고...
사실 순간 당황했습니다.
몇 번이나 생각해본 일이지만 그야말로 생각만 이었지
아직 그것이 곧 일어날 현실로 마음에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니 대답할 말이 없었습니다.
‘돌아갈 집이 어디 있어야지,
지금 아이가 있는 컨테이너는 집사람이 지내기는 정말 힘든 곳이야
화장실 문제며 문마다 턱이 많고
집으로 들어가고 나오는 경사 길도 업고 오르내려야하지
만약 돌아간다면 평지에 조그만 조립식 원룸이라도 지어서
침대 화장실 부엌 운동기구를 다 배치를 해야 생활할 수 있을거야
그보다 돌아갈 정도만 되기만 해도 좋겠다.
그럼 행복한 고민일텐데...‘
기껏 그러고 말았습니다.
교회도 다니지 않고 믿음도 없는 형에게서 들은 말입니다.
나아질 것을 믿는지 생활대책을 세워야한다는 걱정에서 나온 말인지
좀 애매하기는 하지만...
그러고보니 그 이야기를 처음 듣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곳 병원 예배를 인도하러 오시는 선교팀의 목사님도
주일 아침 병실로 와서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이제 올해 안으로 집으로 돌아가서 아내 손으로 밥을 지어 가족들과
먹을 것이라고!
이제는 더 이상 무엇을 달라거나 병낫기를 기도하지말고
감사하는 기도만 하라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기도 중에 받은 내용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자주 말도 안한 것들을 기도를 통해 알아내시며 대답을 들려주셔서
몇 번이나 놀란 목사님이십니다.
또 한 번은 오륜교회에서 문병오신 부목사님과 장로님의 입을 통해
곧 나으시면 우리 교회에도 오셔서 간증을 하셔야지요? 하면서
그렇게 기도하시겠다는 말씀을 놓고 가셨습니다.
다른 분들은 다 나을 것과 다음 일들을 말씀하시는데
제 속에서는 그런 기대나 비전도 없었던 것일까요?
아님 믿음이 없는 사람처럼 의심을 하는걸까요?
부끄럽고 다시 돌이켜봅니다.
오늘 새벽기도회 말씀이 주님이 제자들과 고향으로 돌아가
회당에서 말씀도 전하고 병자도 고치는 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두들 그 말씀의 지혜와 권능을 인정하면서도
그들은 끝내 주님을 야고보와 요한과 시몬과 유다의 형제이며,
여자 누이들의 오라비이고 목수 요셉의 아들로만 보았습니다.
또한 성장하는 어린 시절을 다 기억하는 만만한 사람으로만
몰고가면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예수님도 어쩌지 못하며 선지자가 고향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오래된 구습을 말하면서 소수의 병만 고치고 떠납니다.
예수님은 믿지않는 고향의사람들을 이상히 여기셨다! 그랬습니다
(마가복음 6장 1절-6절)
그렇습니다.
저도 어쩌면 예수님의 고향인지도 모릅니다.
당연한 듯 하면서도 믿지 않는 형제보다 설마 낫겠냐며 불신하고 있고
남도 바라는 회복과 감사의 생활을 뒤로 미루기만하고 무겁게 지내는
내 깊은 마음 속 믿음은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과 같을지도 모릅니다.
지난 힘든 기억에 발이 묶이고 알량한 의학지식에 더 솔깃해져버린
누구의 아들 형제로 기어이 끌어내려 평범한 사람으로 만들어야 속이 시원해지는
그런 이상한 고향사람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릅니다.
‘내 주제를 봐! 가진 것도 쥐뿔 없고 수시로 변덕스런 믿음이나
좋은 말만 늘어놓지 실천도 못하고 속과 겉도 다르게 살잖아?
형편없는 배경이며 볼폼없는 외모 건강, 뭐 하나 내세울 것 있다고
아름다운 주님의 형제요 고향 성전처럼 여기냐고!‘
그렇게 자신을 끌어내립니다.
비하하고 열등감과 포기 불신으로 뭉쳐서 홀대를 합니다.
문제는 그 마음을 자신에게만 향하는게 아니라 습관이 되어
다른 이들에게도 무의식중에 휘두른다는 겁니다.
사랑스런 자녀들에게도 문득 그렇게 보고 있는 나를 느낍니다.
취향이 다른 신앙인들과 목회자의 설교에도 그렇게 적용을 하기도합니다.
비전과 자존심 자애감 기대를 가지고 존귀하게 보면서
순결하고 신성한 영혼으로 자꾸 믿어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제 다시 마음 청소를 해야겠습니다.
은연중에 자신을 멸시하고 천하게 보던 나쁜 방향을 버리고
겸손을 가장한 사탄의 종노릇 유혹을 뿌리쳐야겠습니다.
비록 현실이나 객관적 여건이 그렇다 하더라도
주님이 나를 고향이라고 찾아오시고 성전이라고 인정해주신다면
내 속에도 그런 고요하고 신성한 처소가 될 자격이 있습니다.
주님이 능력도 있으시고 순결하시고 품위가 있는 분이시니까요.
당연히 나만 그럴 자격이 있는게 아니고 내 자식들과 남의 자식들,
다른 신앙인들에게도 있음을 인정하고 그리 보아주어야겠습니다.
당신은 주님의 고향입니다! 성전입니다! 라고,
이제 올해안으로 돌아갈 집이던 움막이던 생길거라 믿습니다.
그곳이 어디든 불평하지도 비관하지도 않겠습니다.
감사로 떠나고 감사로 머물러야겠습니다.
기도회중에 부른 찬송이 가슴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슬픔 많은 이 세상이 변하는 것은 슬픈일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슬픈 일 없던 과거도 행복하지 못했고,
지금 안 슬픈 사람들이 반드시 다 행복하지 못한 것을 보면
-내 영혼이 은총입어 중한 죄짐 벗고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이 말이 맞습니다. 중한 죄짐을 벗는 길이
슬픈 세상이 변하여 천국이 되는 것이 분명합니다.
날마다 부르짖고 빨리 가고 싶다던 하늘나라
힘들고 막막할 때마다 어서 데려가주셔서 하늘나라에 살게 해달라고
떼를 쓰며 한숨짖던 기도를 드렸는데
-주의 얼굴 뵙기 전에 멀리 뵈던 하늘나라
내 맘속에 이뤄지니 날로 날로 가깝도다!
주의 얼굴을 종일토록 그리워하며 내 맘속에 담다보니
평안함도 자주 오고 위로도 자주 느낍니다.
치과에서 이를 갈아내는 신경치료를 하면서도 주님도 아프셨겠지
건강검진 받으면서 위내시경 호스가 속으로 들어갈때도
주님은 몇십배 더 힘든 채찍과 피를 흫리셨는데... 하며 묵상으로
동행했습니다.
그러다보니 하늘나라가 가까이 오는 만남도 느꼈습니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
그 어디나 하늘나라인데 병원만 아닐 까닭 없습니다.
컨테이너나 월세방이나 심지어 요양소인들 내 주 예수만
내 맘속에 모신다면 어디인들 하늘나라라고 하시잖아요.
오늘도 새벽 찬바람에 따뜻하게 품속으로 들어오신 주님과
길을 나와서 병원으로 돌아왔습니다.
모르지요. 이 기운이 한시간만에 깨어질지
하루종일을 버텨주고 입에 찬송을 달고 살게 해주실지는!
그래도 감사를 드립니다. 날마다 또 오시는 임마누엘 주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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