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누가복음 17장
11.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12. 한 촌에 들어가시니 문둥병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13. 소리를 높여 가로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거늘>
연봉이 많지도 못하고, 물려받은 유산도 없으며,
그렇다고 어느 한 분야에서 뛰어난 인정도 받지 못하는 사람
하버드도 민사고나 서울대도 근처를 못가본 사람
부모에게서는 가난을 물려 받고
자녀에게는 무능력한 기억을 남겨줄 수 밖에 없는 사람
여기까지만 해도 그래도 꽤 많은 사람들이 포함되고
가난하지만 정직하게 살았다 뭐 그런 위로를 하면서 견딜 만한데
치명적인 병까지 더 보탠다면?
쉽게 낫지도 못하고 있는 거미줄까지 내다 팔아야 하는
그런 불치병 혹독한 세월을 끌려다니며 바닥을 털린다면??
차마 같은 처지에! 라는 말도 꺼내지 못하여 멀찌감치 물러선다.
마치 문둥병자 판정을 받고 마을에서 추방당한 사람마냥...
다른 이들이 쉽게 하는 기도조차 따라 못하고
눈을 피해 몰래 데굴 구르며 눈물로 통곡하며 드리는 기도
소리를 죽여도 자꾸만 비틀어지는 고음으로 새나오는
‘예수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2]
<누가복음 17장
14. 보시고 가라사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저희가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
정말 길이 있을까?
있다한들 내가 감당할 수나 있을까?
날고 기는 사람들도 펑펑 나가떨어지고
보따리 돈가방 들고 좋은 병원 실력 있는 의사를 특별진료로 받으며
온갖 몸에 좋은 음식과 좋은 간병인의 돌봄을 받으며
다른 아무 걱정도 안하는 사람도 결국 문을 닫고 끝을 보던데
우리같이 멀리서 손놓고 작아진 형편에 가당키나 할까?
이 어렵다는 바늘구멍 같은 회복의 확률이...
...그런데
보셨다!
이게 웬 횡재냐! 둘러싼 무리들에 가리워져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을 거라 한편으론 자신 없고
가까이 옆에 뒤에 따라다녀도 되는 저네들이 부럽다 한탄도 했지만
소리 높여 부른 간곡함에 고개를 돌리셨다!
게다가 한 말씀도 하셨다! 가라사대~~
그러니 가볼 수밖에! 시작해볼 수밖에!
될지 안될지 아무도 보장하지 않고, 사례도 흔치 않지만
해보라!고 하시니, 가서 치료를 시작하라 하시니!
빈 손 일지라도 가고, 높은 벽이 막고 서있을지라도 가고!
병든 곳을 보지 말고, 더 망한 사례들을 기억치 말고!
멀리서 들려 온 그 말씀 하나 믿고 무작정 달려가는데...
할렐루야! 가는 중간에 쏟아진 축복!
10% 20% 사이를 오가며 흥정하듯 기대하라던 회복이
죽음의 사선을 넘어 안도의 동산으로 정착했다.
[3]
<누가복음 17장
15. 그 중에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16. 예수의 발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 저는 사마리아인이라 >
어떻게 이 사실을 부인하랴!
빠른 속도로 빛 한줄기 없는 탄광의 무저갱 같은 곳으로
날마다 떨어지기만 하던 조짐이 덜컥 멈추어버렸음을!
그 추락으로 이곳저곳 비록 상처는 남기는 했지만
암흑의 두려움도 사라지고 극심한 통증도 멈춘 것을 눈으로 보는데
어떻게 영광을 돌리지 않으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행여나 잊을까봐 외우다시피 반복하며 성전에 무릎 꿇고 기도했다.
예전에 모든 일은 눈에 보일 때만 믿든 것을 반성하며!
계산이 가능해야만 시작하던 고지식함을 부끄럽게 버리며!
그보다 더 큰 어떤 법칙이 나와 세상을 둘러싸고 진행되고 있음을
설명은 못해도 있음을 분명히 고백하면서!
그렇게 이전의 나는 믿음의 밖에서 산 이방인이었다.
사마리아에 사는 사람만 이방인이라던 편견을 깨고
갈릴리에 산다고 큰소리 쳤던 나도 이방인이었음을 자백했다.
[4]
<누가복음 17장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18.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이게 끝인 줄 알았는데 끝이 아니라니...
죽고 사는 몸의 병만 나으면 이 세상의 문제는 끝나는 줄 알았다.
비록 아홉의 감사는 잊어버리고 사라졌다고 한들
이미 회복된 복을 받았으니 무슨 대수랴! 싶었는데,
아니란다!
그게 정작 중요한 복이 아니고 진짜 중요한 복이 따로 있단다.
몸의 일부가 낫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되는
통째로, 그것도 시한부가 아닌 영원한 회복을 받는 복이라니!
구원이란다! 감사와 믿음 있는 자에게 주는 감당 못할 축복의 구원!!
아! 그냥 그길로 무시하고 사라져버린 아홉은 어쩌나??
난 그 아홉인가, 돌아 온 하나인가?
아니! 평상시에 난 아홉을 잊어 먹고 사는 쪽인가?
하나에도 감사하며 돌아와서 무릎을 꿇으며 사는 쪽인가?
걸핏하면 가진 것, 이미 얻은 것보다 없는 것으로 입 다물거나
혹은 불평을 그치지 않는 난 아홉의 편이 아니던가?
그저 몸만 나으면 장땡인줄 알고,
그것이 최후의 복인 줄만 알고 촉싹거리며 천방지축으로 뛰어 가버리는
그 아홉이 아니던가!
세상엔 4가지 사람이 있다고 했던가?
몸만 낫고 구원은 못 받은 사람
몸도 낫고 구원도 받은 사람
몸은 낫지 못해도 구원은 받은 사람
몸도 못 낫고 구우너도 못 받은 사람
...난 어느 부류의 사람이던가?
아직 회복의 끝은 오지 않았으니
4가지 중 어느 것도 가능한 여로에 있는 사람일까?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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