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끄적/길을 가는 사람...

‘나 아니면 살지도 못하는 처지면서…’

희망으로 2022. 3. 11. 23:24


‘나 아니면 살지도 못하는 처지면서…’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후회중에 괜찮은 후회나 좋은 후회는 없다지만 
더구나 약자를 상대로 한 후회는 더 쓰라리다

사소한 일로 아내와 말다툼을 했다
대부분이 그렇듯 사소한 일…
동아시아의 평화나 지구의 운명이 걸린
그런 거창한 주제로 싸운 적은 한 번도 없다
서로 자기 주장을 점점 세게 내세우다 감정이 섞여
마침내 눈물 펑펑 흘리는 순간까지 갔다

오래동안 자주 그랬던 나는 또 입 다물어야 했다. 
시시비비도 잘잘못도 덮어놓고 내가 지는 마무리
아내가 심하게 아픈 이후로 다투면 늘 그랬다
싸운 그 뒤로 불편한 감정이 가시지 않아 힘들었다
종일 냉전까지는 아니지만 말을 닫고 지냈다
이런 상황이 싫어 화도 나고 피곤해졌다

‘나 아니면 살지도 못하는 처지면서…’

갑자기, 정말 불쑥 속에서 이런 말이 올라왔다
목에서 급히 닫아서 나오지는 않고 도로 내려 갔다
구사일생 다행히… 라고 스스로를 달랬다
사실 아내의 상태는 현실적으로는 틀린 말이 아니다
나 아니면 사흘을 못넘기고 생존이 위태로울 수 있다
중증환자인 아내는 그렇게 나의 도움으로 연명중이다
물론 돈이나 요양원 도움을 받으면 조금은 더 버티겠지만…

‘나 아니면 살지도 못하는 처지면서…’
만일 그 말이 입밖으로 나와 아내에게 전달되었다면
그 가시는 필경 아내를 찔러 피투성이로 만들었을거다
입에서는 멈추었지만… 어쩌면 이미 늦었는지도 모른다
그 가시는 아내를 찌르지 않았지만 이미 나는 찔렸다
그리고 나만이 아니라 내게 실망한 하나님도 찔렸다
서로 다른 이유로 나도 하나님도 상처가 났다

‘니는? 니는 남들이 외면하고, 
하늘이 외면하면 혼자서도 살아 남기는 하고?’

그렇게 부메랑처럼 나를 때리는 돌망치가 되고
큰 가시가 되어 나를 찔러 많이 부끄럽고 아팠다
그 말은 그냥 지어낸 조롱이 아니고 사실에 가까워서 
그래서 더 잔인하고 벌받을 말이었다.
살면서 약자에게 해서는 안될 말이 싹이 나버렸다 
이런 생각의 뿌리는 악하다. 분명 악마가 부추겼다

‘나 아니면 살지도 못하는…’ 처지의 사람을 향한 악담 
모두 절대 해서는 안될 이 금기어를 조심하시라
누구와 다투다가 감정이 불편하다고 쌓였다고
이런 말을 날카로운 가시로 내뱉으면 정말 일이 커진다
한 번 다치거나 이 땅에서 죽는 걸로 끝나지 않고
다음 세상에서 아주 오래가는 큰 대가를 치를 수도 있다
당장은 사랑하는이의 눈물 복수를 고문처럼 당하면서
긴 시간을 가슴치며 후회를 할 지도 모르고…

(자주 느끼지만 잘 싸우는 건 정말 중요하다
어디서 싸우는 법 좀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
휘두르는 칼로 나부터 다치는 초보자를 벗어나
잘 싸우고 나면 땅이 굳어지듯 서로를 더 이해하는
계단 하나를 올라서는 그런 멋진 싸움의 기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