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걷습니다>
하늘은 잔뜩 찌푸리고 습기가 많이 베인 공기를 느끼며
오늘도 병원 옥상에서 한시간이 좀 넘도록 걸었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코로나로 갇혀 바깥 출입이 금지된 생활을
견디느라 유일한 바깥이 된 옥상으로 올라와서 운동을 합니다
어서 이 통제가 끝나고 개천을 따라 걷다가
아파트 옆으로 붙은 작은 동산도 오르내리고
아이들 웃음소리가 수시로 들리는 초등학교 운동장도 몇바퀴 도는
그 일상이 허락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대단한 자유를 달라는 것도 아니고 긴 시간도 아닌 겨우 한 시간에서
한시간 반 남짓 날마다 숨도 쉬고 몸과 마음의 스트레스도 풀겠다는데
세상은 그걸 허락해주지 않습니다.
돌아보니 의사도 간호사도 아니고 직업도 아닌데
병원건물안에서 24시간을 보내며 산지가 벌써 12년을 넘어갑니다
그동안 온갖 별별일을 감당하면서도 그럭저럭 버티고 살아온
여러 도움과 이유중에 하나는 걷고 또 걸으며 산 습관 같습니다
쌓이는 여러 고통과 두려움과 운동부족으로 오는 질병의 위험도
걷고 걸으며 털어내고 새로운 마음으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걸으며 기도하고 걸으며 노래하고 걸으며 울기도 웃기도 했습니다
나설 때 무겁게 누르던 여러 걱정과 미운 마음과 바닥난 의욕들이
나중에는 나도 모르게 한결 무심해집니다.
길가의 풍경들과 스치는 사람들, 노래에 빠지기도하고
여러 상상과 감정들이 몰려오고 밀려나가고 하면 잔잔해집니다
그저 다리가 아프고 배가 고프고 하늘이 바람이 익숙하게 하나됩니다
늘 대책은 새로운 방법이 아니고 그저 비우기만 해도 되는걸 알게 됩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아내가 아프기전에도 걷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직장생활에 쌓인 스트레스도 걷는 즐거움으로 많이 풀었습니다
어느 때는 무박2일 걷는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작은 가방에 노래 담긴 카세트와 수첩한권 물하나와 간식 조금이면 끝!
그렇게 떠나는 연중행사가 작은 즐거움이기도 했습니다.
사는 동안 어디 속상하고 막히고 억울한 일이 한두가지겠습니까?
당장 안풀리는 일도 있고 대책없이 그냥 안고 같이 살아가야할 사람도 있고
방법을 알아도 힘이 모자라서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일상입니다
그냥 살면 살아지고 어느날 나아지거나 익숙해지거나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당장 골몰해지면 병이 나고 못견뎌 큰 탈이 나기도 합니다
삶이란게 그런 것 같습니다.
내게 큰 자산이나 재능을 안주신 하나님이 서운하다가도
한가지 고마운 사실을 인정하면 고개가 숙여지고 미소가 나옵니다
제게 걷는 일을 즐거움으로 주시고 그 정도는 할 수 있는 건강을 주신 점
그 은총이 세월이 갈수록 귀한 선물이라 감사가 넘칩니다.
‘캄캄한 밤에 다닐지라도’
찬송가를 들으며 걷다가 문득 그 장면이 그려지고 상상이 됩니다
만약 눈을 가리고 절벽을 걷는다면...
과연 무사히 걸어갈 수 있을까요?
한 발 한 발 앞으로 내딛을 때마다 심장을 조이는 불안과
현기증이 날 막막한 두려움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눈을 천으로 가리면 평지도 더듬는데
천길 낭떠러지 위를 걸어간다면…
칠흑같이 어두운데 조명하나 없는 골목길을 걸어본 기억도 있습니다
그 상황이 마치 눈 가리고 절벽길을 걷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때로는 우리 사는 하루하루가 그렇고 지나고 돌아보니 또 그랬습니다
사방이 지뢰고 구덩이에 아차 했으면 걸려들었을 올무들이 널려 있었는데
무사히 오늘 여기까지 온 것이 소름이 끼치도록 감사합니다
‘주께서 나의 길 되시며
나에게 밝은 빛이 되시니
길 잃어 버릴 염려없네’
뒤로 이어지는 가사가 안심이 됩니다
그랬나봅니다. 정말 그 덕분인가 봅니다!
오늘도 내일도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겠다는
윤동주나 사도바울의 마음이 떠오릅니다.
어쩌면 속으로 이 노래 가사를 생각하며 한 말인지도 모릅니다!
2021.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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