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끄적/길을 가는 사람...

지금은 시험을 치는 중입니다

희망으로 2021. 7. 26. 09:43

 

<지금은 시험 치는 중입니다>

 

“여보, 내가 좋은 속옷을 찾았어! 주문했으니까 곧 올거야!”

반가워 할줄로만 예상했던 아내가 애매한 표정으로 그랬습니다

“자꾸 좋은 것 찾고 새거 사고 하지마, 그럼 더 살아야하잖아”

그 말 뒤에는 아내가 하지 않은 말이 내 귀에는 들렸습니다

“그럼 당신 고생이 더 길어지잖아...”

“무슨 소리야! 진짜 그럴 수만 있다면 내가 트럭으로 사오겠다! 

당신이 오래 오래 살수 있다면~”

그러나 한편 다른 생각이 스쳤습니다.

아픈 채로 오래 살게 하는 것이 정말로 아내를 사랑하고 위하는 것인지 

아직도 확실한 자신감은 없습니다

 

아내는 희귀난치병 발병시기에 너무 심한 상태로 전신마비가 오면서

배변과 소변을 담당하는 방광신경이 마비되어버렸습니다.

그 후 배변은 일정한 시간 간격으로 좌약을 넣고 빼내기도 했습니다.

소변은 그냥 주루룩 새는 바람에 약으로 강제로 막고 있습니다 

소변주머니를 달고 살 수도 있지만 방광염이 너무 자주 와서 못합니다

3시간 정도 간격으로 고무로 된 넬라톤카테타라는 호스로 빼내며 살고 있습니다 

어느 때는 소변이 새나옵니다 특히 방광염이 오면 영락없이 줄줄 샙니다 

그 처참한 상황이 무서워 오래 기저귀를 차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기저귀 부작용으로 피부가 습진과 발진이 너무 심해 그것도 못하고

좀 작은 생리대를 사용하여 실금을 해결하며 조심조심 지내봅니다 

그러다 요즘 실금하는 분들을 위한 좋은 팬티가 나왔기에 주문했습니다 

일회용이 아닌 계속 세탁해서 사용 가능한 흡수재가 들어간 속옷!

그걸 구입했다는 말을 했더니 아내가 고맙다는 건지 미안하다는 건지

동시에 느껴지는 복잡한 감정을 그렇게 대답합니다

 

그런 비슷한 종류가 부지기수입니다

목욕을 위한 휠체어를 따로 구입을 한다거나

병원이 아닌 집에서 밥을 먹기 위한 높낮이 조절이 가능한 테이블과

크고 작은 중증 장애 상태로 일상을 살아내기 위한 도구들,

욕창 방지나 치료를 위한 의료용품과 통증 혈액순환을 돕는 의료보조기와

생리대사를 돕고 식욕부진을 해결할 건강식품들을 찾아내고 삽니다.

아내는 그럴 때마다 비용을 걱정하며 미안해합니다

꼭 필요하고 도움이 되어 고맙기도하면서 동시에 가지는 심정입니다

오래 살아서 너무 고생을 시키고 생활비를 축낸다는 자책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정말 잘하는 대책인지 언제까지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노력의 덕분인지 의학적으로 살 수 있다는 이 질병의 평균 수명을 

두 배나 넘기고 아내는 아직 살아있습니다

담당의사선생님이 학계발표회때도 아내 상태가 기적에 가깝다고 

다른 동료의사선생님들께 듣는다고 말해주셨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한가지 궁금한 것이 생겼습니다

문득 지금 나와 아내는 시험을 치르는 시간중이 아닐까 하는...

시험이 아니면 실험을 하는 중인지도 모르고요

내가 나를 언제까지  포기하지 않고  사랑할 수 있는지를 보는 시험,

부부라는 이름으로 묶어준 것을 언제까지 보듬고 살아갈 수 있는지,

언제까지 내가 하나님을 신뢰하며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는지,

혹은 반대로 하나님이 내게 언제까지 실망치 않을 수 있는지,

그 실험을 하는 중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사탄이 허락을 받고 욥을 테스트하던 성경의 장면들이 떠오릅니다

그 시험을 잘 마친 욥은 나중에 다시 이전보다 큰 복을 받으며 회복하고

하나님을 자랑스럽게 증거하며 사탄의 코를 납짝하게 만들었습니다.

나는? 아내는? 그 시험, 혹은 실험을 잘 마칠 수 있을지 불안합니다

부디 이 시험 시간이 다 지나고 ‘딩동댕!’ 종료 벨이 울렸으면 좋겠습니다

몇점을 받던 지, 통과를 하거나 탈락을 하거나 결정이 나겠지요?

시험은 늘 어렵고 위태롭습니다. 때려치우면 망하는 것을 알면서

준비하고 해결하고 마칠때까지 최선을 다해야하는 대상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주어진 과목과 상황을 마주하며 살아갑니다

긴 시험, 높은 산을 넘는 것 같은 실험의 인생을 통과중입니다

부디 깨부수지말고 등돌리지말고 아는 만큼, 

가능한 만큼 최선을 다해 잘 치러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시험은 결과도 중요하지만 같이 입실하여 머리싸매고 애쓰는

시험, 실험의 동무와 같이 걷는 귀중한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눈물과 웃음, 평안과 고통, 감사와 원망이 수시로 변덕스럽게

우리를 때리고 가는 동안 같이 쌓아가는 소중한 추억들입니다

어떤 때는 결과보다 지금 이 과정이 눈물겹게 애틋하여 더 뭉클해집니다

그까짓 결과가 무슨 상관있습니까! 점수 얼마! 그렇게 적힌 답안지나

벽에 붙은 발표지보다 과정을 백배는 높게 봐주실지도 모르잖아요?

시험을 치르고 있는 이 순간의 나도 아내도 모두도 생생한 생명입니다

피가 뜨겁고 따뜻한 체온 보드러운 살을 가진 사람이고 

꿈이 아닌 분명한 과학과 같은 생시입니다!

자주 괴롭고 가시에 찔려 피흘리는 고통이 따라오지만...

나지막하지만 확신하는 심정으로 속으로 다짐해봅니다.

 

‘우리 부부는 지금 몇교시인지 모를 시험을 열심히 치고 있습니다!’

 

2021.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