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이 한번은 지고 다시 일어나지 못한다>
모든 사람은 죽음을 맞이 한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삶을 죽기전까지는 누린다.
살아 있는 동안 각종 생명, 삶을 위협하는 일들을 마주 한다.
작고 큰 질병들, 내가 직접 원인이 아닌데도 휩쓸리는 전쟁들,
너무 덥거나 너무 추운 날씨의 재앙, 수십년 수백년 만의 폭우나 가뭄,
사실 그런 모두가 인정하는 보이는 것들 외에도?
사람들은 개인만의 고독, 갈등, 사고 등 고비를 수도 없이 넘기며 산다.
어떤 점에서는 그 위험들을 안죽고 넘기며 사는 게 기적으로 보일 정도다.
알고 넘기는 것 모르고 넘기는 것 모두 영화처럼 본다면 인정할거다.
그러니 사람의 일생이란, 생명이란 얼마나 대단한 승리의 연속인가!
그 숱한 위험과 고통과 극심한 절망들을 다 견디고 다음날을 맞이한다는 건.
그 힘이 어디서 나오는걸까?
세포와 유전자에 담긴 긍정의 동력이라도 있는 것일까?
가족과 명예와 소유에 대한 집착이 그 모든 고비를 견디고 이기게하는 걸까?
아님 종교적 명령이나 신의 강제적 구조가 늘 힘을 발휘하는 걸까?
아이들이 신생아로 태어나 첫 울음을 세상에 내놓는 순간 여러 감정이 느껴진다.
귀하고 사랑받을 앞날과 어떤 일과 결과를 세상에 내놓을지 기대와
순간 순간 심지어는 본인도 놀랄 말과 행동, 감정을 보여주는 신비까지!
그래서 새로운 생명의 출현에는 두근거림과 반가움이 어마하게 따라 온다.
또 하나의 감정은 살면서 평생 겪을 고초와 ?이별의 상처 등 어두운 예상이다.
오죽하면 “왜 태어났니? 왜 태어났니?” 라는 노래 비슷한 자조의 말이 있을까.
그럼에도... 생명은 아름답고 강하고 신비하다.
늘 숱한 끔찍한 위기와 고독한 내면의 본성을 평생 달고 다니면서도
하루라는 단위로 삶을 줄기차게 이기고 사는 눈물겨운 결과를 보면.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진실이 있음을 우리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모든 사람이 피할 수 없는 순간이 온다는 것.?
늘 이기며 극복하며 살지만 딱 한번은 지고 넘어지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는?
패배가 온다는 진실이다. 아무리 의지가 강하고 욕심을 비운다 해도
아무도 피하지 못하는 법칙과 같은 죽음을 받아들이는 딱 한번의 패배.
다시는 숨을 이어가지 못하고 일어나 앉지 못하며 밥은 고사하고 물한모금 못먹고
사랑하는 이에게 말을 건네지 못하게 되는 그런 순간이.
그러니까 늘 이기고 다시 시작하는 동안 우리는 삶이라하고 생명이라 부르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고 이어가지 못하는 그 순간을 죽음이라 부르는 것이다.
영원한 이별, 죽음은 두번도 겪지 못하는 단 한번의 패배다.
그것을 예상하고 인정하며 기다리며 사는 것이 삶이고 생명이다.
그럼에도 웃고 기뻐하며 감사하고 나누며 사는 삶이 아름다운 것이다.
그렇지 뭇하고 다가오는 시간때문에 두렵고 슬프고 흔들리는 것이 좌절이다.
불안이고 원망이며 근심이다. 모른척 사는 것이 어리석음이고 욕망이다.
미리 보며 발이 얼어붙는 것이 두려움이고 공포고 정신질환이 된다.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이 말했다. 수고하고 땀흘리다가 반드시 죽으리라! 고...
그러니 딱 한번의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패배로 죽을 것을 알고도 사는 것이
순종이고 지혜고 평안이다. 그런 후에야 다시는 죽지 않게 해주신고 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업적과 명성과 관계를 만든다해도 다 놓고 소멸된다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은 얻지 못한다.
첫번째 단추, 첫번째 계단을 올바르게 채우고 딛지 않고는 그 다음으로
제대로 채우지도 걷지도 못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지 않을까?
자주 씨름한다. 아직 오지 않은 그 단 한번의 패배,?
넘어지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는 그 경우를 온전히 인정못해서
늘 안절부절 두렵고 불안에 빠진다.?
그나마 오지도 않은 삶 생명의 날조차 흔들리며 산다.
이루지 못한 것, 모자라서 접어야 하는 대상들, 이별로 생긴 아픔
그런 여러가지를 미움과 의문 투성이로 만들면서 허우적 거린다.
괴테가 임종하면서 외친 ‘좀 더 빛을!’ 구한 의미가 그런 것 아니었을까?
신앙인들이 마지막 순간에 하나님께 미안하고 회개하면서 구하는 용서가
또한 미리 그러지 못했다는 의미가 아닐까?
단 한번의 패배, 영원한 평안을 주기 위해 반드시 치르는 과정을
절대로 안겪겠다고, 수용 못한다고 몸부림치는 일생이 우울해지는게?
또한 그래서 아닐까?
고맙고 다행이라 여기는 것은 그 패배가 결코 두 번은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얼마나 감사한가! 그 모든 상실과 소멸과 슬픔과 아픈 과정이 단 한번이니!
조금은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지 않을까 겨자씨만큼 마음이 움직인다.
이 겨자씨가 좀 더 자라 작은 나무가 되고 큼직해지기를 바란다.
물 주고 햇빛과 바람, 필요하다면 어둠과 추위를 교대로 감수할 일이다.
* 이미지는 겨자씨 한알과 겨자나무
2020.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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