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투병일기

간병일기 3010일째 - 재수없어서 걸렸다?

희망으로 2016. 8. 8. 11:43
<간병일기 3010일째 - 재수없어서 걸렸다?>

2시, 

"나 소변...."
"아...졸립다"

4시 30분,

"나..."
"또? ㅠㅠ"

앞에는 자정 다 되어서 했고, 뒤로는 7시쯤 아침밥 나오기 전 또 할테니,
그럼 밤 사이에 4번 일어났다가 다시 자는데...
눈꺼풀이 안떠진다. 몸은 비틀어지고. 
코끼리 한 마리를 눈꺼풀 위에 올려 놓은 것처럼 무겁다.

"젠장, 잠은 언제 자냐구! 투덜투덜..."

한 석달 열흘? 아님 1년쯤도 뭐 참을만 하다.
시한을 정해서 해보는 '고통체험의 삶' 그런 프로그램이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끝나고 후련하게, 멋진 후기도 쓰고!
근데, 이게 지난것만도 하나 빠진 십년이고 앞으로는 셀 수도 없다.

"참 재수없게 걸렸네 오지게..."

"뜻이 있어서... 나중에 크게 쓸 계획이..."

혹 믿음이 좋다는 칭찬을 받는 분들은 대번에 툭 튀어나오는 반응이 있다.
그러니 감사하기라도 하라는 뒷 말까지도 비친다.
입밖으로 나오는 사람도 있고 마음에만 하는 사람도 있고.

'뜻? 계획? 그건 하는 쪽 분에게 달린거고, 내게는 그냥 재수가 없어서 걸린거 맞다.'

괴로운 나도 그렇고, 자기 힘으로 해결 못하고 미안해서 맘고생까지 하는 아내는 더더욱 그렇다.
이게 재수가 없어서 걸린 불행이지 감지덕지 고마워하며 받을 선물이란 말인가?
어느 분 말대로 고통 불행 자체를 감사하면 그건 미친 놈이지 제 정신 아니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 죽어 자빠질 처지인데 믿기지 않도록 살아가게 하는건 기적이다.
그러니 그게 감사하고 고마운거는 맞지만.

"그럼 내 불행 당신이 가져가슈! 난 평범하게 살고싶으니 바꿉시다. 그럴까요?"

모든 고난이 하나님이 주신거고 그건 감사로 받아야하고 불평 없이 살아내야 훌륭한 신앙인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분들에게 나는 열번 백번 당하면서 쓰디 쓴 기분으로 한마디 하고 싶어진다.

"그러니까! 댁을 포함해서 세상 모든 인류가 다 그 귀한 선물을 받게 해달라고 기도하시라니까요!"

"에이, 니가 무슨 죄가 있어서 그런거겠지, 재수없어서 그러겠어?"

"죄? 남들 몰래 숨긴 큰 죄? 그거 나만 있나...다들 있으면서, 그런데 왜 난 더 센 벌 받아야 하는데?"

내가 투덜거리며 내뱉는 말에 혹시 진노한 하나님께 벌이라도 받을까봐 불안하거나
한 발 더 나가 신성을 모독하느니 하며 얼굴이 붉어져서 목소리 높여 야단치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겁 안난다.

"됐고요! 난 사람들이 눈치 보이고 무섭지 하나님은 안 무섭다고요!"

정말이다. 사람들은 등 돌리거나 손가락질하고 비난하면 외로워지고 도움 끊길까봐 무섭다.
하나님은 괜찮냐고? 괜찮을 뿐만 아니라 사랑한다. 진짜로 억수로 고맙고!

생각해보라. 벌을 받아서던 재수 없이 걸려서든 이미 사면초가 벼랑에 섰는데
뒤로 먹고 생존할 길도 끊긴 가족이 목숨을 부지 하며 그런대로 사는 건 다 그 분 덕이지.
많은 사람들이 불행을 당해도 다 구사일생 목숨 부지는 못하는 세상 아닌가?
현실적으로 사람들은 이익이 내다보이는 경우만 투자하고 선행도 한 두번, 1 -2년 하면 안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까마귀는 계산도 없고 대가도 요구하지않고 계속된다.
같은 하나님을 만나 명령받고 감동받아서 꾸준히 돕는 분들도 그래서일거다.
그러니 감사할 수밖에!

그리고 또 하나 감사한 것,
사람들은 내 속을 알다가 모르다가 하지만 하나님은 다 안다.
쭈욱! 계속해서 단 한번도 놓치지 않고, 아무리 작은 목소리도, 
돌아서거나 맘속으로만 하는 것조차도 다 아신다. 그러니 얼마나 편한지!

굳이 숨길 필요도 없어서 너무 자유롭다. 욕할 때나 감사할 때나.
그저 중얼거리기만 해도 되고, 그것도 귀찮으면 마음으로 생각만 해도 된다.
다 아시니까!

"젠장, 잠 못자고 졸려 죽겠다고요!"
"돈 다 떨어졌는데 이제 죽어요? 뭐 먹고 살라고요..."
"나도 바닷가도 가고 산에도 가고싶다고요. 답답해 죽겠구만!"
"나도 남자인데...홀아비도 아니고 다 늙은 할아버지도 아닌데..."

다 알아 듣고 나보다 더 다음 들 기분, 다음 나올 말까지도 아신다.
그러니 이게 얼마나 편하냐구요.
안 그러면 힘들 때마다 목에 피가 나도록 소리쳐 불러야 하고
구구절절 말도 버벅대며 한 시간 두 시간 고래고래 고함쳐야 속이 시원할테니
그 힘든 거 안 해도 된다는게 진짜 감사하지.
다 안다는데, 고요한 새벽 들판에 살짝 스치는 바람 한줄기 같은 작은소원도 다 받았다는데,
이보다 더 감사할 일이 있을까?

"거, 알지만 말고 어떻게 좀 안될까요? 뭐 나아지게 한다든지, 흐흐"

하나님과 나 사이에는 격이 없다. 
내가 하나님께 무리배처럼 볼쌍 사납게 대한다는 말이 아니고 아무리 고상하게 말을 다듬어 내 놓아도 그 바탕의 마음 수준을 아신다는 의미다.
또 반대로 아무리 투덜투덜 던져도 그 깊은 바닥에 바들바들 비에 젖은 비둘기처럼 춥고 배고프고 무서워하면서 손길을 바라는 내 심정을 다 아시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겉에 나온 것만 보고 판단하고 정죄하지만.

- 진짜 재수 없게 걸렸다. 이렇게 꼼짝도 못하고 다 아는 분 앞에 잡혔으니...

"아, 진짜! 나 잠좀 자게 해주시라고요! 잉잉..."

(2008년 5월 9일 - 2016년 8월 5일, 맑은고을 병실에서)



(꽃처럼 살기는 틀린 인생이지만...막내딸이 공부하는 사이 알바하여 벌어 보내주는 생화 두어 송이를 안고 힘내며 산다. 9800원의 행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