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일기 3000일째 - ‘푸른 언덕에 배낭을 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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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언덕에 배낭을 메고
황금빛 태양 축제를 여는 광야를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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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 약이 필요해서 큰 약국을 다녀오는 길에 길거리에 쾅쾅 울린다.
‘여행을 떠나요!’ 라며 사람들을 홀리는 음악소리가 카페인지 어디서.
“여행을 떠나요~”
나도 모르게 전염성 깊게 흥얼거리다 바로 뒤집어엎는 불평 한판이라니.
‘제기랄, 누구는 좋겠다. 배낭 메고 푸른 언덕도 가고!
난 병실에 갇혀 뺑이친지 몇 년째인데...’
방금까지 신난다고 따라 부르며 들뜨다가 ‘미친 X’처럼 변덕을 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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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오늘이 아내가 심각한 병으로 아프기 시작한지 딱 3000일째다.
2008년 5월 9일부터 오늘까지 컴퓨터가 계산한 날 수가 그렇다.
그중에 집과 병원을 들락거린 초기의 몇 달을 빼곤 거의 병원 병실에서 보냈다.
아마 한 200일 정도 제외한 2800일 정도를 입원생활로 병실에서 간병하며 보냈다.
아이가 응급실 입원했던 날 딱 하루 빼고 떨어진 적 없는 그 긴 날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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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그럽다, 푸른 언덕은 고사하고 푸른 감방 푸른 죄수 같은 처지에 여행은 무신...’
그래도 한 가닥 위로는 딸이 나중에 여행 같이 가야한다고 체력관리 잘하란다.
고맙게도. 잃어버린 꿈, 잊혀져가는 소원을 딸이 다시 손에 쥐어준다.
별이 쏟아지는 푸른 언덕 프랑스 떼제를 다녀온 게 1995년이었다.
나중에 아내와 딸을 데려가겠다고 큰소리 친지 20년 되었다.
입에 달고 살던 스페인 도보순례길 산티아고도 이젠 틀렸구나 하던 참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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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나도 생각이 바뀌었어! 예전에는 임종은 집에서 해야지 했는데,
길 위에서 세상을 마치는 것도 답답하지 않고 좋을 것 같아!“
‘디어 마이프렌즈’ 드라마를 보고 난 아내가 꽤 공감했는지 그런다.
여자 동문들끼리 이구동성 길 위에서 죽는 것도 좋다며 어울려 나들이 하는 것을 보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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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공감한다.
죽은 후에 새가되어 하늘을 훨훨 날고 싶다던 할머니가 바닷가를 휠체어로 걷다 임종했다.
그 딸 정아씨(나문희 분)는 살아서 새처럼 살겠다고 황혼 이혼도 감행했다.
얼마나 가족 뒷바라지 짐 다 내려놓고 푸른 하늘을 날고 싶었으면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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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 징역살이 같은 병실에 콕 박힌 채 간병으로 보내는 24시간을 벗어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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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언덕에 배낭을 메고! 황금빛 태양 축제를 여는 광야를 향해서...”
(2008년 5월 9일 - 2016년 7월 26일, 맑은고을 병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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