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일기 3001일째 - 소원대로 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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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입니다, 꼭 들어주세요. 하나님!”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어주셨다.
그리고 나는 전혀 부추긴 적도, 공범도 아닌데 뒷감당이 돌아왔다.
조금은 억울하다. 그럼...‘그 소원 물려주세요!’라고 소원을 빌어야 하나?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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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7월 딱 이날쯤 뜨거운 삼복더위 중 아이들의 웃는 소리가 창을 넘고 있었다.
그 아이들 소리를 타고 앉은 듯 더 낭랑하고 신나는 한 아줌마의 목소리가 있었고.
그렇게 교회에 딸린 아담한 조립식 건물 교육관에는 아이들 20여명정도와 주일학교 선생님 세 분이 여름성경학교를 열고 있었다. 나이 많으신 할머니 권사님들은 맛있는 간식과 점심 준비로 커튼을 친 부엌에서 연신 냄새를 피우고 그야말로 잔치 집 같은 분위기.
그 낭랑한 목소리의 아줌마는 아내였다. 불과 며칠 전까지도 허리와 다리가 아파 걷지도 못하고 잠도 잘 수 없어서 결혼 이후 20년 만에 처음으로 한 달이나 가족들과 집을 떠나 살아야 했다.
원인도 모르고 병원만 여기저기 다니는 동안 몸은 점점 심해지고 통증으로 힘들어하던 아내는 수원에 사는 여고 동창생의 권유와 소개로 통증클리닉 치료를 받기로 했다. 부득이 집을 떠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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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되는 소원은 충주를 떠나서 수원에서 치료를 받는 동안에 생겼다.
몇 년 째 해오던 시골 작은교회의 여름성경학교는 늘 아내와 교회 사모님, 그리고 딱 한 분의 여집사님 외에는 교사도 없고 아예 열기가 힘들었다. 정 안되면 다른 교회의 연합으로 아이들을 태우고 가서 참가해야만 하는 상황.
“제발 여름성경학교를 할 수 있도록 고쳐주세요. 안되면 단 한 주 만이라도. 그 뒤에는 어떻게 되어도 좋아요. 부탁입니다 하나님!”
그리곤...정말 거짓말처럼 아내의 극심한 통증도 사라지고 걷지도 못하던 사람이 걷고 뛰기까지 했다. 여름성경학교 기간이 들어간 한 주 동안 꼬박!
물론 그 다음 주부터 응급실로 실려 가면서 다시는 일어나지도 못하며 추락만 하는 긴 8년 9년의 투병이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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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저하고 의논하고 드린 기도도 아니라고요. 어떻게 다시 협의가 안 될까요? 저는 이게 무슨 고생이냐고요. 나, 참...”
다른 소원도 아니고, 하나님나라의 주인이라고 성경에도 못 박았던 아이들을 위해 잔치를 벌이는 것인데, 좀 감안해주셔도 될 만한데 하나님은 아내가 빈 소원이라고 곧이곧대로 고지식하게 들어주셨다.
그런데도 순딩이 아내는 그때 그렇게 마지막으로 아이들과 함께 여름성경학교를 보낼 수 있었던 것을 얼마나 감사하는지 모른다. 정말 신기하다면서 머리를 조아린다. 놀랍고 은혜로우신 하나님이라며!
소원의 뒤편에서 대가를 감당하는 나는 우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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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는 내가 사랑하는 아내가 기뻐하면 되는 건가? 그날 창밖에서 아내의 낭랑하고 들뜬 목소리에 한없이 흐뭇했고 아이들을 태워오고 같이 놀아주며 즐거웠던 내 마음이 이미 공범이었던가? 흐흐)
(2008년 5월 9일 - 2016년 7월 27일, 맑은고을 병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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