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식
22번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경을 기다리라> 중 성경은 성령의 오타같습니다.
아닌가요?
오늘의 말씀은 정말 크고 귀한 하늘의 비밀을 밝히시네요. 하나님이 빠진 욕심은 죽음으로 달리는 열차와 같고, 클수록 빨리 가는 것이라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면 세상도 없고, 꿈과 환상이 하나님을 담은 것이라면 모든 것이 귀해진다는 뜻으로 받습니다.
지금 내가 붙잡고 살아가는 것들 중에서 하나님과 상관없는 것들을 하나씩 빼고 남는 게 있는지 돌아보라는 말씀에 부끄러움을 넘어 두렵기도 합니다.
...만약에 냉정하게 이론만 있고 실천이 없던 신앙의 모습마저 빼고 보니 하나도 남지 않는다면?? 푹 주저앉는 빈 자루인걸 보게 되면 어쩌나 싶어서요.
그럼 다시 하나님의 꿈과 환상으로 기둥 세우고 지붕을 올려야겟지요? 계단도 만들고...
- <목사님의 시선으로 힘을 얻는 초짜신앙인>
(많이 기쁨을 감당하지 못해 죄송함을 무릅쓰고,
예의도 없고 수치도 모르면서 긴 댓글을 또 답니다.)
오늘 병원 휴게실에서 환자들이 모여 드린 주일예배 때
성경 본문인 누가복음 11장을 읽으면서 욕심과 꿈에 대한
차이점을 또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한 친구가 밤중에 먼 길에서 돌아와 너무 배가 고팠습니다.
먹을 것이 하나도 없는 난감한 상태라 이 사람은 이웃에게로 갔습니다.
밤이 늦은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문을 두드리고 자는 것을 깨워
기어이 먹을 것을 얻어와 배고픈 친구를 먹였습니다.
이 이야기를 예수님은 누가복음 11장에서 기도하는 방법으로
제자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사용한 ‘간청하다’라는 헬라어는
<예의가 없다>, <수치를 모른다> 라는 뜻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예의도 없고 수치도 모를 정도로 간청하여 기도하고,
그것을 굳게 믿으면 들어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잊지 말아야할 아주 중요한 기준이 있습니다.
이 간청하여 구할 수 있는 경우는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넉넉한데도 더 쌓을 것을 구하는 경우가 아니고,
배가 고파 견디기 힘든 상황에서 하는 간청의 기도를 말한 것입니다.
이 기준을 외면하고 자신과 내 자녀 내 가족만을 위해,
그것도 더 넉넉하기 위해 비는 기도는 기복신앙 행위로 변질되고 맙니다.
그것을 복이라고 부러워하고 자랑하는 한
그 기도는 미신과 다를 바 없게 되고,
종교도 욕망과 사망의 계단으로 내려가게 될 것입니다.
욕심과 꿈은 그 차이점에서 갈라지는 것 같습니다.
그 갈라지는 뒤를 따라 불안과 후회, 두려움과 절망도 생깁니다.
나를 향한 지나친 욕심으로 갈 경우에는 말입니다.
당연히 친구를 위한 간청은 예의와 수치도 넘어서서
기쁨과 평안이 유지되는 하늘나라의 꿈이 될 것이라고 믿어졌습니다.
김동호 목사님은 언제나 말라위의 친구들을 향한 간청을 드립니다.
고지도 점령하고 복도 받기를 권하십니다.
심지어 다른 친구들의 지갑을 찢어놓는 예의도 없고 수치도 모르는
요구를 하십니다.
그러나 더 하셔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이유는 배고픈 친구를 위한
절실한 이유로 남을 괴롭히기 때문입니다.
마치 자는 사람을 깨워 기어이 먹을 것을 받아 온 것처럼!
그래서 목사님의 기도는 자신만을 향한 욕심이 아니고
친구를 위한 진실한 꿈이며 환상이라는 것을 새삼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역시 주님의 날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영적 양식이 넘치는 날인 기쁨을 감사드립니다.
- <목사님의 시선으로 힘을 얻는 초짜신앙인>
1김동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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