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를 아십니까?”
누군가 또 큰아이 집으로 음식을 보내왔습니다.
“누구일까?”
큰 아이가 박스를 내다 버려서 누군지 확인은 못했습니다.
하지만 대충 짐작은 합니다.
“정말 다른 무슨 이유가 있어서 계속 먹을 걸 보내는 걸까?
신문이나 방송에도 나가고 표창이라도 받기를 바라고?”
그런 생각을 얼핏하다가 터무니가 없어서 웃고 맙니다.
내가 짐작하는 그 사람은 그런 것과 너무 먼 거리를 유지하며
살고 싶어 하는 사람입니다.
그럼 도대체 무슨 이유로, 무슨 힘으로 이렇게 하는 것일까요?
미스터리 입니다. 주님밖에 모르는...
오늘은 그런 주님을 알리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큰 아이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늘 다니던 길을 피해
다른 코스로 걸어 왔습니다.
작은 가계들이 다닥다닥 붙은 재래시장 주변 좁은 길로,
여기저기 주변을 보며 걷다가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예전에 한 목사님과 영화 한편을 본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1980년인가 그랬으니 한 30년도 넘은 기억입니다.
총각 때고 돌볼 가족도 없으니 무턱대고 순수와 정의만 부르짖던 그 나이...
<꼬방동네 사람들>이라는 지금은 장로님이 되신 분이 쓴 체험적 이야기였습니다.
눈물을 펑펑 흘리며 그 영화를 보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부자들, 건강하고 명성 높은 사람들은 열 번을 죽었다 깨도
지금도 이해 못할 가난과 질곡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나는 그 당시도 빈부격파 신분증오의 투사가 아니었고 지금도 아닙니다.
다만 대를 물려 허덕이며 영혼마저 파괴하는 가난과 고통이 서러웠습니다.
그걸 이겨내려고 온갖 모습으로 바둥거리고 비겁해지고 때론 못 견뎌
가족에게조차 폭력을 휘두르는 진짜 불쌍한 모습이 마음 아플 뿐이었습니다.
물론 돈 건강 명예 모두를 준다고 그 고난이 끝나지 않는다는 것도
이제는 알지만 그때는 그 모습이 나를 울게 했습니다.
오는 길에 마치 한 이십년은 시계를 되돌려놓은 듯한 상가들을 스쳤습니다.
촌스럽고 옹색한 손바닥 만한 점포들, 미용실 식당 치킨 집...
얼마나 치열한 생존경쟁의 전쟁터면 그리 늦은 시간까지 쉬지도 못하고 손님을 기다리며
어떻게든 시선을 끌겠다고 안쓰러울 정도로 고급 점포들을 흉내 낸 인테리어를 보았습니다. 보지 말았어야 마음이 편했을지도 모르는...
냉정히 말하면 그렇게 애를 써도 일류 대기업 체인점 발끝도 못 따라가고
시들시들 하나둘 문을 닫는 걸 무지 많이 보았습니다.
현실은 동화도 소설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동네 슈퍼들 망한다고 모두들 걱정하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그 사람들조차
대형할인매장에 가서 장을 보는 이해 못할 상황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사진도 몇장 찍으면서 마치 삼십년 전 영화 속의 동네의 정든 모습을 느꼈습니다.
비록 오래 못버티고 사라질지 몰라도 정겨운 한 때의 나눔이 있었던...
사거리 신호등을 기다리는 동안 한 무리의 아저씨들이 회식을 했는지 우루루 몰려옵니다.
그 중 한명이 떨어져 전화를 합니다. 밤 열한시가 넘었는데...
간간히 들리는 소리, “
미안하다. 아빠가 미안하다 능력이 모자라서...“
아마 딸에게 하는 전화 같습니다.
순간 화가 불쑥 납니다.
“뭐가 미안한데? 저 나이 되도록 이 늦은 시간까지 일하고,
힘써서 사회에서 도태되지 않겠다고 발버둥 치는데 더 어떻게 하라고?“
그런 생각에...
흔들리는 연약한 생활력을 비난해야할까요?
뭉텅이 돈을 펑펑 못 벌어오는 재주 없는 것을 욕해야하나요?
그것도 아니면 물려받은 재산도 없는 가문에 태어난 불운을 손가락질할까요?
그럼에도 씩씩하고 칭송받을 만한 신앙이나 강한 성숙함 없음을 탓하나요ᆢ.ㅜ.ㅜ
어느 누가 그 형편을 좋아라 원해서 택했을까요?
그 쪼달리고 폼 안나는 형편을 안 벗어나고 싶어 뭉개고 있을까요?
병들고 실패하고 우울증에 빠져 허우적거리면서 말입니다....
하나님, 너무 속상해요.
하나님 왜 이런 사람들이 너무 많은 걸까요?
누구 죄 때문인가요? 아님 무엇을 할 일이 있어서인가요?
언제까지, 언제까지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 세상에 가득해야하지요?....
한때 저도 그런 처지였고 지금도 그다지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조금 다른 점은 있습니다.
그대로 절벽에 몰린 처지는 같아도 저는 떨어져도 감사합니다! 이제 끝이군요. 하며
반길 수도 있지만 다른 이들은 단지 절망이 그냥 말 그대로 절망으로 끝난다는...
어쩌면 아내가 이 글을 보고 속상할지 모르지만 저는 이 세상의 삶이 끝나도
모든 것이 사라지는 허무에 빠지지 않을 것을 압니다.
어쩌면 감사를 드릴지도 모릅니다.
그 차이란 겉으로 드러난 죽음의 비슷함으로 덮을 수 없습니다.
다음 세상에 대한 믿음이 있는 내게도 그 끝은 무지 고통스럽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도를 전해야 합니다.
이 고통의 세상이 끝나도 다음세상이 있다는 도를!
그래서 이 땅위의 모든 억울함과 슬픔이 단지 의미 없이
무차별 고통을 주는 목적으로 오는 것이 아님을 전해야 합니다!
고통의 중심에서 발버둥치는 사람뿐만이 아니고
길에서 곁을 스쳐지나가는 사람을 붙들고라도 말입니다.
도를 아십니까?
예수님의 부활의 도를?
도를 전하는 것이 예수님이 바라시는 거고
그 길이 생명이 겪는 고통을 덜어주는 길이 맞다면,
우리는 전도를 해야 합니다.
도를 아십니까?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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