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투병일기

내가 듣고 싶은 말! '여보, 정말 고마웠어요'

희망으로 2011. 2. 13. 01:08

내가 듣고 싶은 말! ‘여보, 정말 고마웠어요!’

 

오늘 3일간의 출퇴근 주사치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잠시 나들이를 했습니다.

이곳 일산에서 자유로를 따라 통일전망대와 임진각을 갔다 오는 길이

시간도 많이 안 걸리고 한강의 전망도 참 좋습니다.

작년 추석 때, 집을 다녀온 이후로 6개월만의 병원 외 나들이였습니다.

따뜻한 햇살과 못 보던 창밖 거리 풍경을 보면서 아내가 좋아합니다.

퉁퉁 붓고 시리고 아픈 통증을 끌고 가는 길인데도!

 

임진각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한 번 내려보지도 못하는 몸 상태 임에도

주말 나들이를 나온 사람들을 보면서 생기가 돕니다.

닭꼬치 한 줄과 어묵 조금을 사서 차안에서 점심 겸 먹었습니다.

12년이나 된 오래 된 LPG 고물 승용차이지만 우리에겐 전세 항공기보다

값지고 꼭 필요한 보금자리임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돌아오자마자 기다리는 건 온갖 살림살이입니다.

아침 일찍 서둘러 나가느라 미처 설거지도 못한 그릇들과

벗어 놓은 환자복, 미처 먹지 못한 약봉지들...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해 누룽지 밥이나 과일 그릇, 따로 해 먹이는 음식들이 있어

설거지 그릇이 나옵니다.

열심히 치우고 닦고 약 먹이고 눈에 넣고 나니 목욕을 시킬 시간입니다.

혼자 해낸다면 얼마나 편하겠어요.

그러나 얼굴 씻기, 머리 감기는 것, 어느 하나도 혼자 힘으로 안되니

일이 참 많습니다. 게다가 이틀마다 돌아오는 큰 용변은 진짜 큰 일입니다.

 

땀으로 범벅이 된 나도 씻고 다시 침대로 돌아오면 그냥 녹초가 되어

! 뻗는 심정입니다. 더구나 삼일째 오가고 세 시간씩 앉아서 버티고 오다보니

유난히 고단합니다.

그런데 눈앞에 저녁에 먹인 그릇과 물 컵들이 또 수북히 쌓여 기다립니다.

예전에 세상에서 가장 하기 싫고 자신 없는 게 뭐냐고 누가 물으면

음식 만들고 설거지 하는 것! 이라고 30초도 안 생각하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오죽하면 아내가 실실 웃으며 당신 살림하는 주부 다되었네!’ 라며 웃습니다.

내가 이 놈의 일 끝도 없네! 라고 했거든요. 그걸 바로 받아 한 말입니다.

해도 해도 끝도 없고 표도 안 나는 살림일라며...

 

그렇습니다.

그렇게나 죽어도 손도 대기 싫고 안하던 설거지며 간단한 음식 만드는 것,

빨래를 차곡차곡 종류별로 접어 보관하는 것 까지 많이 달라졌습니다.

오죽하면 그 지겹다는 설거지를 해서 들고 오면서 ! 개운하다그러고

흥얼흥얼 콧노래를 다 부르는 지경이 되었겠습니까?

보송보송하고 하얀 빨래를 들고 오며 만족해하는 건 벌써 생긴 변화였고요.

 

그런데 왜 이렇게 내가 변해가는 걸까요?

아니, 변해가는 걸 싫어하거나 죽을 상을 짖지 않고 받아들이게 되었을까요?

어쩌면 이 말 한마디를 나중에 듣고 싶어서인지도 모릅니다.

힘들고 짜증날 때도 간혹 마음속으로 그려봅니다.

그건 아내가 이 세상을 떠나는 날 제게 이 말 한마디를 해주었으면 말!

여보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요!’

그 한마디입니다. 왜 그렇게 그 한마디가 듣고 싶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아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진정 그 한마디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마음이 놓이고 뿌듯할까를 상상하면 좋은 정도가 아니라 가슴이 메어집니다.

그건 너무 힘들고 행복한 사랑을 받지 못했던 아내가 가엾어서 생긴 소원입니다.

어려서도 힘들었고 나랑 결혼해서도 힘들었고, 23년이나 지그도 병 때문에 힘든

아내가 너무 안 되어 마음 아픈 것을 보상하고 싶어서입니다.

 

하나님이 이제껏 제게 베풀어주신 사랑들을 떠올려봅니다.

제가 오늘의 이 건강과 지혜, 착한 가족구성원의 축복을 받을 일을 했겠습니까.

아무리 돌아보아도 없습니다. 겸손하고 싶어하는 말이 아니라

진정으로 하나님께 내세울게 없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것을 누리게 해주셨으니 이제 아내에게 갚는 생을 살아도 되겠다 싶습니다.

 

여보 부디 이 한마디만 해줘요! “당신 참 수고 많이 했고 행복했었어!”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