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렇게 힘들어요?’
어제는 종일토록 마음이 아파서 많이 힘들었습니다.
저도 젊은 날에 장충공원에서 오는 비를 맞으며 벤취에서 남은 돈으로 빵 하나를 사서 이틀을 새우잠을 자며 버티다 결국 흔한 유흥업소로 무조건 취직을 했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만나고 다시 몇 년이 지나 또 방에서 꼼짝없이 삼일을 굶으며 이웃사람들에게 내색도 안하고 새벽이면 산으로 올라갔다가 밤이면 내려와 물만 마시고 버티던 실업자의 날들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다시는 아무데나 가지 않겠다 이를 악물고 버텼지요.
새벽 두시가넘어 견딜 수 없는 몸부림으로 산에 올라 울고불고 나니 동이 터오는데 묘지 잔디밭이라 섬뜩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30년 전도 아니고, 20년 전도 아닌 2011년 눈만 뜨면 뉴스로 신문으로 세계경제대국 몇 위를 자랑해대는 대단한 대한민국에서 장래가 촉망되는 32살 예술인이 병과 배고픔으로 굶어 죽었습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이렇게 성장했다는 부유한 나라에서 늙은이도 갖난 애기도 아닌 젊은이가, 그것도 무능력한 장애자도 아닌 어엿한 국민이...
영혼의 양식만 한없이 값지다! 재물이나 떡이 다가 아니다 경멸하는 천만에 가까운 기독교인이 있는 대한민국에서 몸의 양식이 모자라 굶어 죽어 영혼도 울며 따라 갔다는 슬픈 소식...
무조건 다시 반성합니다. 앞으로 고귀한 영혼만 앞세우느라 오병이어로 기적을 일으켜 갈 곳도, 간들 사먹을 돈도 없던 이들을 불쌍히 여긴 예수님의 측은지심 사랑을 잊지 않겠습니다.
아무리 없어도 나누어 먹을 콩 한쪽은 있다는 형제정신으로 살겠습니다.
이현주 목사님의 동화중에 '내가 알게 뭐야?'라는 글이 있습니다.
밀가루 트럭과 세멘트 트럭을 몰고가던 기사가 우연히 내렸다 타면서 차를 바꿔타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그 사실을 알았지만 둘 다 하는 말이 '내가 알게 뭐야? 내것도 아닌데!'였습니다. 제빵사도 만들다가 이상했지만 결국 같은 말을 하며 그대로 빵으로 만들었씁니다. 벽돌만드는 사람도 이상하다 하면서도 '내가 알게뭐야? 내 집인가!'하면서 만들었습니다. 결국 나중에 두 기사는 그런식으로 일해서 돈도 많이 벌었지만 어느 날 세멘트 기사의 자식은 무너진 집에 깔려 다치고 밀가루 기사의 아들은 빵을 먹다가 이빨이 부러지ㅕㅆ던가? 기억이 그렇습니다.
그건 사회복지사가 할일이지, 아님 보건복지부나 정부가 해야지! 옆에 사는 사람이나 단체가! 아님 본인이 잘했어야지! 정책이 잘못되었어! 라든지 여당이 , 야당이, 진보가 보수가... 그렇게 서로 미루고 그걸 보면서 내문제인가 뭐! 내가 알게뭐야!로 보내는 우리 모두의 잘못입니다. 제자들도 '가서 먹게하지요 뭐!. 라고 예수께 말했다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는 말을 들었지요.
그런 일을 집행할 의지가 있고 정직한 사람을 투표로 뽑아내는 일부터 잘못된 복지정책이나 게으른 시행을 하는 기관 단체에 요구도 하고 우리 양식을 줄여 나누는 일에 적극 나서지 않는다면 언젠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입니다.
그때 주위 사람도 그러겠지요. '내가 알게 뭐야! 그게 내 일인가 뭐?' 이러면서...
오늘은 또 아침부터 눈물로 시작했습니다.
순전히 개인적인 못난 말 한마디 때문에!
벌써 열흘이 넘도록 사라지지않는 통증으로 불안에 빠져 끙끙 앓는 집사람에게 말 한마디 던졌습니다. 제 딴에[는 신앙의 모진 각오로 이겨내 보자는 뜻에서,
“아마 하나님이 이제 오라고 부르시나보지 뭐! 너무 오래 아팠다. 천국으로 불러주겠다! 뭐 그렇게 세상을 떠나면 고맙습니다! 하고 가야지!”
어쨌냐구요? ...눈물을 주루루 흘리면서 이제는 살게 해달라고 기도도 안하고 빨리 가기를 바란다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짐이나 되어 저를 힘들게 하는게 미안하기도 하다면서...
전혀 그런 맘 없었지요. 하나님은 아실겁니다.
하지만 간신히 싹싹 빌어서 달래고 증상을 본 병원인 국립암센터에 전화로 상담을 했지요.
좀 있다 연락이 왔습니다. 바로 와서 검사해야겠다는 의사 선생님의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결국 부랴부랴 가서 피검사를 하고 3일 꼬박 고농도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아야한다는 처방이 내려졌습니다. 거의 1년만에 다시 재발이 온겁니다.
11번째인지 12번째인지 이제는 세기도 헷갈리는...
두시간반에 걸쳐 주사실에 누워 점심도 굶고 다 맞고 돌아오니 4시가 넘었습니다. 입원실이 있으면 입원해서 5일정도 맞으면서 검사 결과도 보면 되는데 무슨 환자가 그리 많은지 방이 없답니다. 할수없이 날마다 지금 병원에서 가서 맞고 돌아오고, 그렇게 5일을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에 온 재발은 그나마 좀 사용하던 왼팔과 머리 어깨로 왔습니다.
뭐 그럴 수 있지요. 원래 병명도 ‘다발성경화증’이니 다발로 오기도하고 따발총처럼 연속으로 오기도 합니다. 눈도 점점 안보이는 판에 또 더 보태지니 우울할만도 합니다.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저도 참 냉담해집니다. 안 그런다고 뭔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울고 불어도 더 힘들기만 하지 도움도 안되고...
오죽하면 하나님이 너 내일와라! 하면 분명 천국으로 부르는 것일테니 얼른 고맙습니다! 하고 가겠다고 집사람에게 말했을까요.
생각해보니 꼭 살려달라고 매달릴때는 두어가지 이유가 있어야 하겠더라구요.
하나는 너무 잘못산 것을 회개할 시간이 필요하거나, 꼭 돌보아야할 사람이 있거나 하나님이 이건 하고 와라! 하는 무엇이 있거나 중의 하나...
그 중 아무것도 해당안된다면 이 아슬아슬한 세상에 기를 쓰고 더 살다 가겠다고 모험할 이유가 없다 싶었지요. 그대로 아내에게도 말했습니다. 그런데 환자는 다르더군요. 그 말들이 너무 서러웠나봅니다. 쉴 새 없이 우는데...
결국은 종일 땀흘리고 비위를 맞추며 정성을 다하곤 밤이 되어 녹초가 되고 말았습니다.
어제는 영혼 고생,
오늘은 몸과 마음 고생...
무슨 일들이 이렇게 연속이 되는지요.
저절로 이런 푸념이 나옵니다.
‘왜 이렇게 힘들어요?’라고...
오늘 본 기사에 나온 최고은님의 쪽지 내용이네요
.
<사모님.. 죄송합니다. 또 1층입니다.
사모님, 안녕하세요.
1층 방입니다.
죄송해서 몇 번을 망설였는데...
저 쌀이나 김치를 조금만 더 얻을 수 없을까요...
번번이 정말 죄송합니다.
2월 중하순에는 밀린 돈들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전기세 꼭 정산해 드릴 수 있게 하겠습니다.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항상 도와주셔서 정말 면목없고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 1층 드림>
말로만 들었던...
이 쪽지를 보관하고 있던 송씨는 같은 주택 1층에 세들어 살던 최 감독에게 가끔 쌀과 김치를 건네주었고 밀린 전기세도 대신 납부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 감독의 쪽지에 밀린 전기세가 언급돼 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송씨가 최 감독의 쪽지를 보고나서 쌀과 김치를 가져갔지만, 최 감독은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가까운 이웃의 안타까운 죽음 이후 정신적인 충격과 고통을 받아왔던 송씨는 그동안 외부 사람과의 접촉을 피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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