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가는 길/예수님과 함께 가는 길

그래서? 그까짓 거 그게 뭔 대수라고!

희망으로 2011. 2. 6. 13:26

예배 시작 했는데 누군가가 큰 소리로 통화를 한다
영락없이 무슨 조폭쯤 되는 사람이 남들 신경 안 쓰듯이!


‘왜 저럴까? 조용히 통화를 하던지 나가서 좀 하지’


속으로 신경이 쓰여 기도소리도 안 들린다.
마이크를 들고 예배인도하시는 목사님 목소리보다 더 굵다.

 

“응! 갑자기 교회를 오고 싶어서 지금 내려왔어!
여기? 일산! 고양시 풍동 1278 ...~~ ”

 

아마 찾아 오는 사람이 네비게이션 때문에 주소를 물었나보다.
주소 호수 다 불러주고 전화를 끊었다.
마치 귀가 먹었거나 불량 전화기로 통화하는 사람처럼 크게 말하고선!

 

속이 막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집중이 안되려는 찰나에
심장이 쿵! 하고 멈추어 버린 듯 멍해졌다.
‘갑자기 교회를 오고 싶어서!’라는 말이 계속 머릿속을 하얗게 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환하게 웃으시며 내게 말하신다.

 

‘좀 시끄러웠지? 그래도 예배를 드리고 싶어 왔다잖아!
그래서? 그까짓 거 그게 뭔 대수라고!‘

 

누구를 더 기뻐하실지
누가 더 못된 마음을 가졌는지
순간 복잡해진다.

 

앞에서 목사님이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를 하고 계신다.
자기 같으면 미리 유산 나누어 달라는 둘째에게 한 대 쥐어박고


“너 미쳤냐?”


쫒아 내버릴 텐데 아버지는 그 아들을 너무 좋아하셨단다.
그래서 거지가 되어 돌아온 아들을 동구 밖에서 기다리다
맨 발로 뛰어가 안고 입 맞추고 씻기고 새 옷 입히고
송아지까지 잡아 잔치를 벌이며 좋아하셨단다.
일하고 돌아온 첫째아들이 따지자 하는 말!

 

“좀 많이 날리고 왔지? 내 것이 다 니껀데 뭘 그래, 안 죽고 왔잖아!
그래서? 그까짓 거 그게 뭔 대수라고!”

 

그렇긴하지 재산 날리고 길에서 굶어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더 마음 안 좋을 수도 있겠지.
그래도 세상은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큰아들 같이 화내지

 

병원비에 끌어다 쓴 빚에 도저히 못 견뎌 집을 팔았다.
일도 못하고 이리 저리 빌리다보니 쌓여서 방법이 없었다.


‘...이젠 애들 데리고 머무를 집도 없어졌네.
친구나 누가 오겠다고 하면 어디로 오라고하지?‘


참 마음도 착잡하고 맥이 빠졌다.

 

‘그래도 나머지 가족들은 다 건강하고 많이 울고 불고 안하잖아!
그래서? 그까짓 거 그게 뭔 대수라고!‘

 

하긴 그렇다.
집 없다고 당장 죽는 것도 아니고
대한민국에 자기 집 없이도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까짓 거!

 

설 명절 삼일을 병실에서 꼬박 보내고 나니
마음이 자꾸 답답하고 눌린다.
텅 비다시피한 병실 복도들이 더 외로워 보이고
바깥 날씨는 삼일 내내 우중충 햇빛 한 번 안 나고 흐리다.
이러다 우울증에 빠질 것만 같다.
지금 분위기를 그림으로 그린다면
그냥 회색 크레용 하나면 더 필요한 색도 없겠다 싶다.

 

‘그래도 얼어 죽지도 않고 굶지도 않았고 더운물 찬 물 나 나왔잖아!
그래서? 그까짓 거 그게 뭔 대수라고!‘

 

그렇다. 이렇게 저렇게 살다보면
어느 때는 막다른 벽에 막히고 어쩌면 죽을 수도 있겠지만
그게 뭔 대수라고!
부르시면 쪼르르 따라가서 영원히 잘 지낸텐데
그까짓 거 안 죽기만 하면 상관없지 그게 뭔 대수라고!
또 불러서 이 땅을 떠나면 또 고마운거지 그게 뭔 대수라고!

 

...문제는 이 소리 이 마음조차 수시로 변덕스러워
왔다 갔다 하니 탈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