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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침묵을 깨운 말 - 당연하지 않은 사실들’
이런 저런 고단함들이 이어지면서
여러 원망들이 초여름 잡풀처럼 우후죽순 솟아난다
이 쓰디쓴 원망의 풀씨들이 자꾸만 뿌리를 내리고
담쟁이처럼 쑥쑥 자라 퍼져가는 느낌이다
입만 열면 쓴 원망과 우울한 좌절의 한숨이 새어나와
끝내 나를 망치고 듣는 사람까지 지치게 할것같다
안된다! 그래서는 안된다! 아무도 그럴 죄 없다!
입다물고 돌아서고… 그러는 사이 침묵이 길어진다
모든 고단함 불행의 신음이 하소연처럼
시도때도 없이 세상에 퍼진들 무슨 유익이 있을까?
힘든 형편이 나아지지도 않고 그늘만 커질뿐
자기 신음에 점점 지쳐가다가 삶이 끝나겠지?
미리 당겨온 미래의 절망은 숨이나 더 막겠지?
그렇게 입없는 바위처럼 지내는 중에
어느날 한 소식을 들었다
같은 희귀난치병협회 회원들을 통해
24시간 내내 통증에 시달리는 환자의 이야기를.
정말 죽는 게 나은 지속되는 온몸의 통증에
병원법으로 허용되는 최대한의 마약처방을 쓰고도
치료는 고사하고 종일 몰려오는 통증을 커버하지 못해
나머지 공백의 시간을 울면서 지낸다고 했다.
그러고보니 예전 아내의 발병초기 출연했던
KBS 생로병사에서 우리 뒤에 방송된 환자도 그랬던 거 같다.
옷 스치는 통증도 못견뎌 입지도 벗지도 못한다며…
그 환자의 가장 큰 소원은 빨리 죽는 것이라 했던가?
그저 하루에 한 두시간만 안아픈 복이 주어진다면
더 이상 소원이 없겠다고 말했던 기억도 난다
그런 끔같은 시간이 주어진다면…
그 짬에 안아픈 잠도 자고
먹고 싶은 음식도 행복하게 실컷 먹고
가고 싶은 곳도 구경하러 다녀오고!
만나고 싶은 사람과 웃으며 사랑도 하고 싶다고…
하루에 안아픈 두 시간의 복을 달라는
그 어이없는 소원앞에서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하루 한 시간 두 시간 보다 훨씬 길게 안아프다.
날마다는 물론 일주일에 한번도 그런 적 없다
이 엄청난 소원성취된 일상을 살면서도
내게는 이미 이루어진 누군가의 복을 감사하지 못한다
겁자기 나의 좌절도 원망도 부끄러운 사치고 갑질같다
문득 얼마 전 아는 친구분의 글에서 본 글이 생각난다
젊은 날 죽어가면서 쓴 어느 일본 시인의 시.
제목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그 시인과 마음이…
제목 : 미상
(내게 정하라면…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라고 하고 싶다)
왜 모두 기뻐하지 않을까,
당연하다는 사실들
아버지가 계시고 어머니가 계시다
손이 둘이고 다리가 둘
가고 싶은 곳은 자기 발로 가고
손을 뻗어 무엇이든 잡을 수 있다
소리가 들린다, 목소리가 들린다
그보다 더한 행복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아무도 당연한 사실들을 기뻐하지 않아
"당연한 걸" 하며 웃어버린다
세 끼를 먹는다
밤이 오면 편히 잠들 수 있고 그래서 아침이 오고
바람을 실컷 들이마실 수 있고
웃다가 울다가 고함치다가 뛰어다니다가
그렇게 할 수 있는 모두가 "당연한 일"
그렇게 멋진 걸 아무도 기뻐할 줄 모른다
고마움을 아는 이는 그것을 잃어버린 사람들 뿐
왜 그렇지 ? "당연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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