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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기도 41 - 오늘도 우리 만남은 일방적확인

희망으로 2022. 7. 25. 10:32

그저 기도 41 - ‘오늘도 우리 만남은 일방적 확인’

십년 전 이 시간에 나는 어디에 있었을까?
얼른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들 비슷할까?
일기장이나 사진 폴더의 날짜를 찾아 뒤적이면
아마 어렴풋 어디에 있었는지, 무엇을 했는지
대충은 짐작할 수 있을거다. 못할 수도 있고…

장소조차 그럴진대 그 날 그 순간
내가 무슨 마음으로 무슨 말을 했는지는 더 모를 거다
그런 걸 감안하면 무수히 많은 실언을 하며 살았고
무수히 많은 영혼없는 값싼 마음들을 뿌리고 다닌 거다

추정해서 고백하자면… 오늘날 지금 내가 하는 말
지금 내가 건네는 따뜻하다는 사랑의 눈빛도
어쩌면 지키지 못하거나 쉬 까먹을 가벼운 것일지도
모른다는 살짝 민망한 예상이 든다.
십년 후 나는 오늘 나의 말과 마음이 사라지고
아침 강가의 물안개처럼 흔적도 없을지 모른다

뭐 강가에 피는 아침 물안개야 멋지고 볼만하니
그걸로 순간이라도 기분 좋으면 되는 거 아니냐?
그럴 수도 있겠다. 너무 따지지 말라고 할 수도 있다
문제는 물안개는 아무도 책임질 필요가 없고
상대가 없는 저 홀로 만드는 풍경이니 보는 사람이
알아서 누리면 될 일지만, 사람의 말과 마음은
그렇지 않다. 대부분 연결된 상대가 있다
대부분은 사람이고 또는 하나님일 수도 있다
그러니… 그냥 혼자 사라져도 되는 문제가 아니다

지나고보니 나도 세상의 남정네들처럼 헛소리 했다
아내와 결혼 하기전 왜 그리 많은 약속을 했는지…
별도 달도 따주고 손에 물도 덜 묻히고 안 울리고
해마다 결혼기념일에는 가까운 곳이라도 꼭 여행을
가겠다고 ‘나 못믿어?’ 목에 힘을 주며 말했다
딱 3번, 3년을 지키고 이후로 30년은 공수표가 되었다

그래도 아내는 그런 나를 비난도 않고 속았다고도 안한다
세상의 많은 남자들이 다 연애할 때는 무슨 말도 하고
살다보면 제대로 안지킨다는 걸 아내도 미리 알았나보다
그러니 미리 속고 시작했으니 뭐 굳이 따지지도 않는다
세상의 많은 아내들이, 자녀들이 다 감수하듯.

나도 말로한다면 댈 핑계도 많고 설득할 일도 많다
어디 사는 게 쉬운 거냐고, 다 알면서 뭘 그러냐고
하지만 신앙의 대상에게는 그러면 안된다.
아내는 내가 꼭 결혼해서 같이 살고 싶은 대상이고
그 욕심 때문에 조급해지는 대상이니 그랬다지만
신앙의 고백이나 약속은 굳이 안해도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어디 사라지지도 않고 누가 채어갈 대상도 아니다
그럼에도 굳이 설탕바른 달콤한 말을 포장지에 꼭꼭 싸서
눈물 애교 섞어가며 비장하게, 혹은 처절하게 올린다
그리고… 일년 십년 지나면 저절로 아무 기억도 안난다
동시에 아무 미안함도 못느끼고 그렇다고 사과도 안한다.
아니, 못한다. 알고 있어야 사과도 할 수 있는 거지…

바람에 날리는 겨가 어디로 가는지 행방을 아는가?
어디에 정착해서 이후에 어떻게 사는지 뒷 이야기를 아는가?
그런 나중일을 기억해야할 가치라도 있는 존재인가?
기억도 못하고 지키려 애쓰지 않은 나의 말들이
마치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아 민망하기도 하다
누가 그걸 지적하면 참 기분 좋지 않고 씁쓸하겠지만
뭐 딱히 틀린 말이 아니니 변명도 못하겠다.

돌아온 둘째아들 탕자는 집도 있고 기다리는 아버지도 있다
아무리 망나니 쓸모없는 자식에 큰 죄인이라해도
돌아오면 언제나 그 자리에 그 마음 그대로 기다려주는 분
하나님 예수님은 탕자의 아버지처럼 그런 분이다.
십년 백년이 지나도, 바람에 떠돌다 오는 겨와 같은 탕자도
모두 품어 안아주고 다 기억하면서도 따지지는 않으신다
도망간 한쪽은 다 까먹어 말 못하고
기다린 한쪽은 다 기억나도 말 안하신다

그렇게 만남은 언제나 일방적이다
세상의 법칙과 풍습대로라면 불가능한 일인데
하나님 주님과 우리의 만남은 늘 그렇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재회처럼 반가운 듯 마주한다
‘하이! 오랫만이네요!’
‘그래! 잘 돌아왔어! 무사히 와줘서 고마워!‘
그런 장면이 반복된다. 오래 가도 변하지도 않고 계속…

가끔, 아주 가끔 마치 데자뷰의 기억처럼 스친다
‘…내가 이전에 뭔가 그럴듯한 약속을 했었나?’
‘왜 뭔가 안지킨 약속이 있는 것처럼 싸하지?’
이러면서. 그리고 그 말미에 우린 당당해진다.

‘뭐 늘 사랑의 하나님이시니… 괜찮을거여!‘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