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끄적/길을 가는 사람...

이 초라한 나도 쓸모가 있다니!

희망으로 2021. 7. 26. 11:36

<이 초라한 나도 쓸모가 있다니!>

 

“아빠… “

“왜 그래?”

“흑흑… 엉엉엉!”

“무슨 일인데 그렇게 울어? ㅠ”

 

저녁 먹고 쉬는데 걸려온 딸의 전화

병원이다보니 통화보다 주로 문자로 주고 받는데 

음성통화로 말도 제대로 못 꺼내고 속상하다면서 울었다

사고가 나서 어디 다쳤나?

시험을 크게 망쳐 속상한 걸까?

사기를 당했나?

별 생각이 짧은 몇초동안 머리를 스치며 나를 긴장시켰다

조금씩 진정시키고 들은 딸아이의 이야기는 이랬다

 

친구가 전세로 얻은 집에 비용을 좀 부담하기로 하고 들어간 딸

에어컨은 자기가 사야겠다고 중고 파는 집을 뒤져 구입했다

그런데, 냉매 가스가 없다고 해 돈을 주고 충전을 했는데…

충전해주러 온 기사아저씨가 그랬다.

실외기 설치가 엉망이고 그마저 고장이 나서 작동이 안된단다

코로나로 알바를 못해 돈도 벌지 못하고 과외로 겨우 버티는데

또 돈 들어가게 되는 것도 무지 속상한데 자책도 되나보다

자기가 물건을 잘못 골라서 그런다는 생각에 더 속상한다며…

지난번 설치해주러 온 사람의 나쁜 기억이 아이를 울리고 말았다

투덜거리며 집안에서 담배까지 피우던 그 못된 설치기사가. 

 

아이를 달래며 중고를 살 때 있을 수 있는 불운이라며

전문가가 아니면 종종 일어나는 중고거래의 단점이라고 해줬다.

그리고 새로 실외기 수리나 교체비용은 내가 줄테니 그만 잊어라고…

아이는 기말 시험중에 이런 저런 스트레스로 힘들다 터진 거 같다

그런데… 끝으로 아이가 해준 말은 오래 내 가슴에 남았다

 

“아빠가 없으면 난 어떻게 살아…고마워!”

 

누군가에게 들은 데쟈부같은 느낌이 왔다

나에게 그런 말 하는 사람 또 한명 있다. 

바로 아이 엄마, 내 아내다

늘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지만 지금 또 그런다

이틀 전 맞은 코로나 백신 2차 접종을 하고 몸살과 씨름중이다

밤새 온몸 통증에 열이 38도를 넘고 오한까지 오락가락했다

내가 덮는 이불까지 올려주다가 어깨 다리를 주물러주다가

결국 둘 다 거의 밤을 반쪽이상 세우고 말았다. 헥핵…

 

난 이 소동을 겪으며 한편 뿌듯함이 몰려왔다

내 처지가 종종 나를 서럽고 구차하게 몰아넣어 우울해진다

벌어놓은 돈도 쌓아놓은 자리나 명예도 없고 짐덩어리로 살며

이제 건강도 내리막길이라 순례길 꿈도 하나 둘 포기하는 중이다

왜 사나? 무슨 재미로…하는 중에 아내와 아이는 말해 준다

아빠가 없으면 어쩔 뻔 했냐고! 고맙다고! 울면서 진심으로…

아, 나도 쓸모가 있구나!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구나!

얼마나 다행이고 위로가 되는지! 어쩌면 당연한 말이지만

내 처진 어깨를 세워주는 고마운 말에 힘이 난다

살아야지!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는 동안에는!

 

아마 세상의 많은 무용지물처럼 보이는 사람과 생명들도

무언가 유익이 있고 살 가치가 있을지 모른다.

모르거나 겉으로 안보여서 그럴 뿐일지도…

소리없이 속으로 외쳐 본다

‘힘내! 연약하고 초라해보이지만 어쩌면 귀한 모든 생명들아!’

 

 

2021.0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