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끄적/길을 가는 사람...

37년하고도 364일, 그 전날 밤까지도 그랬다

희망으로 2021. 7. 26. 11:23

 

 

<37년 하고도 364일, 그 전날 밤까지도 그랬다>

 

“죄송합니다!”

“아냐, 5시 다 되어가는데 뭘…”

 

시계를 보니 4시 50분을 지나고 있었다

아내는 소변을 빼달라고 나를 깨우고는 미안한지

거수 경례를 붙이는 모양을 하며 웃으며 말했다

‘차라리 ‘충성’ 이라고 하지…’ 속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 미안한 건 아내만이 아니다.

늘 한밤중에 일어나 아내의 소변을 빼는 일은

같은 병실에 곤히 자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미안했다

작지만 후레쉬 불빛을 퍼지게 하고

부시럭 소리에 드르륵! 찌~익! 여러 소리들이 이어진다

잠귀가 밝거나 예민한 사람들은 여지없이 잠을 깨우고 만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소리없이 폐를 끼치고

얼마나 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듯 미안하다고 했는지…

 

열번 괜찮다고 하다가 어느 날은 정말 나도 고단하다

깊은 잠에 들었다가 일어나는 일이 짜증도 난다

‘아,… 이 일을 언제까지 버티고 해야 하는 걸까?

하나님은 도대체 왜 회복시켜주지 않는 걸까?’

문득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의심이 몰려오기도 한다

‘혹시… 원래 병 고치는 기술이 없으신 건 아닐까?

아니면 아예 작정하고 우리를 생까시는 건지도 모르고ㅠㅠ’

어느 쪽이든 실망스럽고 기운이 빠지는 생각이다.

수면 부족은 믿음의 질과 수준을 떨어뜨린다

 

[거기에는 서른여덟 해나 앓는 사람도 있었다.

예수님께서 그가 누워 있는 것을 보시고

또 이미 오래 그렇게 지낸다는 것을 아시고는,

“건강해지고 싶으냐” 하고 그에게 물으셨다.

그 병자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선생님, 물이 출렁거릴 때에 저를 못 속에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는 동안에 다른 이가 저보다 먼저 내려갑니다.”

_ 요한복음 5장 4~7절]

 

그 병자의 심정이 어땠을까?

38년 전 이었으면 아주 어렸을 나이에 연못가로 왔을 거다

그가 물이 출렁일 때마다 움직이려 애썼지만 늘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빠르게 다른 사람들은 연못으로 내려가고 또 기회가 사라지고…

그렇게 38년쯤 지나는 동안 그의 기대와 의지는 너덜해졌을거다

‘에이, 썅! 그만두고 말지! 그냥 죽으면 되지 뭐…’

그렇게 좌절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할만큼 긴 세월이다

오랜 병을 달고 살면서 걷기도 불편한 이가 빠질 낙심…

37년 364일, 그 전날 밤까지도 그랬을 거다

그러니 다음 날 예수님이 나타나 물을 때 시큰둥했을 거다

“병이 낫기를 원하냐구요?

아니, 뭐 그런 질문이 다 있어요?

난 움직이지도 못하는데 누가 도와주지도 않는데

그 사이 시간이 지나버려 이 지경으로 사는데…

약올려요? 제기럴, 궁시렁 궁시렁’

속으로는 그랬을 거다.?

겉으로는 낙담하고 지쳐도 성의껏?대답을 했지만

 

그 병자는 운좋게도, 아님 특별 사례로 횡재했다

‘당신 자리를 들고 일어나 가세요!’

예수님의 그 한마디에 신기한 힘을 느낀 병자는 진짜 일어났고

37년 364일 밤까지도 질기게 빠져 살던 절망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에게는 아직 그 날이 오지 않았다

세상의 여러 고난을 견디고 사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그들은 늘 묻는다.

‘주님, 내일은 오시겠지요??

모든 고통에서 끝난다는 그 재회가 내일은 이루어지겠지요?’

그러나 그 내일이 오고 밤이 되어도 변함없으면 그런다.

‘오늘도 안 오시는군요…’

여전히 그날을 굳게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고?

슬슬 여러 이유를 대며 반은 믿고 반은 안믿는 이도 있고

많은 이들은 아예 접어버리고 고개 돌리고 마구잡이로 살기도 한다

 

누가 그랬다.

‘사랑은 사랑하는 마음 자체가 선물이고

희망은 희망을 가지고 기다리는 그 자체가 힘이다!’ 라고

우리의 기다림은 기다리는 그 마음이?

어쩌면 이미 와 있는 만남일지도 모른다

비록 겉으로는 변화가 없고 길고 긴 지루함이지만

무엇인가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는 중일 거다

분명 하루에 하루를 더해가는 동안 결코 전과 같지 않은 그 무엇,

점수든 공든 탑이든 골인점이 가까워지든가 그 어떤 것이

달라지고 있는 중일 거다. 그렇게 믿고 싶다

그래야 살아지기도 한다

 

“나는 내가 바라던.. 그런 사람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나는 내가 되어야만 하는.. 그런 사람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내가 될 수도 있었던.. 그런 사람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나로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어제의 그 사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가 한 연설의 한 대목이다.

 

2021.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