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지 못하지만... 감사!>
아내에게 34
새벽이면 일어나
잠든 아이를 들쳐업고
산길을 오릅니다
산행을 하겠다고 나섰는데
산비탈에 핀 보라색 도라지 꽃 때문에
첫날부터 무너졌습니다
아내는 비탈을 올라 맨손으로 흙을 파내더니
다음날은 숟가락을 주머니에 몰래 넣어오고
그 다음날은 아예 호미를 들고 나왔습니다
그렇게 좋아하는 당신을 보며
나는 내내 아이를 안고 업고
그저 따라다닙니다
위험하다고 급한 비탈에 핀 도라지를
말하지 않으려는 내 맘과 달리
어느새 손가락은 그곳을 향합니다
당신을 말리지 못한 나는
좋아하다 안스러워하다
어쩔 줄 몰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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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아내와 결혼하면서 100편의 시를 써서 묶어 선물하겠다고
겁도 없이 장담했다가 절반에서 멈춘 제 시 중의 하나입니다.
기도 쉼터를 만들겠다고 시골로 이사한 후 막내딸을 낳고 지내던
짧았지만 꿈 같던 일상이 담겨진 내용입니다.
나중에 딸아이가 자란 후에도 아내는 시어머니와 함께 산을 다녔습니다.
그렇게 아내와 나는 산길을 다니기 좋아했고 비라도 오는 날이면
아이들처럼 슬리퍼를 신고 마실을 다니기도 좋아했었습니다.
했었다는 말은... 지금은 불가능해진 일이라 그렇습니다.
걷는 즐거움, 기도나 노동만큼 소중하고 아름다운 순간들이고 복입니다.
그 기쁨이 사라진 병든 아내는 어느날부터 갈말 게시판이나
페이스북 등 남들이 자랑삼아 올리는 sns 글도 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남들은 당연한 일상의 나들이 글과 사진조차 불가능해진 아픔때문에...
며칠 전 최간사님이 산지기일기에 올리신 ‘가을아침산책’ 이라는 글에서
몇분들이 그 아침 산책과 기도하는 산길을 오가는 사진들을 보았습니다.
감탄이 절로 나오고 얼른 뛰어가서 이른 아침과 오후 노을지는 시간에
걸어보고 싶은 충동을 참기 힘들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신나게 그 길을 가는 분들 표정을 보면서 한편 가슴이 짠했습니다.
혹시나 아내가 이 사진들을 볼까 불안하기도 했습니다.
갈말 게시판을 안보기 시작한 것이 다행이라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누구나 당연하고 언제나 가능하다고 얼핏 생각하는 이 걷는 일들이
결코 모두에게 언제나 당연한 복이 아님을 뼈저리게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그 즐거움과 당연한 일상을 말하지도
자랑도 말라는 그런 심정으로 이 글을 쓰는 거 결코 아닙니다.
부럽다는 댓글을 남기고도 혹시나 불편하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습니다.
‘산길? 숨이라도 편하게 쉬었으면 좋겠다. 말이라도 나눌 정도만 되어도...’
그런 소원을 가지고 우리보다 더 다급한 분들이 제 주변에도 많습니다.
모두가 자기의 처지에서 가능한 일과 불가능한 일들이 다 있습니다.
누구를 비교해서 행복하고 불행하고를 따지는 것은 참 어리석습니다.
성경에도 있고 ‘하늘에 쌓은 재물’이라는 노랫말에도 있습니다.
[가난한 형제는 하나님께서 높여 주시는 것을 기뻐하고
부요한 형제는 하나님께서 낮추어 주시는 것을 기뻐하십시오.
아무리 부요한 사람이라도
들에 핀 꽃처럼 사라지게 마련입니다.
해가 떠서 뜨겁게 내려 쬐면 풀은 마르고 꽃은 져서
그 아름다움이 없어져 버립니다. - 야고보 1,9-1,11]
자기의 처지가 어떠하든지 늘 기뻐하고 감사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누리는 일상이 또 다른 입장에서는 아주 큰 복일 수 있다는
그 진실을 잊지말고 살아야 행복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주시는 처지가 어떠하든지
감사하고 마땅한 복이라고 고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혹시 믿어지지 않는다면 저와 아내의 아픔과 부러움을 떠올려보시기 바랍니다.
공연한 시샘이 아니라 인생의 허리가 뚝 부러진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중입니다.
걷지 못한다는 것, 그 하나가 가져간 삶의 행복이 얼마나 많은지,
우리조차 걷는 복을 누릴 때는 또 얼마나 모르고 다른 불평속에 살았는지.
그러나 그 사실을 미루어 짐작하며 걷지 못해도 드리는 감사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넘치게 공급되는 고마운 도움의 손길이 고맙기만 합니다.
무슨 자격없이 주어지는 날마다의 은총과 자식들을 통한 기쁨도 있습니다.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기뻐하라는 야고보의 말씀이 정답입니다!
걷는 분은 걷는 복을 감사하며 기쁘게 사십시오!
걷지 못하는 우리는 걸었던 날과 또 다른 복을 인하여 감사합니다!
2020.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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