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으로 생각

120 - 사탄아 물러가라!

희망으로 2019. 4. 26. 19:45

<사탄아, 물러가라!>


다리가 아프면서 계단걷기 운동을 중단해야했습니다. 한달이 지나도록 낫지가 않습니다. 그 사이 당수치가 다시 높아지기 시작했습니다. 탄수화물을 줄이고 빵도 면도 간식도 줄이다보니 몸무게가 65키로에서 59키로까지 내려갔습니다. 그래도 움직이니 쉬 지치고 회복은 느리더니... 두달만에 새벽에 다시 심장부정맥이 나타나 고통스러웠습니다. 이런식으로 나쁜 질병의 증상들이 꼬리를 물고 나빠지는 삶이 싫어졌습니다. 산다는게 고통과 근심을 돌려막기 같이 진행된다면 오래 산다는건 결코 복이 아니라는 비관이 몰려왔습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갑자기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몸의 어느 한곳이 망가지거나 불편해지니 의심이 났습니다. 그리고 틀림없이 시험에 빠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예전 아내와 기도원에서 반년정도 지내는 동안 참 불편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뭐든지 툭하면 귀신이 하는 짓이다! 그러는 시각이었습니다. 강아지가 밭을 뛰어놀아도 그랬고 누가 넘어져 다쳐도 그랬고 차가 펑크가 나도 그랬습니다. 누군가 화가나서 불평을 해도 귀신이 들었다고... 정말 괴로웠습니다. 비가와도 바람이 불어도 다 귀신이 그런다는 시각은 신앙의 참 평안이 깃들수가 없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그 괴로움을 당했던 내 입에서  “사탄아 물러가라!” 라는 소리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분명 다른 점은 다리나 몸이 고장나는 것 자체를 사탄이 했다고 보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성경속의 어떤 위대한 믿음의 조상도 결코 편하기만 한 일생을 보낸 사람이 단 한명도 없다는 것이 그렇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다윗 노아 심지어 예수님과 바울 베드로 그 누구도 불행과 고난에서 완전히 벗어난 삶을 산 사람이 없다는 것, 그럼에도 하나님의 메신저들이었다는 결과가 그렇습니다.


문제는 그런 불편하고 힘들게하는 상황이 불러오는 다음 현상들입니다. 그로 인한 절망과 비관과 근심 우울함 등 삶을 파괴하고 감사를 멀리 밀어내게 하는 감정과 죽음을 기웃거리게 하는 나쁜 충동이 사탄이 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불편은 불편이고 노화로 인한 질병은 질병일뿐인데 삶을 통째로 부정하게 하는 이 나쁜 현상은 사탄의 속삭임과 장난질이 분명합니다. “사탄아 예수의 이름으로 명령하노니 내게서 썩 물러가라!” 


예수님이 광야에서 시험당한 배고픔과 추위, 권위에 대한 욕망 등을 떠올려봅니다. 그것들을 밀어내고 분노하기까지 하신 예수님은 기어이 평생을 풍잔노숙과 억울한 누명을 쓰고 매 맞고 상처받고 죽기까지 하는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단 한번도 사탄의 흉계와 유혹에 넘어가서 2차 불행, 진짜 망하는 죽는 길에 빠지지 않으면서. 우리에게 날마다 닥쳐오는 크고 작은 시련들을 봅니다. 징글맞고 끝없고 거의 포기하고싶을 정도로 막강한 고통들을, 불편과 슬픔과 고단함들을. 


믿음의 길을 가는 사람이 할 일은 단 한가지 같습니다. 선을 분명히 긋는 것.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피할 수 없는 현실적인 삶과 내가 일으키는 주도적인 불행을 구별하는 것입니다. 다만 수용해야할 일상은 일상이고 원망과 죽음으로 자청하면 안되는건 안되는 것으로 선을 긋는 마음입니다. 다들 그렇게 사셨고 그렇게 살라고 성경66권을 통털어 줄기차게 보여주고 말하시는 하나님, 직접 본으로 살다가신 예수님 때문입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여기를 넘어서는 감정들은 니 농간이니 인정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