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못 볼 사람처럼...>
“아, 누가 안 바래다 주나? 춥고 어두운 길 혼자 가기 싫은데...”
일부러 들으라는 듯 아이가 빙빙 둘러보면서 실실 웃기도 하면서 그랬다. 난 못 들은 척 책을 읽고 있는데 또 보탠다.
“가다가 무슨 일 생기면 어쩌지? 무서워~”
이제는 아내도 내 얼굴을 힐끔 보면서 뭔가 대답을 기다린다. 아주 모녀가 죽이 착 맞는다. 더 버틸 모양새가 아니다.
“에그, 지금 알바 다니는 거리에 비하면 더 짧고 시간도 훨씬 안늦었는데 혼자 가도 되는데 억지다 억지...”
결국 겉옷을 걸치고 병실을 나와 아이가 머무는 자취방으로 동행을 했다. 사실 그 직전에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내 속이 많이 상했다. 사람들 표현으로는 삐쳤다는 딱 그상태. 딸이 돈 벌겠다고 먼 평창과 용인 에버랜드로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러 가는 일정을 꺼내기에 아무 생각없이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한 마디 말에 내가 부정적으로 초를 친다고 몰아세웠다. 아니라고, 전혀 그런 마음 아니라고 하는데 계속 이어지는 말마다 의심을 한다.
“나 말 안해!”
그리곤 입을 닫아버렸다. 그랬더니 한 30분을 못 넘기고 심심하다, 왜 아무 말도 안하냐 힐끔 쳐다보며 종알거리다가 돌아가야겠다고 딸은 엄마곁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내게 은근히 자취방까지 동행해달라고 시위를 한다. 어이가 없다. 삐지게 해놓고 내 기분은 전혀 가고 싶지 않은데 몰아부친다. 남의 속도 모르는 사람이거나 알면서도 고약하게.
사실은 바로 하루 전에도 아들놈에게도 비슷한 면박을 당했다. 나이든 사람, 그것도 한국땅에서 흔히 하는 남자 위주의 사고방식으로 여자의 입장을 무시하며 말한다고 내게 핀잔을 했다. 아니라고 변명해도, 그렇다고 인정을 해도 계속 되는 불소통의 분위기에 기분이 참 상했었다. 아들은 아들대로 ‘아버지와 말하고 싶지 않아요!’ 라고 선언을 하고. 아마 그 기분이 계속 내게 찌꺼기처럼 남아 있었나보다. 세대차이, 남자와 여자의 사고방식 다름에서 올 수 있는 흔한 갈등이고 다툼이다.
하긴 뭐 내게만 생기는 일은 아니다. 수천년전 어느 동굴 벽에 쓰여진 글에서도 ‘요즘 젊은 것들은 버르장머리가 없어!’ 했다던가? 심지어 예수님도 하나님 결정에 동의가 안되었다. ‘이 잔을 좀 치워주면 안돼요? 정 안되면 뭐 할 수 없고요’ 라거나, ‘아버지, 왜 절 버려요? 너무 힘들어요!’ 했다. 하물며 세상 속 좁아터진 일반인들 사이에서야 뭐 너무 당연한 불소통이 생길 수 있다.
어쨌든 이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고. 우리집엔 가족간의 평화를 위해 지키는 규칙이 몇가지 있다. 그 중 하나는 ‘아무리 싸워도 그날 안으로 풀고 밤을 넘기지 않는다’는 것. (사실 분을 품고 잠자리에 들지말라는 성경의 가르침은 하나님의 남자 편애다. 분을 품고 밤을 넘기면 십중팔구는 남자가 돤통 피를 본다. 손해막심이더라는)아내와 거의 이 규칙을 30년 가까이 잘 지키며 사는 것 같다. 물론 일년에 한 번, 두 번 정도는 2-3일 가는 적도 있지만 거의 그날로 푼다.
또 하나는 서로 속상하고 다투더라도 집을 나갈 때는 절대 화난채로 나가거나 보내지 않는 것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다시는 못 볼 사람처럼’ 이다. 아내와 둘이서 그렇게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도 적용하게 되었다. 화난 채로 집을 나간 뒤 다시 못 볼 일을 당하면 우린 평생 그 마지막 표정, 마지막 가시 돋친 말을 안고 살아야하는 불행에 빠진다는 것을 자주 설명했다. 그래서 아이들이 어릴 때 혼나고 집에서 나갈 때도 꼭 안거나 진심으로 잘 다녀오라고 풀고 내보냈다. 물론 아내와 나도 그 규칙을 가능하면 지키느라 갈등이 있어도 모진 표정, 모진 말을 하지 않으려 애썼다.
마지막 헤어질 때 나쁜 말을 하고 다시는 얼굴 볼 수 없게 된 가족이 평생 괴로웠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본 후로 내가 결혼하고 가정이 생기면 절대 안그래야지 하고 만든 규칙이었는데 비교적 잘 지켜졌고 우리 가족들 모두에게 공감을 얻고 잘 자리 잡은 덕분에 평화를 유지하는 소득도 있다. 그러니 아이가 기어이 삐진 나를 옆구리 손 넣고 끌고 걸어가며 기분을 풀어주는 애교를 부린다.
“아빠, 여기 서울인데 주말이라 그런지 차표가 매진되고 없어 ㅠ 어쩌지? 서울역으로 가서 기차를 타고 가야할 거 같은데 밤 늦게 도착하니 좀 차로 데리러 와줘, 안돼? 안되면... 택시 타고 가야지 뭐,”
그 일이 있고 24시간도 지나지 않은 하루만에 이렇게 전화가 온 것이다. 빨래방에서 밀린 빨래를 돌리고 있는데. 속으론 아직 어제의 감정이 남았는지 삐딱한 맘에 ‘그래! 택시를 타던지 버스를 타던지 걸어오던지 니 맘대로 해!’ 라고 하고 싶었지만... “알았어...” 라고 대답을 했다. 학교 친구랑 공연을 보러 울산에서 청주에서 서울로 가서 만나 공연은 잘 보았는데 그만 버스 차표가 매진 되었다고. 부득이 예정했던 버스를 포기하고 그나마 입석표를 구해 기차를 타고 내려 온다고.
‘다시는 못 볼 사람처럼!’ 가훈 아닌 가훈처럼 외우며 살았는데 말로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미쳤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억지로 꾸며서 흉내만 내고 말로만 하면 오래 가지 못한다. 진심도 통하지 않고 오히려 역효과만 났을 거다. 그리고 부모가 아이들에게 설득 해놓고 본을 안보인다는 건 더 창피한 모습이다. 그러니 행동으로 할 수밖에.
‘에그... 좀 제대로 미리 예매하고 다니지, 주말인거 알면서도...’ 속으로 그 정도 핀잔만 하고 기차역으로 늦은 밤 시간 차를 가지고 나갔다. 다시 못 볼 사람처럼 잘 헤어진 어제 밤에 이어 다시 딸을 만나 얼굴을 보니 반가웠다. 그렇게 어젯밤에 서로 풀고 산 덕분에 훨씬 가볍고 웃는 사이로 말이다!
자취방에 내려주면서 또 최선을 다해 마음보다 한 술 더 보태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넸다. 다시 못 볼 수도 있는 사람처럼.
“고단할텐데 춥지 않게 잘 자! 내일 에버랜드 면접 잘 보고 오고, 아자!”
(사진은 충북대병원에서 수술 후 엄마곁에 누운 딸, 늘 좁은 침대에 기어이 옆을 파고 든다. 이제 덩치가 작지도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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