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끄적/길을 가는 사람...

내가 지금 뭐하고 있지?

희망으로 2017. 11. 12. 08:11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거지?>

“어떻게 하지? 무슨 방법이 없을까?”

발을 동동 구르고 안절부절 마려운 소변을  참는 아이처럼 어쩔줄 모르며  서성거렸다.

“안타깝지만... 암입니다. 이미 초기를 지난 것으로 보여 수술을 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의사의 검사결과 설명을 들으면서 정작 내게 닥친 암 걱정은 안되었다. 살지 죽을지 모르지만 그건 될대로 되라고 하고, 정말 캄캄하고 암담한 이유는 당장 감당해야할 아픈 아내를 돌보는 일이었다.

“수술하는 동안, 그리고 회복하는 동안 아내를 어떻게 하지? 아들들에게 대소변을 맡기기도 불편하고 유급 간병인을 살 돈은 한달치도 없는데 무슨 수로 마련해? 천상 딸에게 학교를 접고 간병을 하라고 해야하나?...”

내가 병원 입원해서 곁에 없는 동안 아내를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이었다. 그러다 내가 잘 회복이 안되어 오래가면서 지쳐 도저히 항암주사와 방사선 치료등을 받으며 병실 보조 침대에서 생활할 상황이 못될 경우를 떠올리니 더 난감해졌다.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면서 정신을 차렸다. 꿈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꿈에서 깨어서도 걱정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언제라도 올 수 있는 현실의 가능성이 더 실감나서 공포감이 몰려왔다. 몇년동안 계속되는 몸의 건강검진 결과가 그랬다. 간수치 위염 당뇨경고 등등. 어느날 그런 진단이 내려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고 올것이 온 기분이 들 정도로. 하기는 그런 생활을 십여년을 하고 있으니.

새벽 3시경 잠이 깨어 두 시간이 넘도록 뒤척이며 벗어나려 애쓰는 동안 한쪽에서는 참 하기싫고 실재로 오랜세월 안 하던 남 탓이 몰려왔다. 나라는 인간은 왜 충분한 돈도 벌어 놓지 못했는지, 우리 부모는 왜 팔 땅 한조각도 유산으로 좀 물려주지 못했는지 등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숨이 답답해졌다. 불을 켜지 못하는 병실의 어둠과 다들 잠이들어 조용한 병실이라 소리도 내지 않아야하는 시간대가 참 괴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라도 붙잡고 이런저런 수다라도 떨면 좀 잊어버릴것도 같은데 그럴 수도 없는 때니. 

이렇게 혼자 고스란히 적막한 두려움과 외로움을 털어내지 못해 힘들때면 낮에 밀어내던 미운 사람조차 그리워진다. 미워하면서 속으로 하던 남에게 험담을 하던 이렇게 처절하게 혼자인 느낌보다는 나았다. 미움도 살아가는데 동력이 된다는 걸 새삼 실감하게 된다. 미워하고 잘난체 하는 동안에는 결코 혼자 만이라는 고독에 빠지는 법은 없으니.

끝없이 이어지는 나쁜 생각을 떨치고 싶어 귀에 꽂은 이어폰으로 찬양을 듣는 중에 고맙게도 하늘의 위로가 내려왔다. 나를 걱정맨 이라고 놀리는 아이들중 딸아이가 내게 했던 말이 갑자기 떠올랐다. 

“지금 걱정하는 일이 일어난거야?”
“아니, 아직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올게 뻔하니까...” 
“그럼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미리 그럴 필요 없잖아? 생기면 그때 걱정하면 되잖아?”
“뭐 그렇기는 하지”

그랬던 대화가 문득 민망하게 기억이 났다. 그때도 느꼈지만 아이 만도 못하다는 부끄러움과 함께.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거지?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상상으로 불러 와서 근심하는 건가? 잠까지 설치면서? 에구...’

‘내일 일을 염려하지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날의 괴로움은 그날로 족하니라’ 라고 아무리 성경구절을 한 글자도 안틀리 게 외우면 뭘하나?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 라고 하루종일 찬양을 입에 달고 흥얼거리면 뭘하나? 이렇게 아직 오지 않은 내일 일을 염려하느라 신새벽 잠을 설치며 뼈가 마르게 걱정을 하는 수준이니...

탈출할 바늘구멍 만한 빛 한줄기 안보이는 두려움과 너무 가난하다고 막막한 원망으로 질식할것 같던 순간들이 마치 누구에겐가 사기당한 기분이 들었다. 어떻게 감쪽같이 속았는지 분했다. 잘못하면 우울증에 숨쉬기 불편한 신체증상을 넘어 협심증의 공포에 빠질수도 있었던 서너시간이 아까웠다. 

물론 걱정하는 일들이 실재로 현실로 올 수 있다는 거 나도 안다. 누군들 어떤 일이 안생긴다는 보장각서 들고 사는 사람있나? 다들 생명의 다음 날 결과를 모르고 살기는 마찬가지인데 올지 모를 불행을 미리 오늘로 끌고와서 내일이 오기도 전에 오늘을 작살 내며 사는 미련한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혹시 그런 반응을 보이는 남을 보게되면 우리는 속으로 웃기 조차 한다. ‘미련한 사람 같으니!’ 라며.

다행이다. 그리고 민망하다. 그래서 내가 한심하고 분하기도 한다.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 번쩍 깨닫기 까지의 시간이, 탈출하던 순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