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끄적/길을 가는 사람...

건물의 벽이나 병원의 가구처럼

희망으로 2017. 11. 15. 13:09

<건물의 벽이나 가구처럼>


치료실로 회진을 돌고 가신 원장선생님.

 

아무 말씀 없으셔?”

, 그냥 지나가시던데.”

그랬구나, 그냥 가셨구나...”

 

병원의 장기환자가 되면서 오는 현상.

특별히 나아지지도, 그렇다고 죽지도 않는 환자

그냥 병원 건물의 가구나 벽처럼 무심해지는 대상

 

걱정마! 비록 의사선생님에게는 잊혀져도 난 기억해,

당신의 표정과 목소리와 모든 것을!”

 

그러며 손등을 탁탁 쳤다.

아픈데...”

그래, 살아있다는 증거지! 아프니까 생명이지,

죽은 사람은 아프지 않아! 크크

 

그런데 웃어도 어딘가 서늘하다...ㅠㅠ

(회진 몇 시간 전 아침에 쓴 글)


**********************************************.

 

<병실에 아침이 오면>

 

부시시 일어난 병실의 이른 시간

잠 덜 깬 걸음으로 소변버리러 가는 길

복도에 길게 들어와 눕는 햇살 한줄기

 

여기저기 병실의 문이 열리고

밤새 이런 저런 이유로 잠 설친 사람들이

환자로 가족으로 혹은 돌보는 간호사로 마주치는 시간

 

어둠이 가도 같이 가지 않는 몇몇들

통증 고단함 걱정, 그리고 슬픔이 슬리퍼 끝에 늘어져도

그래도 밤에는 없던 햇살 대화 분주함이 힘 되는 시간

 

바깥세상에도 아침은 같이 오고

출근 등교, 상점들은 문을 열고 하루를 준비하겠지?

조용하던 도로에 차들이 늘어나고 소리가 많아지고

산에는 남은 잎들이 다시 허리 펴고 새들이 노래하고...

 

아직 이별을 하기에는 많이 남은 날들의 아침

아직 포기하기에는 든든한 사랑하는 이들의 위로 사랑들

아직은 다시 어둠이 오기까지 할일이 많은 시간

그 아까운 보석들이 더 분명히 느껴지는 이른 아침

 

다시 저녁이 오면

세상은 누군가를 구속하고

칭찬 받지 못하는 길을 가는 교회를 비난하고

대박난 기업과 성공한 이의 뉴스로 가득찰 것이고

 

아픈 사람과 그 가족 소수를 잊고 사는

더 많은 건강한 이들의 세상이 계속되고

그보다 적은 이들 중에서 다시 몇은 세상을 떠나는 밤이 또 오겠지

분명 낮의 전쟁터와는 또 다른 잊혀 진 감옥일지라도

 

그럼에도

병실에 아침이 오면

부시시 열리는 투병의 하루

 



(그림은 정영주화가님의 새벽길이라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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