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와 필요... 혹시 예외인 분 계시나요?>
부모 자식 사이면 아무 서운함이 없을까?
물보다 진한 피를 나눈 사이고 목숨도 내어줄 수 있다는 혈육이니까
어떤 욕심도 접고 어떤 요구도 들어줄 수 있을 것 같지만 정말 그럴까?
그런데 인정하기 싫지만 아니더라.
부모와 자식의 나이가 다른 위치에서 오는 가치관 차이가 있어서 그렇고
부모와 자식이라는 책임과 의무의 입장이 달라서 또 그렇고
피를 나누어도 성격과 취향이 다른 고유한 개인차 때문에 또 그렇더라
그 다름이 가시가 되어 누구보다 가깝다고 덥썩 껴안았다가 찔린다.
피가 나고 상처가 나고 아픈 통증이 마침내 기대치가 무너진 서러움이 되고...
“이제 살 날이 산 날보다 적으니 욕심을 더 키우지말고 슬슬 정리도 해야되겠어”
“요즘 자주 몸이 여기저기 삐거덕 거리고 경고 신호가 울려서 좀 불안해”
“너무 많은 짐들을 가졌다는 생각이 가끔 들어서 미리 버리고 치울려고 해”
듣던 아이가 짜증을 내었다. 자꾸 그런 이야기 하는 횟수가 늘어난다고 듣기 싫다고.
그러나 어쩌랴, 저절로 몰려오는 부담이고 관심사가 되는 현실을 피할 수 없는데.
듣기좋은 의욕적인 이야기, 마냥 자신감에 넘친 계획들, 뭐 그런 말만 하면 좋겠지만,
‘나쁜 놈들, 너도 언젠가 내 처지가 되어봐라. 마냥 씩씩한 생각만 하며 살아지는 지...’
한계를 느낀다.
남보다 더 가깝고 이해해주고 무엇이든지 동의를 해줄 것 같아 바닥의 말 꺼내고,
따뜻하고 고맙고 내 편 되어준다는 생각에 경계없이 더 다가가다가 그만 가시에 찔린다.
그렇다고 밀어낸다고 남이 되지도 못하고 등 돌릴 수도 없어서 그저 한발치 거리에 두고.
말로도 인정하기 싫지만...우리는 모두 영원한 타인이다.
자기가 산 삶은 자기만 평가를 받는 1인 1심판의 엄격한 분리법칙.
그래서 단 한사람만 머물수 있는 섬의 주인들로 일생을 산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도 배우자도 자녀도 마지막 한 걸음은 같이 못가주는 길.
다만 그 사이를 흐르는 강이 너무 넓어지지 않기를 애쓰며 사는 평생이다.
그러다가 또 필요를 느낀다.
내 몸 병들어 드러눕고 춥고 쓸쓸해서 울음 터지면 남들은 부담되고 흉하다고 도망가도,
가족이니까, 자녀들이니까 그래도 감당해주지 않을까? 누군가 의지할 곳이 있어야 하니까.
너무 믿다가 다치고, 밀어내다가 다시 그립고 아쉬워 찾는 사이. 부모와 자녀라는 가족.
한계와 필요의 다른 두 대상을 하나의 몸, 하나의 삶에 담아 살아가는 나날들.
무엇이 시원스런 정답이 될까? 어느 한쪽으로 확 기울어서 선택하는 것이 해답일까?
날마다 두 세계 사이의 경계인으로 오락가락하는 사이에도 생명의 카운터는 계속 된다.
시간은 되돌아 오는 법 없는 강물처럼 앞으로만 흐르고...
홀로는 못사는 세상, 하나님과 성경은 그러지 말라고 단호하게 명령도 하고.
그러면서도 아무도 가장 깊은 고독은 받아주지 못하며 끝까지 동행은 못한다는 경고를 하고.
서글픈 진실을 거듭 말해주는 하늘 아버지의 말씀, 법칙, 진리가 밉다.
‘어느 날인가 아이들이 내 나이, 부모라는 내 자리에 오면 또 나의 이 괴리감을 안고 살겠지?’
그 생각이 미치면 마음이 짠해진다. 그 날에 간신히 부모의 심정과 처지를 기억하면서 다시 홀로 자녀와 밀당하며 버틸 모습이 그려진다. 그 자리에서 울적해 하며 서성일 자녀들이 미리 안쓰러워 봄눈 녹듯 녹아 사라지는 아이들에 대한 마음, 부모의 천형은 오늘도 계속된다.
‘혹시... 하나님도 우리에게 이러면서 견디며 사시는 건 아닐까? 에구, 미안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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