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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가뜨려 놓고 미안 한 것

희망으로 2016. 7. 21. 09:09




<망가뜨려 놓고 미안한 것>

 

에취!’

!’

 

연달은 재채기에 콧물은 주르르, 눈은 시리고 아프고 으스스 한기까지.

영락없는 몸살과 감기의 시작 증상입니다.

 

에고, 7일이냐 한주냐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겠네.”

 

이 말은 약을 먹으면 한 주, 그냥 견디면 7일 정도 걸린다는 속세의 평가입니다.

실제로 몸살감기를 경험해본 내 기억으로도 어느 정도 맞는 말입니다.

어쩌지요? 내가 아픈 건 뭐 그냥 버티고 때우면 되지만, 아픈 사이 당신에게 소홀해지고 수시로 짜증스런 반응으로 대할테니 미안해서...”

 

예전에 지독한 몸살로 겉옷까지 껴입고 이불을 2개나 덮고도 오들 떨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보다 못 견딜 일은 늘어진 몸을 어김없이 수시로 일어나서 식사시간, 소변시간, 치료시간 등 움직여야하는 괴로움이었습니다.

 

제발 맘 놓고 좀 누워 아프기라도 하게 해달라구요! 이게 뭐예요...”

 

그랬던 날들이 무슨 나쁜 꿈 꾼 기억처럼 떠오릅니다. 이렇게 몸이 아플 때면.

 

그런데..., 돌아보니 몸살이 날만도 했습니다. 좀 여러 날 마음을 못살게 괴롭혔습니다.

이유 없지는 않았지만 이유보다 과한 우울한 상태로 밥도 잠도 불규칙하게 했고,

지나치게 먹거나 지나간 드라마를 20편을 연달아 한 번에 보기도 하는 등 동동거렸습니다.

그러니 못 견딘 마음이 몸으로 망가뜨리기 시작한 거 같습니다.

달이 차면 기울 듯 자연현상에 가까운 법칙입니다.

 

지갑을 정리하다가 잊고 지내던 카드를 발견했습니다.

장기기증등록증. 아내와 나는 언젠가 둘째 아들의 장기기증등록증을 우연히 보고 대견했고, 우리도 당연히 따라서 신청했습니다. 이미 나이가 들어버려서 더 중요한 몇 가지 기증은 이미 제외되었지만 사후신체기증까지 했습니다.

 

보면서 아차! 싶은 마음이 몰려왔습니다.

이미 내 몸은 나만의 것이 아니고 나중에 누군가 귀중하게 사용할 생명인데...’

장기기증을 약속해놓고 몸을 함부로 망가뜨린다면 약속을 어기는 것이다 싶은 미안함이 들었습니다. 아예 하지를 말든지 아니면 소중히 남겨주는 게 도리지요 신앙인이라면 더구나.

 

그러고 보니 내 몸도 누군가 소중하게 물려준 흔적입니다.

만약 아버지 어머니께서 자신들의 몸을 엉망으로 굴리며 살다가,

그 상태로 나를 태어나게 하셨다면 아마도 60여년이 다 되어가는 이 날까지 건강하게 살아갈 수 없었을지 모릅니다. 어딘가 망가진 채로 태어났을 수도 있고, 오래 못쓰고 고장 나서 삐걱거리며 괴로움을 안고 살아갈 수도 있었을 거라는 예상이 됩니다.

 

아버지 어머니, 고맙습니다! 건강한 상태로 낳아주시고 최악의 양육으로 키우지 않아주셔서 이렇게 건강하게 살게 해주셔서!’

 

세상에서 친부모임에도 자녀들을 끔찍하게 키우거나 때리고 심지어 죽이는 뉴스를 자주 보면서 단순히 행운으로만 기뻐하기에는 비교할 수 없는 큰 고마움이 깊이 새겨집니다.

 

나도, 몸 최대한 소중히 잘 사용하다가 누구에겐가 물려주어야지!’

 

결심을 해봅니다. 그러려면 마음 다스리는 것부터 출발해야겠지요.

몸 상태나 겉으로 드러나는 것들은 이미 결과입니다.

사람의 나이 40이 넘으면 얼굴은 내면의 상태가 만든 얼굴로 바뀐다지요?

어디 얼굴만 그러겠습니까. 마음의 상태가 몸을 좌우하는 것도 필연입니다.

화장하고 근육 키우고 단장하는 외모보다 훨씬 큰 몸의 값어치가 안쪽에 있습니다.

 

사람들의 눈은 겉모습으로 감추거나 포장할 수 있지만 건강한 몸의 상태는 그럴 수 없습니다.

그건 몸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요란한 인사나 제스츄어로, 의도된 연기로 일시적 사람들의 호감은 얻을 수 있어도 오래 동행하면서 드러나는 성품은 도저히 감추거나 속일 수 없습니다.

 

신앙도 그런 대상의 하나같습니다.

보이는 것, 보여 주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진심, 정직함은 더 귀한 것입니다.

신자가 주일날 교회 안에서 보이는 거룩함만큼, 보이지 않는 평일에 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그보다 더 거룩한 진실로 보내는 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합당한 순종일지 모릅니다.

 

사람은 속일 수 있지만 하나님께는 행동은 당연하고 마음속 일어나는 잔바람까지도 들킵니다.

도무지 속일 수 없는 분께 24시간은 늘 열려 있고 전망대 앞의 풍경일 뿐입니다.

그래서 사람에게 보이려고 기도하거나 소리 지르지 마라, 골방에서도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성경은 말했나봅니다.

 

모든 시간에 몸에 대해서도 정직하게 대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남들에게는 보이지도 않는 마음을 더더욱 무릇 지키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물려받을 때부터 내 것 아니고, 나중에도 내 것 아닐 생명이니 더욱 그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