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끄적/길을 가는 사람...

무엇이 정답일까?

희망으로 2015. 10. 2. 21:36

<무엇이 정답일까?>

 

어디까지 보여야 정답일까?

 

지겨워! 못살겠다!”

 

기어이 밥상을 앞에 놓고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그러려고 한 것은 아니었는데 마침 들른 영양사 선생님의 말 한마디에 그만 그랬다.

새로 먹기 시작한 약의 부작용인지 계속 이상증상이 나타났다.

입 마름 불면증 피부부스럼, 여기저기 돌아가며 불편하더니 마침내 허리 통증까지.

결국 재활치료도 포기하고 밥이나 먹자고 침대 등받이를 세우는데 그것도 아파서 스톱했다.

 

아이고, 많이 아프신가보네요? 식사는 하셔야하는데...”

 

딱하게 여긴 영양사선생님의 그 말 한마디에 꾹 참던 내 성질머리가 폭발했다.

 

아픈 데가 하나 둘도 아니고, 속 터져요!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한 곳 두 곳도 아니고!”

 

사람들은 두 가지 모습으로 나를 본다.

끝없이 잘 참고 대견하게 간병한다고 보는 무조건 칭찬하는 쪽과

늘 죽는 소리하고 찡그린 얼굴로 힘들다면서 근심한다는 비판하는 쪽으로.

 

나는 솔직히 둘 다 싫다.

속은 문드러지는데 겉으론 아무 일 없는 사람처럼 대해야 하는 만남이 무슨 소용인가.

그렇다고 사사건건 징징거리며 한숨 쉬고 비관적인 대화만 하는 사람도 유익하지 않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적당히 숨기고 어느 정도 지나면 더는 내색을 안 하든지 거리를 두고 안 만나든지.

 

 

 

2. 어떻게 만남을 이어가야 정답일까?

 

즐겁지 않은데 살아야 하는 처지란 고단하다.

무슨 고상한 이유를 만들거나 합리화하면서도 여전히 보기 사납고 예민한 건 어쩔 수 없다.

 

만약에 복싱경기를 1회전 2회전 끊어가며 하지 않고 연속으로 하면 선수들이 얼마나 힘들까?

축구경기를 전반전 끝나고 바로 이어 후반전하고 연장전하고 그러면 아마 쓰러질 거다.

인생도 그렇다.

 

예전에 통째로 두려움과 걱정을 안고 아내의 중환자실과 병실을 지키는 것이 힘들어서

하루씩단위로 끊어서 고민하고 해결하기로 작정을 했다. 그렇게 반복해서 노력도 했다.

스스로 하루살이삶이라고 일용할 양식만 기도하면서 버티는 데 정말 도움이 되었다.

마치 10미터 앞도 안 보이는 안개 낀 도로는 1미터 앞만 보면서 가야하는 이치처럼.

 

그런데 그것도 힘든 날이 있었다.

아내가 면역억제제 주사와 약으로 집중치료하면서 장염이 수시로 생겼다.

먹는 것이 없어 링거와 주사만 맞으면서도 물총처럼 설사를 쏟아내는데 기저귀로 안 되었다.

하루에 열 번도 넘게 기저귀를 갈고 환자복과 침대시트를 갈아야 하는데 견디기 힘들었다.

고단하고 우울하고 잠을 자지 못해 온 몸이 늘어지고...

 

그래, 하루도 길어, 딱 두 시간만 살아보자! 그 뒤는 살아있으면 또 두 시간 살고!’

 

그렇게 하루도 길어서 두 시간짜리 인생이라고 마음먹으면서 버텼다.

그러면서 끝없이 속으로 되풀이하는 명령은 끊자, 끊자였다.

살아갈 남은 여러 날도 하루로 끊어 버리고, 사람도 기대와 바람을 거리두기로 끊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희망, 그 기대들이 무너질까봐 두려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어긋나고 깨어지는 순간순간의 현실들을 도저히 서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질병도 살림도 만남도 사람에 대한 기대도 모두 그랬다.

 

걱정 마! 우리가 곁에 있잖아! 우리가 끝까지 도울게! 기도할게!’

혹은 반드시 나을 거야! 곧 고생이 끝나고 좋은 일만 있을 거야!’

 

뭐 그런 울타리를 치고 장미빛 내일을 보장하듯 던지지만 결코 실상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그러니, 막연한 의지를 붙들고 살기란 너무 위험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모든 벽을 치고 스스로를 밀폐된 독방에 가두고 살 수도 없으니 낭패다.

 

그래서 생긴 방법이 짧게, 작은 단위로 끊고 또 끊고, 그러면서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산다.

다 열어 제치면 바깥으로 무너지고, 다 막아버리면 안으로 무너지니.

마치 경계선 칼날 위로 아슬아슬 줄타기 하는 사람처럼.

 

 

3. 기도는 얼마나, 어떻게 해야 정답일까?

 

기도를 하면 모든 것이 이루어질까?

기도를 안 하면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고 살 수 없는 걸까?

 

사실 기도를 한다고 해도 모든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사람들은 안다.

그리고 기도를 안하는 사람도 당장 어떻게 되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도 안다.

그러면 하든지 안하든지 별 다름이 없는데 신앙인들은 왜 기도를 하는 걸까?

 

아내가 처음 발병하고 심각해질 때 거의 죽기직전까지 기도했다.

먹고 자는 것도 거의 멀리한 채 그렇게 살았더니 한 달 만에 내가 먼저 죽을 정도가 되었다. 어느 분이 아내보다 내가 쓰러지면 다시는 못 일어날 만큼 6대영양소가 다 바닥났다고 걱정했다. 체중은 거의 10키로가 빠졌고 빈혈과 황달까지 왔다.

 

사람들은 그렇게 무슨 비상이 생기면 기도에 매달린다.

아이를 낳게 해달라고도 빌고 대학에 입학하게 해달라고도 빌고 사업이 성공하게도 빈다.

하물며 사랑하는 가족의 생명이 오락가락하면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면 그 기도는 다 이루어지는 걸까?

정성이 약한 기도는 안 이루어진다면 그렇게 절실한 기도는 다 응답받아 다 살아나야 한다.

그만큼 절절한 마음으로 하는 기도가 어디 있다고.

 

그러나... 기도의 결과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그럼에도 기도를 계속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의 평안을 위해서라고 누구는 말을 한다.

그럼 기도를 올리는 그 대상은 순전히 허수아비 폼만 내는 죽은 신일까?

 

우리는 안다. 기도를 해도 살고 죽고, 기도를 안 해도 살고 죽는다는 사실을.

그럼에도 믿는 사람들, 특히 고통과 지겨운 날들을 하루도 길어서 몇 시간으로 끊어서 사는 사람들, 누군가와 오래 관계를 지속하기도 껄끄러워 만남도 끊고 끊으면서 적당한 거리로 사는 사람들은 안다.

 

기도를 하면서 우리는 기도의 내용을 조금씩 이동해간다는 것을.

처음 출발은 모두가 회복과 성공과 행복을 바라는 똑같은 내용이지만

갈수록 믿는 이들은 인내와 수용과 겸손, 감사로 바꾸어 간다는 것을.

비록 겉으로 보이는 처지는 다르지 않고, 하루는 여전히 고단할지라도.

 

 

4. 바닥난 사람도 더 나은 사람을 감동시킨다.

 

아내는 많은 것들을 상실했다.

재산 명예 친구 등 여러 면에서 나보다 훨씬 많은 것들을 잃고 바닥을 드러냈다.

더구나 살림을 지속하기 위한 현실적 이유로 신용불량자라는 멍에까지 아내가 대신 짊어졌다.

 

정말 나와 비교도 안 되게 크게 바닥난 것은 몸의 건강이다.

걷고 앉고 하는 것부터 팔다리 기능의 상실은 물론이고 대소변도 마비되어 혼자 안된다.

건강한 내게는 둘씩 있는 폐도 눈도 하나씩 상실하고 남은 하나로 버티고 산다.

그게 얼마나 불편하고 취약한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짐작도 못한다.

 

그런 아내가 아프기 전 좋아하는 것 중의 하나가 그림이었다.

손 놓고 멀어진 그림을 8년 만에 다시 손에 색연필을 쥐고 그리기 시작했다.

비록 선이 그려진 밑그림에 채색을 하는 것 뿐이지만 자기가 선택하는 색상으로 칠한다는 그 기쁨은 크다.

 

아는 사람이 보내준 색칠하기 그림책에 내가 사 준 색연필로 조금씩 바들바들 떨면서 칠했다.

하루 이틀 조금씩 그려나갔다. 어떤 그림은 거의 일주일 만에 한 페이지를 완성했다.

나는 다시 내 눈으로 아내가 선택해서 칠한 그림을 보는 감동에 빠졌다.

그린 후에는 쓰러져 끙끙 앓고 쥐가 나서 힘들어하지만...

 

이 그림이 무슨 생계대책이 될까? 명예 회복을 할 만큼 진전이 있을까?

전혀 미미한 아이들 장난 같은 일이지만 참 열심히 하며 기뻐하는 아내를 바라본다.

어쩌면 산다는 것은 두 시간의 보장도 필요 없고, 누군가와 깊은 관계가 유지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순간에 하고 싶은 마음을 다해서 살고, 그 뒷감당을 견딜 각오만 한다면 살아가는 것 아닐까?

높낮이를 무시하고 나보다 열심히 기쁘게 사는 아내 앞에서 긴 간병의 지겨움과 분노를 삼킨다.

 

누구 앞에서 무슨 배부른 태도를...’

 




(그림 그리고 지쳐 잠든 아내 배에 그림책을 올리고 사진을 찍었다. 이렇게 열심히 사는 당신이 고맙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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