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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싫어지는 하나님과 함께 살기 (줄인편집본)

희망으로 2015. 8. 8. 09:57

<가끔은 싫어지는 하나님과 함께 살기>

 

1. ‘그럼 난 뭐야?’ 하는 하나님

 

나는 아신교입니다! 나를 믿는 교? 하하하!”

 

예전에 일하던 곳에 친한 동료하나가 하나님 믿는다는 내 말에 그렇게 대답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 중에 보일수도 있는 조금의 얌체 짓을 비난으로 보태면서. , 이해는 간다. 교회 30년 넘게 다니는 나에게도 못마땅하고 부끄러운 면도 있으니.

 

그래도 그 사람은 정말 성실히 일했다. 놀러 다니고 사치하는 생활은 보기 힘들었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땀 흘리고 일하며 검소하게 사는 모습은 남의 입을 막을 만했다.

 

하나님이 다 하셨습니다!”

 

교회에서도 좀 높은 분인 그 분은 말은 그랬다. 그런데 종종 다른 사람들이 칭찬과 최고 대우를 해주지 않으면 가차 없었다. 예의가 없거나 감사할 줄을 모른다고 욕했다. 또 별 능력도 없는 주제에 도움 주는 사람에게 굽신거리지 않는다면서. 그러니 말로는 하나님이 다 하셨다지만 속으론 자기가 다 했고 자기의 힘이 아니면 안 된다는 듯 그랬다.

 

그런데...

나는 그들이 모두 부럽다.

아신교 동료는 자신의 힘으로 가족을 먹이고 주위에서 인정받는 모습이 그랬다.

(단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만 빼면.)

 

또 믿는 자로 능력과 재물도 갖추고 무슨 일에든지 거침이 없고 팍팍 해결하는 그분도 그랬다. 교인들이 흔히 말하는 기준으로 보면 야베스와 야곱의 복을 무더기로 받은 신자의 모델쯤 되어보였다.

 

나는 그런 그들이 너무 부럽다 못해 슬프기조차 했다. 비교조차 안 되는 지금의 내 형편과 처지가 안타까워서...

 

나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요.

사회와 교회에는 고사하고 부모 형제 아이들에게까지 무익한 버러지 같다고요.

비 오는 날, 땅을 기어 다니는 지렁이나 채소에 붙어 잎이나 뜯어먹는 벌레와 뭐가 달라요?“

 

딱 그랬다.

아내가 졸지에 아프면서, 그것도 가벼운 감기정도가 아니라 중증환자가 되어 24시간 간병하며 사는 처지가 되면서 더욱 그랬다. 아내와 단 둘이라면 그냥 어디 낮선 곳으로 숨어들어가 조용히 세상을 떠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했었다.

 

이렇게 무익하고 남의 아까운 돈과 시간만 축내면서도 살아야 하는 이유가 뭐야?

물려받은 재산도 없고 타고난 재능도 없지, 그나마 열심히 일해서 먹고 살았는데 이제 그렇게 사는 것조차 허용도 안 되는 마당에...’

 

나도 모르게 투덜거리는 말이 새어 나오기 일쑤였다. 하나님 이름을 대놓고 부르지는 못하면서도 시선은 자꾸 하늘로 향했던가?

 

무슨 큰 자리나 한밑천 달라는 거 아니잖아요? 그저 식구들 안 아프게만 해주면 사는 날 동안 제가 열심히 몸뚱이 움직여서 먹고 살겠다고요. 그거 하나 해주는 게 뭐 대단하다고 이래요?’

 

그렇게 가끔 하나님이 싫어졌다. 살면서 정말 많은 고마운 일들이 있었고 주신 자녀도 고맙지만. 그리고 그동안은 어떤 상황에도 돌아선 적 없지만 지치면서 수시로 섭섭하고 미워졌다.

 

그런데...

30년 넘게 몸담은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 배우고 들은 말들이 자꾸 속에서 고개를 들고 불평하는 나를 눌렀다.

 

부자도 권세도 재능도 다 소용없다는 가르침. 심지어 하늘나라는 결코 그런 사람들에게 주지 않는다고 못 박는 말씀들이. 또 가난하고 병들고 약한 자들을 돌보라며, 그들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며, 그들이 진정한 하늘나라 주인이 되리라는 선언들이.

 

그리고 빈 하늘에 음성 한 자락이 천둥처럼 들려온다.

 

나는 둘 다 싫다. 사랑하지도 않는다.

지가 다 했다는 놈이나, 자기는 아무 것도 못한다는 놈이나!

그럼 나는 뭐야? 명색이 하나님인데...‘

 

 

 

2. '이거 내 껀가?' 헷갈리는 짐들...

 

아버지가 해준 게 뭐가 있어요?

내가 어릴 때 얼마나 속으로 피눈물 흘리며 버티고 살았는지 알기는 하세요?“

 

그렇게 내가 아는 분 큰아들은 무슨 일로 아버지와 다투다가 그만 평생 담고만 살았으면 더 좋았을 그 말을 하고 말았다. 그것도 추석 명절을 며칠 앞 둔 어느 날. 명절에 만난 그 분은 말없이 한숨만 안주삼아 술을 마시다가 결국 통곡을 했다.

 

나쁜 자식, 나는 무슨 호강하며 사느라 저를 팽개치고 산 줄 아나?

뼈 빠지게 허리 부러지게 고생하며 자식 키워봐야 소용없어! 돌아오는 게 겨우 원망이라니...‘

 

그 분은 어쩌다 큰 아들이 어릴 때 이혼하여 여기 저기 부모 친척집에 아이를 맡기고 돈 벌어서 양육비를 보내주며 위탁으로 키웠다. 큰아들은 아들대로 부모 사랑 받을 틈도 없이 눈칫밥 얻어먹으며 그렇게 참고 자랐다.

 

그러다보니 좀 어려운 일만 생기면 충돌이 온다. 서로 서운하다면서 가슴 치면서. 지난 날 멍들었던 기억들이 자꾸 떠오르고 마치 누구에겐가 빼앗겨버린 행복만 같고 억울하기만 한가보다. 둘 다 정작 그 고단했던 순간에는 각자 자기가 감당하고 짊어지고 가야할 짐이라고 잘 참고 서로 격려하며 살아놓고는...

 

자식 몸으로 낳지 마음으로 못 낳는다고 하던가?

자식 애지중지 키워도 부모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며 서운할 때면 사람들이 곧잘 하는 말이다.

그러면서도 먹을 거 생기면 자식 입에 먼저 넣고 내 배는 고파도 참는 게 부모의 마음이다.

어쩌다 자식이 시험에 떨어지거나 아프기만 해도 내 죄 때문인 것 같아 자책을 하곤 한다.

 

다 이 부모 잘못 만난 죄지...’

 

그런데 과연 부모는 아이들에게 무한 책임을 져야하고 모든 고생과 불행이 닥치면 자기가 죄인인 듯 자책해야 할까?

 

아내가 처음 이상한 통증으로 시작하여 전신마비가 되어 몇 년을 지날 때 나는 자주 자책을 했다. 결혼 생활 20년 정도 하는 동안 너무 마음고생 스트레스 준 내 잘못이라고. 좀 더 다정하게, 좀 더 마음 편하게 해주었다면 안 아팠을지 모른다고. 그래서 그 바람에 세 아이들이 덩달아 고아아닌 고아처럼 뿔뿔이 떠도는 고생도 온전히 내 탓이라 여겼다.

 

다 내 탓이다. 내가 사랑 모자라서 병 생기고, 돈 벌어놓지도 못해 이산가족 되었다. 그리고도 뒷감당도 못하는 무능함 때문이지...’

 

그런데 하나님은 다르게 말하셨다. “그거 니 짐 아니고 니 책임 아니야!” 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지고 허덕이지 말고 내게로 갖고 와서 내려놓아!” 라고 하셨다.

 

정말일까? 그래도 괜찮을까? 그게 사실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이 고통이 내 탓도 아니고, 짐도 내려놓고 쉬게 해주신다니! 그동안 다 내 죄라고, 이 악물고 살면서 내 처지가 분해서 원망도 했었는데.

 

이전 병원에 나이도 어린데 교통사고로 심한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할 처지가 된 젊은 친구가 있었다. 그 후 그는 보상으로 받은 금전과 재산을 수급자 취득을 위해 서류상 이혼한 아내에게 맡겼는데 사라져버렸다. 그리고는 병원에 발을 끊었다. 그 충격으로 그는 자살로 생을 마감해버렸다.

 

그 소식을 들은 병원 사람들이 나누는 이야기가 반반이었다. ‘죽은 남자만 불쌍하다는 사람도 있고, ‘차라리 더 비참해지지 않고 잘되었다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간혹 사람들이 내게도 말했다. 이제는 되었다고, 할 만큼은 했다고, 자식들 키우고 가정을 지켜야하니 손 놓으라고도 했다. 그 말은 고칠 가능성도 없고 돈은 모래바닥에 물 붓듯 들어 갈 아내를 버리라는 말이었다.

 

나는 그 말 앞에서는 펄쩍뛰며 안 된다고 했지만 35년 가면서 변했다. 잠도 못자 몸이 축나고, 돈 걱정 아이들 걱정이 몰려오면 나도 몰래 슬그머니 하늘에 대고 물었다.

 

이제 저 그만할까요? 그만해도 되잖아요? 이거 제가 다 짊어지고 가야해요?

정말 끝도 없는 이 상황을 언제까지 해야 되나요? 내가 감당할 짐 수준은 넘었잖아요?‘

 

하나님도 그랬지 않았나? 수고하고 무거운 짐 내려놓고 쉬라고...

그런데 정작 짐을 팽개치고 등을 돌리려니까 대답이 달라졌다. 하나님도 변덕을 부리시는 걸까? 설마 그럴 리가.

 

그 말 때문만은 아니지만 그렇게 마음먹기 시작했다. 나와 가족들이 먹고 사는 것도, 죽고 사는 것도 내 손을 떠났다고 작정했다. 내게 그럴 능력도 없다고 인정하고 맡겼다. 그러고 나니 정말 마음이 편해졌다.

 

그런데 좀 지나니 하나님 명령이 달라졌다.

여전히 곁에 있는 아내의 간병, 그 짐은 힘들어도 감당하고 죽을 때까지 지고 가란다. 병이 낫든지 말든지 상관없고 끝까지 팽개치지 말고 안고 가란다.

 

참 어렵다. 그런데 깊이 생각해보니 한 편 그 대답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내 힘으로 가족을 끌고 가면서 얻는 영광은 남에게는 아무 유익도 없고, 하다가 잘 안되면 그야말로 개고생일 뿐이다. 그러니 고생을 할 값어치도 없다. 그래서 내놓으라고 하셨는지도.

 

그러나 하나님이 돌봐주셔서 살아가는 영광은 모든 사람에게 유익하며 힘이 되기 때문에 그 길을 가면서 하는 고생은 허무하지 않고 유익한지도 모른다. 아름답기도 하고 본이 되기도 하고. 그래서 계속 지고가라는 건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렇지, 어쩌자고 감당도 못할 내게 그런 짐을 지라고 시키는지,

그런 심중을 이해 못하는 내 수준도 모르시나? 하나님도 참 딱하시네...’

 

나도 참 모지라는 사람인지라 짐 받아줄 때는 고맙다고 하다가 짐 지고 가라니 입이 나온다. 무거운 일 만나 고단해지면 나도 모르게 의심스럽고 가끔 따지고 싶어진다.

 

잘 좀 생각해봐요. 하나님,

지금 이 짐은 지고 가는 거 맞아요? 혹시 내려놓아도 되는 짐인데 헷갈리신 거 아닌가요?‘

 

 

3. 작은 몸 안에 큰마음 담기

 

 

또 떨어졌나보지?”

그런가봐...”

 

오랜만에 통화를 하는 친구의 목소리가 손전화를 통해 무겁게 느껴졌다. 대학을 졸업한지도 서너 해가 넘도록 계속 취업을 하려고 동분서주 하는 딸을 바라보는 그 친구의 마음은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그러니 정작 당사자인 친구의 딸은 얼마나 지칠까?

 

그냥 살림이 넉넉하면 뭔 대수일까만 그 친구는 많이 어려운 중이었다. 일찍 사별을 한 아내를 그리워할 여유도 없이 혼자 딸 하나를 키우고 학교 보내기 위해 힘든 노동을 계속하며 보낸 십여 년이었다. 딸이라도 취업을 하면 좀 쉬기도 하고 숨도 돌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몇 번인가를 말했었다.

 

가장 괴로움을 주는 것은 학자금으로 받은 대출금 상환이었고, 취업을 기다리는 여러 이유 중에도 첫 번째가 그것이었다. 취업만 되면 그 빚을 연체 없이 갚아나갈 수 있게 된다는 희망이 생기는 것이었다.

 

아이가 자꾸 좌절하고 자신감을 잃어가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워, 먹고 사는 거야 안 죽으면 살겠지만 그 마음이 안쓰러워 견딜 수가 없네...”

 

그 구체적인 짐들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 친구를 무겁게 하는 것은 돈도 아니고 체면도 아니고 그의 딸 심정이었다. 나도 자녀가 있고 곧 그 벽들 앞에 부딪힐 시간이 다가오는데 짐작을 넘어 공감으로 무거워진다.

 

하지만 어쩌면 문제는 바깥으로 드러난 그런 것들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극단적인 살림만으로는 더 어려운 노숙자들도 살아내고 있고, 가족도 없이 병상생활을 하는 이들도 숱하니 꼭 그건 것들이 절대적 이유는 아니다.

 

그럼 무엇이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 걸까?’

 

가족이 서로 용기를 보태고 위로를 하면 씩씩하게 걸어갈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초조와 원망의 마음들은 가시가 되고 만다. 자신이 미운 좌절감도 남을 향해 찌르는 무기가 되고 만다. 그러니 모두 힘들어질 수밖에...

 

나도 아내를 중환자실에 밀어 넣고 하루 종일 밖에서 대기하면서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어 그랬고, 몰려오는 병원비에 밤사이 도망이라도 가야하나 끙끙 대면서 대책 없을 때도 내 무능함에 한심해서 그랬다. 혼자 있는 막내아이는 언제 집으로 돌아 오냐고 울면서 전화할 때도 그랬다.

 

나는...정말 안 되나요? 30년을 믿고 쌓은 신앙심도 무용지물인가요?’

 

그렇게 되묻고 머리를 쥐어뜯는 내게 어떤 사람들은 말했다. 자신을 믿지 말고 하나님께 다 맡기라고. 그건 자기 힘으로 해결하려는 오만함에서 나오는 불행이라고.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빵 달라는데 뱀 안주고 두드리면 열린다고 하셨으니... 그렇게 좀 해주세요!’

 

정말 신기했다. “이제는 힘들어서 난 더 못해요. 죽이든지 살리든지 알아서 하세요.” 했는데 그럭저럭 먹을 것과 필요한 것들이 이어져서 죽지 않고 살게 되었다.

 

그런데... 또 다른 부작용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또 다른 불안, 또 다른 욕심들이었다.

 

만약 이렇게 믿고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사람들이 오래되었으니 이제 그만!‘ 하면서 등 돌리고 이 공급이 그치면 어쩌지? 혹은 뻔뻔한 거지가 되어 감사도 무디어지면 내 영혼은 뭐가 되지? 살림에 이어 영적거지까지 되면...’

 

필요한 양식과 비용들이 타이밍이 맞지 않고 들쑥날쑥 할 때면 그런 불안감은 커졌고, 익숙해지면서 어느 순간 너무 마음 푹 놓고 있는 내 자신을 볼 때면 철렁 가슴이 내려앉았다.

 

하나님은 내 안에서 무엇도 가능하신데 나는 하나님 안에서 거지가 되어가다니...’

 

하나님은 내 안에서 모든 문제를 풀어 가시는데 나는 왜 하나님 안에서 이다지 빗나갈까? 하지 말라는 근심이나 하고, 따뜻이 대하라는데 사납기 일쑤다.

 

이게 뭡니까, 왜 제게 이런 상황을 주고 꼼짝도 못하게 하는 건지요?’

나도 조절이 안 되거나 원망만 늘어가는 내 꼴이 참 보기 싫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