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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204 – 봄이 와도 오지 않는 것들>

희망으로 2015. 2. 10. 20:17

<잡담 204 봄이 와도 오지 않는 것들>

 

으으... ,

왜 그래? 어디 아파?”

흑흑...”

 

봄이 온다.

그리고 아내가 흐느낀다.

 

병실 창밖을 마냥 바라보던 아내가 기어코 얼굴이 일그러지며 울기 시작했다.

한낮의 따뜻해 보이는 햇살에 봄이 성큼 오는 것을 좋아라하나 싶더니

어느 새 어깨를 서럽게 들썩이며...

 

아내가 쓰러진 후 몇 해 동안이나 나는 3월이면 봄 앓이를 했다.

방송 화면에 산수유가 연두 빛으로 피고, 사람들은 오가는 것을 보면서.

세상에는 봄이 오고 얼었던 것들이 풀리는데 내게는 여전히 자유가 구금되고 추웠다.

봄이 밉고 산수유가 참 많이 미웠다.

 

그것도 몇 해나 계속 반복하다보니 서러움도 점점 익숙해져 참을 만 해졌다.

봄이 와도 봄이 아닌 세월에 견딜만하니 이제는 아내가 이어받는다.

저 바깥의 공기와 햇살과 바람이 많이도 서러운가 보다.

다들 마중을 가기도 하고 온몸으로 봄기운을 담는데

자신은 일어서서 내다보지도 못하는 처지기 왜 서럽지 않을까.

 

누군가 가볍게 다니는 나들이가 일평생 치료받고 훈련을 반복해도 먼발치의 떡이고

누군가 지겹다는 직장생활은 아예 꿈에서도 지워야 하는 금지어거나 대상이 되었다.

다시 봄이 미워지기 시작한다. 서러움도 전염병처럼 퍼지는 걸까? 면역도 안 되고...

 

아줌마!”

“.........”

아줌마!”

 

아주 작은 소리지만 벌써 몇 번째 애타게 부르는 소리가 분명 들렸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가 다 되어간다.

곤히 잠든 간병인 아주머니를 깨우기에는 역부족인 낮고 작은 목소리가 안타까운데

정작 잠들어야할 다른 사람들은 깨우고도 남는다. 이 새벽의 고요함이 그랬다.

 

다리가 너무 아파...”

 

간신히 일어난 간병인은 부시럭 거리며 잠 깨운 환자의 다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벌써 몇 명 째인가 간병인이 견디다 못하고 손들고 바뀐 이유다.

사람이 낮에도 밤에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면 견디기가 힘든 법이다.

그놈의 몸의 통증은 참 밉게도 밤이면 유독 더 심해진다.

 

자기 힘으로 뒤적거리기 힘든 환자는 팔다리의 무게가 1톤은 된다고 한다.

아내도 그랬다. 사지마비로 꼼짝 못할 때 큰 세멘덩어리에 짓눌린 그 고통이라고.

 

나는 두 시간마다 체위를 변경하느라 일어나야 했고,

그 사이마다 엇갈려서 3시간마다 소변을 받아야 했다.

어쩔 수 없이 그 시절은 앉으나 서나 낮이나 밤이나 꾸벅구벅 졸고 지냈었다.

 

참지 못하고 새벽에 간병인을 깨운 저 환자도 무던히도 참았으리라.

자꾸 못 견디고 새로 바뀌는 사람을 적응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역인데 왜 모르겠나.

어떤 이는 일부러 안 해주고 버팅기다가 다른 사람 다 깨는 바람에 일어나기도 했다.

그게 어디 누구를 골탕 먹이려고 하는 일도 아닌데...

 

사랑?

마음만 있으면 가능하다고?

신앙의 정신으로 각오만 하면 끝까지 해낼 수 있다고?

 

내가 경험한 바로는 천만의 말씀이다.

몸이 뒤틀리고 몰려오는 잠을 못 이겨 욕이 저절로 나온다.

상대가 부모든지 자식이든지 사랑한다고 입에 달고 살던 부부라도 별 수 없더라.

 

우리는 우리의 인내를, 사랑을, 헌신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나에게나 남에게나 어디까지 요구할 수 있는 것일까?

 

아픈 가족을 간병한다는 것은 몸을 보살피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필요한 돈을 마련하고 남은 가족들 밥을 챙겨주는 것만으로도 끝나지 않는다.

망가진 삶이 서러워 우는 마음도 안고 가야 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격이 있고 당연히 누릴 자유를 상실한 사람.

그 사람의 눈물을 보면서 곁을 지키는 것도 포함이 된다.

그 대책 없고 기한도 없는 무기징역과 같은 비참함을 고스란히 겪으면서 말이다.

 

그러니 할 수 있다고 자신이 죽도록 몰아넣을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견디다, 견디다 미워져 상대를 죽이기까지 할 일도 아니다.

교대를 할 사람을 구하거나 정 안된다면 환자와 보호자도 나눠서 질 일이다.

단시간의 한판 승부가 아니고 오래 같이 지고 담고 생활로 살아갈 수 있다.

 

효자 효부 이런 허울 벗어놓고, 사랑, 헌신 이런 사람 잡을 기준도 내려놓아야 한다.

돈 주고 사는 간병인이야 바꾸면 되지만 가족은 바꿀 수가 없으니.

 

그리고,

봄이 와도 함께 돌아오지 않는 것들이 있더라는 사실을 포함해서 살아야 한다.

그래도 감사할 것을 감사하고 그래도 사랑해야 할 사람을 사랑하려면 어쩔 수 없다.

세상은 봄을 지나도 여전히 계속 되고 다시 겨울이 와도 계속되기 때문이다.

 

신앙은 해피엔딩이 아닐 때에도 계속되어야하기에 있는 것이다.

신앙인은 길이 없고 대책이 없을 때에도 생명을 소중히 여기라고 증인으로 사는 거다.

봄이 오지 않아도 기다리고,

봄이 와도 돌아오지 않는 것들이 있어도 서로 다리 기대며 살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