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201 - 하나님은 왜 만나를 날마다 주실까? 귀찮게...>
왜 하나님은 광야를 떠도는 이스라엘백성에게
한 번 먹으면 40년은 가는 그런 만나를 주지 않으셨을까?
어차피 40년을 먹이실거면서 비효율적이고 피차 귀찮게...
왜 예수는 죽은 나사로를 눈물로 가슴아파하면서
다시 살리셨을까? 어차피 또 죽을 거 빤히 아시면서...
(나사로가 아직도 살아 있다는 말은 못 들었다.)
[마음의 건강은 한 번 얻었다고 평생 가지 않습니다.
날마다 가꾸고 추스려야 유지가 됩니다.
그러니 힘든 일이 생기면 언제고 상담을 하세요!]
무슨 심리상담소인가의 권유문이다.
죽다가 살아난 사람이 이전과는 다르게 살겠다고
신앙 간증을 통해 고백을 하는 것을 종종 본다.
그러나 아주 소수의 사람만이 완전한 변화를 끝까지 유지한다.
대부분은 아쉽지만 대개 이전의 모습에 가깝게 슬라이딩 한다.
다시 물어보자.
왜 하나님은 하루만 지나면 다시 배가 고프게 하고
다시 딱 하루만 굶주림을 면할 만큼 만나를 주셨을까?
우리는 거룩해진 성도일망정,
하늘이 주는 힘으로 평안과 소망을 받았다고 확신함에도
날마다 만나를 먹듯 새 기운을 얻어야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일게다.
그건 날마다 헌 기운이 되어버리는 우리 연약함을 말한다.
큰 복을 받았던 솔로몬도 하나님을 실망시키는 말년을 살았고,
해를 10도나 뒤로 돌리며 살아난 히스기야 왕도 다시 타락했다.
기름 부어 세웠던 사울왕도 버림받았던가?
우리들이 가진 연약함이 괴롭다.
고맙고 감사해서 잘 살아봐야지! 웃으며 잘 견뎌야지!
그렇게 각오를 하는데도 왼쪽 오른쪽이 돌아가며 비틀거리고
안에서 밖에서 교대를 해가며 무너진다.
문득 흠도 없고 자기의 죄도 없으면서 완전하신데도
이 땅에 와서 지내다 간 분이 생각난다.
울고(죽은 나사로앞에서)
화내고(성전 장사치들 앞에서)
기뻐하고(마리아가 향유로 발을 씻을 때)
비통해하고(겟세마네 기도 때)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하늘의 신분증명서를 가진
예수님도 그러했던가?
날마다 죽음에서 건져지고 다시 날마다 곤두박질 당하며
날마다 도살장 끌려가고 다시 날마다 부활하고,
어쩌면 그렇게 사는 거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자꾸 완벽한 신앙인이라는 모델을 만들어 우상놀이 하지 말고,
자신과 남들을 자꾸 완벽한 성자놀이로 몰아넣지 말며,
그나마 남은 기운을 빼는 어리석음도 그만둘 일이다.
그저 하루에 한 번 만나를 먹고, 하루에 한 번 기도를 하고,
울거나 웃거나, 감사를 하든지 때론 불가피하게 원망을 하든지
하루에 하루치 삶을 살아내기만 하면 될 일이다.
어제로 끝난 새해의 첫 달, 1월은 참 힘든 날들이었다.
사랑하는 부모를 불식간에 보내드리는 이별과,
그 후유증으로 울고 달래며 나도 아내도 지친 날들.
몸과 마음이 힘들면 평상시 별로 큰일도 아닌 것조차
몹시 예민해진다. 더 힘들게 느껴지고 더 슬프고 더 무겁고.
아이들 문제, 몇 가지 일들이 꼬이고, 우려스러운 건강진단 결과 등...
하루 단위로 삶을 주신 지혜로운 하나님
하루 단위로 먹고 일하고 살라고 말하시는 배려의 하나님
그 고마움이 유난히 와 닿았던 경험의 달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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