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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205 - 죽은 것이 산 것을 흔들다

희망으로 2015. 2. 13. 16:28

<잡담 205 죽은 것이 산 것을 흔들다>

 

 

1.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 없어,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의 일을 결정하다니...”

맞아, 우리의 일을 왜 죽은 사람들이 결정하지?”

 

무협지 신조협려 중에 사부인 소용녀와 제자가 된 양과가 서로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게 된 숙부와 숙모, 주위 모든 무림인들이 반대를 하고 나섰다.

눈물을 흘리며 반대하거나 비난으로 몰아붙였다.

 

이른바 사제지간은 넘지 말아야할 선이 있으며, 사랑을 품어서는 안 된다는

성현의 가르침이 있고 그것은 절대적 기준이라며 용서를 하지 않는다.

둘 만의 장소로 떠나며 두 사람은 이해할 수 없어서 고민하며 그런 대화를 나눈다.

죽음이 갈라놓지 못하는 사랑을 세상이 갈라놓으려고 해서 비극이 싹튼다.

지금 시대라면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비웃음을 살지도 모를 당시의 절대적 가치.

 

 

2.

 

안 돼! 자살한 사람은 교회의 마당에 묻을 수도 없으며, 예배도 드릴 수 없고,

부모일지라도 참석하면 안 된다!“

 

그렇게 교회는 무섭고 엄격한 교리를 앞세워 부모조차도 죽은 자식을 안지도 묻어주지도 못하게 했다. 그러니 죽은 아이를 위한 예배는 꿈도 꾸지 못할 상황이었다.

 

내가 하겠소! 비록 무슨 징계를 받더라도 달게 받겠소!”

 

그렇게 한 수사가 나서서 죽은 아이를 묻고 장례를 치러주며 부모를 불러 위로를 했다.

종교개혁의 문을 연 마틴 루터.

 

오래된 절대 교리를 앞세워 사람의 본분과 찢어지는 고통도 외면하게 하는 죽은 전통과 마주 섰다. 결국 차갑고 딱딱하게 굳어진 죽은 교리들을 새 살처럼 살리는 일들이 나중에는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새 종교의 문을 연다.

 

 

3.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지 않고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다!”

자신들의 이익을 가져오는 교묘한 칼자루와 칼날로 사용하게 된 안식일 해석.

숱한 가난하고 불리한 사람들을 상대로 그 잣대를 휘두르는 종교권력 유대인들.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도 까먹고 병자도 고친다고 시비하는 랍비들에게 예수가 그랬다.

 

오래된 가르침은 처음 사람들에게 공감을 받고 유익하게 적용되던 것에서

시간이 흐르면서 죽은 송장처럼 변하는 것들이 꽤 많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죽이는 능숙한 본성이 사람들에게 본래 있나보다.

그래서 그것을 고의로 유리하게 사용하거나 혹은 무지몽매하게 들이대면서 사람을 해친다.

 

- 죽은 사람들이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일을 결정하는 이해 못할 재판이 자행 된다.

 

어떤 진리나 가르침도 사람이 배제되고 사람이 희생되면서 유지되어야 한다면 가짜다.

아님 이미 죽은 것들이거나. 그럼에도 그것들을 통해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 집단은

필시 죽은 것들의 하인, 잡귀신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