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203 - 뭐나 된 것처럼...>
“왜 그래? 뭐나 된 것처럼...”
“내가 그랬나? 좀 의욕이 넘쳤지? 흐흐”
가끔 조울증 환자인가 싶도록 지나치게 오버하는 웃음과
과장된 희망을 말하는 내게 아이와 아내가 그런 말을 했다.
맞다. 내가 그랬다.
‘뭐나 된 것처럼’ 느닷없이 용기도 내고 꿈도 꾸고 그랬다.
힘든 일이 몰려오면 골리앗 앞에 선 다윗이나 된 것처럼
스스로를 부추기며 마음 단단히 여미고 전투에 임하곤 했다.
너무 가진 게 없어서 시무룩해지고 두려움이 몰려오면
마치 두 벌 옷도 전대도 없이 사막을 건너던 예수의 제자나 된 것처럼
눈 감고 자신에게 세뇌를 시켰다.
“그래, 가는 거야! 이렇게 가다보면 산도 넘고 물도 건너고
누군가 사람 사는 동네를 만나 우물가에서 물도 한 사발 얻어먹는 거지!“
그렇게 필요할 때면 필요에 맞는 선배들을 떠올렸다.
예배가 그립고 성전에 앉아 기도가 하고 싶어 못 견딜 때는
사막에서 혼자 성탄절을 보내던 수도자 샤를르 드 푸코도 떠올리고
감옥에 갇혀서 같은 동료죄수들을 다독였던 본회퍼목사도 떠올렸다.
너무 길을 걷고 싶은데 형편이 안 될 때는 그 답답함을
도심 작은 공원을 걸으면서 순례자가 내 곁에서 같이 걷는 꿈을 꾸었다.
나도 ‘뭐나 된 것처럼’...
기한이 없는 아내 간병에 지칠 때면 스탠리 하우어워즈 신학자를 떠올렸다.
정신질환에 걸려 억지를 부리는 아내의 곁에서 죽지 않고 살아야 한다고
아들에게 말하며 참고 살았던 그 분을.
- ‘나도 그분처럼 그런 마음으로 견뎌야겠다.’ 그랬다. ‘뭐나 된 것처럼...’
사실 순순히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을 만나면 그런 게 좀 필요하다.
막막하고 무기력해진 자신의 모습에 늪처럼 빠져들기만 할 게 아니다.
비슷한 상황을 이겨낸 누구를 떠올리고, 적어도 그 곁에서 같이 견디는
꿈이나 마음이라도 가져보는 게 좋다. - ‘뭐나 된 것처럼!’
자녀들에게 체면이 안서고 미안해서 아무 의욕도 안 생길 때도 나는 그랬다.
‘기죽지 않고 넘치는 사랑으로 희생하는 아버지나 된 것처럼!’
아내의 병 증상이 쉽게 좋아지지 않고 회복보다 추락하는 경우가 더 많을 때도
나는 형제들 친구들, 심지어 진료 받는 병원 선생님들 앞에서도 그랬다.
‘미련스럽도록 희망을 가지고 주눅 들지 않는 괜찮은 남편처럼!’
안 그럼 무슨 표정을 짓고, 무슨 말을 하며, 무슨 기운으로 밥이라도 먹을까?
신앙도 그렇게 따라가고 흉내 내며 살아볼 일이다.
불속에 걸어서 들어가는 다니엘처럼,
동굴로 도망 다니면서도 ‘어찌 이리 아름다운지요!’ 라든 다윗처럼,
또 돌을 맞고 감옥에 갇혀도 당당하던 바울이나 베드로 사도들처럼.
그렇게 ‘뭐나 된 것처럼’ 자신을 그 곁에 붙여놓고 단단히 사는 거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정말 ‘뭐나 되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성공과 부자가 되는 욕망에 모두들 급류처럼 몰려가는 세상이 되었다.
가진 힘과 권력, 남보다 나은 무엇들이 모두 폭력의 무기로 사용되고,
믿으면 당하고 착하면 바보가 되고 마는 서글프면서 분노가 치솟는 세상이다.
그러니 정말 본받고 싶고 같이 가고 싶은 ‘누구, 뭐’가 그리워진다.
- 좋은 의미에서 ‘뭐나 된 것처럼’살고 싶다.
사람들이 삶을 이 세상을 지나간다고 표현하는 것은 이런 뜻일 게다.
이 세상이 최고의 목적지도 아니고 최고로 아름다운 낙원도 아니라는 의미.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땅을 지나 다음 세상에서 기다리시는 하나님께로 간다.
처음 온 곳으로 돌아간다. 바로 아버지인 하나님이 계신 나라로.
그러니 정말 이렇게 말해도 괜찮지 않을까?
- ‘뭐나 된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나 된 것처럼!’
험하고 주눅 들게 하는 세상에서 이것은 죄도 아니고 비싼 돈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날마다, 수시로 자신에게 알맞은 모델을 안겨주자.
그리고 기운내서 살아 보자!
- ‘ㅇㅇ나 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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