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님 중환자실을 다녀오면서 - 하루살이 약자도 필요하시다면...
“니들 좀 올 수 없니?”
“힘드시지요? 왜 안 그러겠어요... 아이엄마와 의논해서 전화 드릴께요.”
수 십 년을 가까이 살면서도 들은 기억이 없던 낮은 목소리로 장인어른은 전화기 저편에서 울먹이셨다. 마땅히 드릴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 그렇게 끊었다.
며칠 전 김장을 하시다가 비닐하우스 안에서 쓰러지신 채 의식불명이 되어 대학병원 중환자실로 들어가신 장모님. 온 식구들도 충격을 받았지만 가장 큰 슬픔은 당연히 장인어른 일거다. 나이가 많고 적은 것만 빼면 나나 장인어른이나 배우자의 심각한 발병 앞에서 충격을 받고 무너지는 심정은 비슷했다. 어찌 깊은 공감이 안 생길까.
그리고 가족들의 아픔에 순위가 어디 있을까만 두 번째가 어쩌면 아내일지도 모른다. 이유도 없이 생명이 오락가락할 정도로 급속하게 망가진 채 7년째 병원생활 가정은 해체되는 과정에 부모님들의 마음고생은 얼마나 심하셨을까? 그러니 불효자식이 되었다고 늘 아내는 괴로워했다.
소식을 들은 날부터 틈만 나면 울고, 아이를 붙잡고도 울고, 언니에게서 전화만 와도 울고, 심지어는 병원의 직원에게 이야기를 해주면서도 울었다. 그러더니 며칠 째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두통이며 위통에 열도 오르내리고, 당연히 재활치료도 건너뛰면 그야말로 환자가 또 한 단계 다운등급이 되었다.
그러니 다 지친 목소리로 힘들어하시는 장인어른의 한 번 와달라는 부탁에 도저히 미룰 수가 없었다. 전화를 끊고 세시간만에 몸살이 난 아내를 태우고 충주 대학병원 중환자실로 출발했다. 진통해열제약을 늘려먹고...
(출발한다고 전화를 드렸더니 오전 면회시간에 장모님을 본 장인어른과 오라버니는 수원으로 돌아가는 중이셨다. 결국 오전 중에는 도저히 거동이 힘든 아내는 그냥 오후 면회를 하기로 했다.)
(사진1 - 중환자실 복도에서 오후면회시간인 5시를 기다리는 아내.)
다행일까? 어쩌면 더 나락으로 떨어지면 못 견딜지도 모를 아내를 불쌍히 여긴 하나님의 은총일지도 모른다. 장모님은 3일 만에 의식이 돌아왔다. 산소를 넣는 튜브와 기계. 음식을 넣는 주사 줄들과 호스. 피를 투석하는 호스와 기계, 목과 코와 머리 뒤쪽 여기저기 온 몸에 셀 수도 없는 호스들을 연결하고 팔다리를 다 묶어놓으셨다. 그렇지만 눈을 뜨고 의식이 돌아왔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맙고 반가운지...
병의 증상들이 또 어떻게 진행이 될지는 아직도 불투명하지만 아내가 얼굴을 보고 올 수 있을 정도(울거나 참다가 쓰러지는 쪽이 아니고)가 되었다는 상태가 그지없이 고마웠다. 아내와 열심히 다리를 주물러드리고 손을 잡아드리면서 빌고 빌었다.
“하나님, 아내를 위해, 큰 아들 작은 아들 둘이나 아비보다 먼저 보내고, 막내딸마저 병원에 맡긴 고통을 견디며 사시는 장인어른을 불쌍히 여겨주세요. 늘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더날까봐 걱정하고 미안해하는 아내도 불쌍히 여기시고요. 제발 이대로 이별은 하지 않게 해주세요. 아픈 채로, 이전처럼 건강하게 회복은 안 되더라도 좀 더 같이 지내게 해주세요!”
이것도 기도라고...
하려면 로또보다 몇 배는 크고 신나게 왕창 복을 달라고 기도해야 믿음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들을텐 데, 난 그랬다. 쩨쩨하고 새가슴마냥 쪼그라진 작은 그릇으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나는 그동안 악도 쓰고, 조건도 걸어보고, 욕도 하고 납작 엎드리기도하고, 별의 별 기도를 다해보면서 계단을 하나씩 하나씩 내려와 보았기 때문에 이제 뻥뻥 큰소리 칠 기운이 없어졌다.
아니, 그건 안 통하더라는 경험의 감옥에 갇혔는지도 모른다. 기둥에 묶인 1미터 줄에 훈련당한 코끼리가 되어버렸는지도.
하지만 한 가지는 생겼다. 나와 같은 아픔을 겪는 장인의 목소리에 몸살 난 아내를 태우고도 달려갈 수밖에 없는 동감의 마음이 생겼다는 것. 듣고도 외면하기는 틀려버린 함께 곁에 있어주는 성품이 싹이 나고 있다는 것을...
나 같이 무너지고 아무 것도 안 남은 사람. 하루밖에 못사는 약한 자도 필요한가요? 도움이 되나요? 그럼 불러주세요. 금과은 나없지만 예수님의 이름으로 곁에 있어줄 수는 있어요!
(사진2 - 온통 호스와 기계들로 묶인 장모님의 모습, 아내가 굳이 사진을 찍어달라고해서 부득히 찍었습니다. 가장 최근의 엄마를 기억에 담겠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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