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끄적/그저 오늘 이야기...

속옷 한 장의 행복

희망으로 2015. 7. 2. 13:38

<속옷 한 장의 행복>


“에그, 그게 뭐야? 당장 버려요.”

“뭐가?”


다 헤진 속옷이 북 찢어진 채 살이 드러났다.

아예 천이 닳아버려 꿰매고 자실 수준이 아니다.


‘하기는 몇 년 되었는지 모르니 그럴 만도 하겠네.’


몇 년째 빨고 입고, 또 세탁기 돌리고 입고. 

그러다보니 앉아있는 시간이 많아서인지 엉덩이 닿는 부분이 구멍이 쑹 날 정도로 얇게 낡아있었다.

이 풍경이 묘사되면 어쩐지 눈물이 핑 도는 상황이 나올 수도 있다.

가족을 먹여 살리느라 땀 흘리고 새 옷도 못 사 입은 가장의 사각팬티가 낡아서 죽죽 찢어지고, 

그걸 세탁하다가 발견하는 아내나 딸이 뭉클해진다는 뭐 그런 감동 스토리?


하지만 그런 상상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 그림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물론 늘 조바심 나는 잔고로 병원생활을 8년째 하면서 뭘 사고 돈 쓰는 것이 쉽지는 않다.

하지만 이 정도 금액의 대상은 꼭 그래서 그런 게 아니다. 

워낙 속옷이든 겉옷이든 옷 사는데 별 관심이 없었던 내 문제가 복합적으로, 

아니, 우위로 작용해서 그런 것뿐이다.


“딸! 오늘 아빠가 기분이 좋아~”

“무슨 일인데?”

“내가 오늘 새로 산 속옷을 입었는데 무지 시원하고 스판이라 너무 편해!”


고3인 딸을 기말고사 마지막 날 아침 일찍 학교로 태워주는 길에 내가 한 말이다.

얼마나 행복한 기분이었으면 속옷 입은 상쾌함을 딸에게 할까 민망할 수도 있는데도.

하긴 그동안 몇 년을 아파서 못 움직이는 아내와 어린 딸의 속옷도 내가 사야 했다. 

여성용품점에 가서 브래지어와 속옷을 사이즈에 맞춰 골라서 사다 주었다.

그러니 뭐 우리 사이가 엄마와 딸인지 아빠와 딸인지 가끔 헷갈리기도 한다.


그런 내가 속옷 자랑을 했다. 행복하다면서.

그게 그렇다. 그동안 아는 거라곤 BYC 나 쌍방울 사각팬티밖에 모르던 내가 

무슨 속옷 패션의 메이커를 알기나할까? 

젊음의 상징이라는 삼각팬티도 불편하다고 안 입는 주제에 말이다. 


메르스 덕분(?)에 병원 출입이 자유롭지 않기도 하고 더워서 오가기도 싫어 인터넷을 뒤졌다.

예전처럼 만원에 석장짜리 사각팬티를 뒤져서 샀는데 그 옆에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다.

열이 유난히 많고 더위를 타는 내게 특허 받은 냉쿨 원단 소재로 만든 스판 팬티 광고는 너무 솔깃한 유혹이었다. 


‘아, 시원한 감촉에 사각인데도 딱 붙는 스판이라니 좀 젊은 기분이 들겠다!’


그래서, 하나를 질렀다. 한 장에 만원이 넘는 속옷이라니! 내게 흔치 않은 일이다.

그렇게 도착한 속옷을 입었는데...

와! 정말 느낌이 다르다. 원단에서 오는 서늘한 촉감과 몸에 딱 붙어주는 인체공학 디자인(?) 느낌? 

병원 보조침대에 오래 앉아서 보내야 하는 특성의 내게 어쩌면 올 여름은 좀 엉덩이가 호강할 것 같다.


‘참, 팬티 한 장에 뭔 호들갑?‘ 그럴지도 모른다. 나도 그런 생각이 드는데 안 그럴까.


근데 참 사람이 단순하다는 생각이 미치니 이것도 공부가 되고 깨달음이 된다.

내가 넉넉하고 늘 좋은 옷을 입는 사람이었다면 이렇게까지 신선한 경험이 되엇을까?

아마도 만원에 석장짜리를 헤지고 죽죽 찢어지도록 입는 사람이었기에 많이 들떴을 거다.

그리고 늘 쪼달리는 돈에 남의 도움으로 사는 형편이다 보니 이것도 두근거리고 미안하고 

과한 사치는 아닐까 조심스러워 진다. 


그런데 어떤 생각하나가 애매하게 갸웃거려진다.

과연 작은 일에 크게 기뻐하자고 몇 년씩 최하의 형편을 사는 것이 꼭 괜찮은 방법일까?

소 도둑은 작은 바늘을 도둑질 하는 때부터 시작된다는데 

슬금 슬금 허용해서 감사도 무뎌지고 큰 사치로 빠질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과연 일상의 고급화가 꼭 축복일까?


속옷 한 장 입고 별 대가를 다 치른다. 

그런데 오늘은 기뻐하고 감사하면서 끝! 그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