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사랑 하는 사람만 사랑하고...>
[나 내일 집에 걸어서 올거야]
방금 전 자취방에 내려 주고 온 딸이 기어이 문자를 보내왔다.
이 말은 나를 안 보고 싶다는 말이고, 미워서 시한부 절교를 하겠다는 뜻이다.
메르스 때문에 태워오지 못하고 아이 혼자 밤늦게 걸어서 집에 돌아오는 게 딱했다.
그래서 다시 며칠 전부터 병원 몰래 나가서 아이를 태워 자취방에 데려주었다.
‘아무도 만나는 거 아니고 차에만 있는거니까...’ 그러면서.
“요즘 체력이 딸리나봐, 힘들어...”
“그래? 그럼 좀 영양가 잇는 거 사줄게 먹고 기운내!”
거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밤 11시를 더 넘은 시간 먹고 나면 밤12시가 되는데 종류를 정하는데 고민되었다.
튀긴 치킨, 구운 삼겹살 오리로스고기 등 아이가 말하는 것마다 말리고 말았다.
소화 잘되고 더 고단백 먹거리로 사주고 싶었다.
장어구이, 삶은 보쌈, 염소탕 뭐 그런 거.
둘째아이가 밤새 일하는 편의점을 들러 뭐든지 고르라고 했는데 뱅뱅 돌기만 한다.
“이러다가 엄마 급하다고 빨리 오라고 연락오면 어떻게해, 얼른 골라.“
그 말에 딸아이는 내내 투덜거리다가 결국은 아무 것도 안 먹고 안 사고 집으로 가잔다.
나도 그만 욱! 짜증이 몰려왔다.
“알았어! 맘대로 해! 이젠 뭘 먹든지 한마디도 안할테니까!”
자취방에 도착할 때까지 서로 한마디도 안하고 뒤도 안돌아보고 헤어졌다.
그리곤 문자가 왔다. 속이 상한다. 답장을 안보내고 끙끙 달래느라 참는데 울적해진다.
‘나쁜 놈들, 내가 못먹게 말리는 것도 아니고 더 좋은 걸 먹이고 싶어 그랬는데,
좀 안 맞아도 그렇게 밖에 못하냐? 나도 고단하고 몸도 마음도 지쳐 못 견디겠는데...‘
이를 악물고 그래도 잠 못자고 뒤척일까봐 마음에 없는 답장을 보냈다.
[알았어, 너 속상하게 하려고 한 게 아닌데 미안하구나. 조심해서 돌아와]
참 힘들다. 부모가 된다는 것이 무슨 형벌을 받는 것도 아닌데.
그런데 한편으론 그렇게 잘라버리는 말을 하고 온 내가 한심하기도 하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겠다는 말 아닌가 싶어서.
또 사랑받을만한 행동을 할 때만 사랑해주겠다는 작정 같아서.
성경에도 그랬던가? 찬양가사에도 있었고.
‘날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는 것은 무슨 소용이 있나,
날 미워하는 사람도 사랑해야 진짜 사랑이지’
그런데 솔직히 나는 자신이 없다.
아마 아주 오래 그 수준에서 더 나가기 힘들 것 같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도 영영 못할지도 모른다. 그런 너그럽고 진짜 사랑을...
돌아보면 지금까지 살아온 결과가 그랬다.
생판 모르는 남들은 말할 것도 없고 친구 이웃 가족까지도.
날 사랑할 때만 사랑하고 사랑받을만한 때만 사랑해주는 내 행실이.
2011년에 개봉한 ‘인타임(IN TIME)‘ 이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다.
커피 4분.. 버스요금 2시간.. 스포츠카 59년.. 시간이 화폐인 충격적 미래를 담은 영화다.
그 영화에서 모든 인간은 25세가 되면 노화를 멈추고, 잔여 시간 1년을 제공받는다. 이 시간으로 사람들은 음식을 사고, 버스를 타고, 집세를 내는 등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시간으로 지불한다. 하지만 가진 시간을 다 써버려 시계가 ‘0’ 이 되는 순간,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때문에 부자들은 몇 세대에 걸쳐 시간을 갖고 영생을 누릴 수 있는 반면, 가난한 자들은 하루를 겨우 버틸 수 있는 시간을 노동으로 사거나, 누군가에게 빌리거나, 그도 아니면 훔쳐야만 한다.
영화 속에 여러 사례들이 나온다.
- 버스를 타는데 30분이 모자라서 아들을 못 만나고 달려가다가 죽는 엄마.
- 오랜 친구에게 자기가 얻은 시간 100년 중에 10년을 줬더니..흥청망청 써버리고 죽은 친구.
- 100년 이상의 시간을 갖고 있는 사람을 보면 그들의 시간을 훔치려고 하는 강도들..
- 전당포에 다이아몬드 귀걸이를 맡겼는데..고작 이틀의 시간밖에 주지 않는다.
사전에 나오는 인타임(IN TIME) 뜻은 이렇다.
[in time 주요 뜻 ① 일찍 ② 늦지 않게 ③ 조만간 ]
이 영화나 단어의 의미에 따르면 나와 딸아이는 반 인타임(IN TIME) 중이다.
서로에게 유익하지도 행복하지도 못한 시간을 흘려보내게 생겼다.
마음 불편하고 붉으락푸르락 복잡하면서 내일, 어쩌면 더 길게 보내게 될 것이다.
정말 귀한 시간인데, 제 때에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면서...
성경에도 ‘제 때에’ 가 나오는 부분이 있다.
- 그것이 네가 다닐 때에 너를 인도하며 네가 잘 때에 너를 보호하며 네가 깰 때에 너와 더불어 말하리니 (잠언 6:22)
-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마태복음 25:43)
- 기근 때에 죽음에서, 전쟁 때에 칼의 위협에서 너를 구원하실 터인즉 (욥기 5:20)
이외에도 많겠지만 특히 이런 상황에 ‘제 때에’는 중요하다.
때를 놓치면 다 소용이 없고 사랑의 수단이 되지도 못한다.
꼭 필요한 때에 해주는 모든 것들이 신의 은총이고 사람간의 사랑이 되는 것이니.
‘제 때’는 힘들고 어려운 때다. 위태롭고 외롭고 그런 좌절의 시기.
그 ‘제 때에’ 필요한 것은 ‘날 미워하는 자에게도 주는 사랑’일 것이다.
어쩌면 나도 딸아이도 지금이 그 미워하는 자에게도 주는 사랑이 아주 필요한지도 모른다.
고3의 마지막 기말고사를 며칠 앞두고 연일 밤공부에 지치고 힘들 거다.
그래서 투정도 부리고 이유 없이 짜증도 내고 싶을 것이다.
나도 아내의 긴 간병, 수시로 오는 불편과 결핍들에 지치고 예민해지기도 한다.
요즘 더위와 메르스 통제는 운동도 못하고 외출도 금지되어 한 겹 더 보탠다.
서로 지독한 삶의 고단함이 딱 ‘제 때에’ 와줄 사랑을 필요로 하는지도...
최용덕간사님의 찬양곡 ‘사랑사랑‘ 중에 이런 가사가 있다.
<형제의 손을 잡고 기도를 해봤나요
우리들의 가슴에 진실한 사랑 있는지
날 미워한 이는 사랑 못해놓고
날 좋아한 이만 사랑하지는 않았나
예수님의 사랑은 가리지 않는 사랑
누가 날 미워하여도 난 그를 사랑하네
*내게 유익 없어도 주기만 하는 사랑
주는 것만으로도 너무너무 기뻐요.>
나도 아이와 잘 지내고 싶다.
‘날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고 날 미워하는 자는 멀리 하는...’ 그런 사람 안 되고 싶다.
만약 미운 짓을 하는 사람, 사랑받을 짓을 못하는 사람도 내가 계속 사랑해줄 수 있다면?
그러면 과연 누가 더 평안하고 행복할까? 나와 그 사람 중에?
어쩌면 위선이나 숨긴 겉 표정이 아니고 마음으로 변함없이 사랑할 수만 있다면,
가장 큰 평안과 기쁨의 복을 누리는 사람은 바로 주는 사람일 것이다.
미움이 속을 꽉 채운 채로 씩씩대본 사람은 다 알 것이다.
그 상하는 심령, 해치는 건강의 뒤 끝을.
그 이유로,
나는 하나님께 빌고 싶다.
날 미워하는 자도, 사랑받을만한 태도만 내게 보이지 못하는 사람도 사랑하게 해달라고.
그런 바람이라면 정말 예수를 닮게 해달라고.
먼저 딸아이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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