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구약시대 사람, 악은 악으로!>
찌부등 등짝이 아프다는 아내를 돌려가며 두드리고 패고,
그리고도 시원치 않아서 엑스자 비틀기도 왼쪽 오른쪽으로 하고선 화장실로 갔다.
세면 양치질을 하곤 큰일을 보는 씨름을 하는 중에 ‘쾅!’하며 유리문이 흔들렸다.
발로 찼는지 손으로 세게 흔들었는지 분명히 선의적인 노크는 아니다.
아내는 천둥소리에 놀란 사람처럼 ‘으악!‘ 단발로 비명을 질렀다.
이어서 들리는 소리.
“씨부럴! 어쩌고 저쩌고... ”
확! 열이 오른다.
양치질을 하다말고 멈추고 물로 입만 헹구고 이중 커튼을 제치고 문도 열고 나갔다.
아무도 없다.
지나가는 아주머니 간병인에게 물었다.
“혹시 방금 여기 있던 남자 못보셧어요?”
“아뇨, 못봤는데요?”
“누군가 문을 흔들고 욕을 해서 좀 싸우려는데 알 수가 없어서요”
바로 옆이 간호사실이다.
회의중인지 세 분이 계신다. 다른 때라면 말 걸지 않고 기다리는데 오늘은 잘랐다.
“방금 여기 누가 있다가 갔어요? 샤워실 앞에 남자 못보앗나요?”
“왜 그래요?”
“똥 누다가 심장마비 걸릴 뻔했어요. 어떤 작자인지 한번 싸울려고요”
“모르겠는데...”
“여기 복도 씨씨티비 보면 확인 가능하지요? 좀 보게 해주세요.”
“이건 관리실 소장님께 가야 볼 수 있어요.”
“그럼 갔다와야겠어요. 잡아서 따져야 겠어요. 못된 인간같으니”
다시 마저 일보는 거 돕느라 아내 곁으로 와서도 머릿속으론 온통 그 생각뿐이다.
씨씨티비에서 십분전 화면을 휴대폰으로 찍어 온 다음에 그 못된 인간을 찾아내 멱살잡이를 한바탕하던지 온 병실안에 소문이 나도록 망신을 주리라 순서를 정하고 할말을 되새겼다.
“그러지마, 그런다고 화 안풀려, 그 사람이 우리가 누군지도 모르고 한건데...”
그때부터 아내의 집요한 해빙작업이 시작되었다.
“당신 이 일 때문만으로 그렇게 화내는 거 아니잖아? 병원생활 스트레스도 쌓이고 다른 감정도 폭발하는거잖아”
뭐 생각해보니 틀린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분한 마음이 풀리지는 않는다.
“그럼 그렇게 난폭하고 아무에게나 경우에 없는 행동을 하는데 냅두라는거야? 다시는 그딴 무례한 짓 못하도록 경험하게 해야지!”
“그런다고 그 사람이 고쳐질 거 같아? 어쩌면 그 사람도 오해해서 그럴 수도 있잖아, 한 번 두 번 오는데 계속 문이 닫혀 있으니 한 사람이 계속 쓰는 줄 알고 순간적으로 화났을 수도 있고,”
“그래도 나는 안그래!”
아내는 여기서 결정적인 브레이크를 걸었다.
“최용덕간사님 봐, 억을해도 직접 싸우지 않고 하나님께 맡기잖아?”
나, 참.... 어째서 그런 말로 분통터지는 남편을 숨도 못쉬게 하는지,
“그래, 난 구약 사람이야! 악에는 악으로, 선한 사람에게는 선으로...”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미 그 인간을 찾아내 얼굴 마주하고 퍼부어주려던 의욕은 꺾이고 말았다.
“그래도 관리실에서 어떤 작자인지 확인하고 사진은 찍어놓을거야!”
“그거 두고두고 볼 때마다 열 받고 ‘저 놈이야! 저 놈’ 그러고 살게? 미워하면 미워하는 사람이 더 괴롭잖아, 그 사람은 편하게만 살텐데...”
아, 이놈의 마누라! 도대체 똑 부러지는 옳은 말만 해댄다. 예전의 내가 그랬던 그대로...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고 내 성질머리를 대입해보니 그럴거 같다. 씩씩대고 쉽게 털어버리지 못하고,
“그래도 저 사람인가? 혹시 저 사람? 그러면서 모두를 용의자로 생각하는거보다 한 사람만 미워하고 다른 사람은 오해하지 않는게 낫잖아?”
그렇게 말을 해보면서도 나는 이미 전의를 상실했다. 어쩌라고...
“그럼 이 분한 마음을 접으면 뭐 해줄건데?”
보상이라도 좀 받아서 풀고 싶었다. 그냥은 도무지 넘어가지 못하는 이 옹졸함이라니,
아내는 너그러워지고 싶다던 내게 지금이 그 기회라고 말하지만 맨 입에 잘 안 된다.
거창했던 신앙인의 용서와 사랑은 어디를 가고 사소한 일에는 목숨 걸고 지기 싫어하는 내 꼴이라니 참 까마득하다.
“사랑해준다느니 뽀뽀 한 번 뭐 이런 거 말고!”
“오백원 줄께!”
“그래도 안 풀릴 거 같은 데...”
“그럼 천원 줄께!”
내가 어디까지 초라해져야할지, 그냥 지고 살자, 그게 내 인생에 복이 되겠지?
그러고 다 접는다. 이전 내 성격이라면 다 뒤집어 키웠을 일이 단 10분의 대화로 막이 내려지고 말았다.
‘간호사실이나 딴 분은 어쩌면 한 번 시끄러울 싸움 구경을 기대하고 있을지도 모르는데...어쩌지? 실망시켜서,
아님 꼬리 내린 나를 비웃지나 않을까?’
-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환자인 아내를 생각해서 내 힘 아닌 아내의 좋은 성품 덕에 평안을 얻기로 했다.
이상 구약시대 남정네 분통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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