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끄적/그저 오늘 이야기...

하나님은 대책이 없으시다. 다만...

희망으로 2013. 10. 25. 12:13


(일산 암센터 다녀오는 길, 가을 길이 아쉬웠을까? 며칠 만에 다시 가게 되었다.)



<하나님은 대책이 없으시다. 다만...>

 

‘...모든 죽어 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윤동주의 시 <서시> 한 구절이 문득 떠오른다. 그는 어떻게 그 젊은 나이에 이런 생각을 했을까? 나는 인생의 3분의 2를 넘긴 이제야 와 닿는데...

 

병원 복도가 요란스럽다. 어느 환자와 환자가 화장실 사용문제로 목소리 높여가며 티걱태걱 다툰다. 하도 자주 있는 일이라 또 하는구나그런다. 그런데 갑자기 그 사람들이 다 측은해진다. 이전에는 ! 짜증나~’ 그러며 귀찮아했었다. 그런데 뭐가 바뀌었다. 왜 그럴까?

 

어제는 아내가 죽을 뻔 하다가 고비를 넘겼다. 장애등급 이의신청 준비를 하면서 마음도 지치고 많이 예민해진 나는 아내를 불안하게 했다. 미움과 싸우기 직전의 분노로 병원 측과 몇 사람과 대립하는 걸 지켜보다가 아내는 나를 말렸다. 그런데 겉으론 수용하기로 했는데도 감정이 잘 진정이 안된다. 결국 만만한 게 아내였던지 몰아세웠다.

 

아내는 참다가 울음을 터뜨렸는데 그게 쇼크로 왔다. 숨을 못 쉬고 호흡이 마비되어버렸다. 간호사가 산소통을 들고 달려오고 의사선생님이 내려왔다. 숨을 꺽꺽 들이마시지도 내쉬지도 못하는 아내에게 선생님은 긴급조치로 비닐봉지를 가져와서 입과 코를 한 번에 막고 숨쉬게 하였다. 너무 짧고 빠른 호흡이 계속되면 산소포화도가 떨어져 심각해진다고,

 

신경안정제를 넣은 수액을 혈관이 안 나와 몇 군데나 찌른 다음에 간신히 달았다. 다행히 숨이 진정되기 시작해서 서너시간을 재웠다. 자다가 중간에 가슴에 통증이 온다고 아내는 호소하였다.

 

가슴이 철렁했던 기억이 다시 떠오른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말도 못하고 가슴을 치는 아내에게 미안해, 잘못했어를 수십 번도 더 했다. ‘이러다가 덜컥 숨이 아예 멈추면 난 죽어야 돼, 내가 왜 그렇게 미련한 말들을 했었지? ’ 자책만 생겼다.

 

참 불쌍한 인간이다. 감당도 못할 말과 표정들을 쏟아놓으며 산다는 게, 이전에는 밉고 나쁘다고 보이던 것들이 내가 불쌍한 인간이라는 생각이 드니까 남들도 측은하게 느껴졌다. 잘나고 넉넉하고 흔들리지 않을 정도면 그렇게 남에게 욕하고 화내고 비난할까? 보나마나 똑같은 거친 보복이 돌아오는데 말이다. 미숙해서, 조절이 안 되어서 그러는 거다. 그러니 불쌍한 거다.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윤동주의 마음처럼 연약하고 미숙한 사람들은 죽어 가는 중이니 측은지심으로 사랑해줘야 한다. 잘난 사람들은 당연히 그래야할 것이고 모자란 사람들끼리도 서로 서로,

 

주민센터에 이의신청서를 제출하고 돌아오는 길에 듣는 찬양이 마음을 파고든다. 눈부신 가을햇살 청량한 아침공기가 싸늘하면서도 서럽다.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이 작고 불안한 인생을 손아귀에 쥐고 완벽하게 해결해치우는 게 아니라, 그냥 들어와서 더불어 함께 먹자고 한다. 하나님은 늘 그런다. 일이 어렵게 꼬여도, 산이 앞을 가로막아도, 구덩이에 빠져 허우적거려도 덥썩 구해주거나 해결해버리지 않고 그저 지켜본다.

 

돌아보니 나도 내 아이들에게 그랬던 것 같다. 스스로 결심하고 선택하고, 필요한 걸 해결하면서 가보라고 했다. 책임도 스스로 지고, 기쁨과 성취감도 온전히 스스로 느껴보라고 했다. 하지만 내가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 것도 안 해 주는 것이 아이들을 미워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아마도 하나님도 그랬는지 모른다. 땅바닥을 박박기고, 눈물로 밥을 모래 씹듯 억지로 먹을 때도 하나님이 가진 힘으로 후딱 한방에 해치우는 빠른 길을 택하지 않으신 이유가, 그대신 더 힘들고 오래 고생스러운 선택을 하셨다. 그저 내속에 들어와 같이 머물고 지켜보면서 응원하는 길, 같이 울고 같이 기뻐하는 그런 사랑의 방법을 선택하시기로...

 

그 홍역을 치르면서 나도 지치고 누워 쉬는데 문자가 왔다. 이틀 전 일산 국립암센터로가서 하고 온 피검사 결과.

 

이번에는 수치가 높아졌네요. 아무래도 또 올라와야겠습니다.’

 

돈 준비해서 항암주사를 맞으러 며칠 내로 오라는 말이다. 진짜 하나님은 야속하다. 이렇게 힘들 때는 조금 손을 써서 안 좋은 일은 슬쩍 미루거나 돌려주실 만도 한데 그러는 법이 없다.

 

하나님은 대책이 없으시다. 다만 같이 곁에 계셔주시는 사랑을 좋아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