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주세요!”
“흑흑....”
“잡아라!”
자다가 깜짝 놀라고 깨어보면 소리 지른 분은 다시 잠이 들어 있고, 참, 뭐라고 따질 수도 없다. 투덜거리며 다시 잠을 청한다. 그래도 그런 날은 다행이다. 어떤 날은 심해서 결국 가서 흔들어 깨워주거나 말을 걸어서 멈추어야 하는 날도 있으니.
보통 밤11시에 잠자기 시작하면 아침 6시까지 7시간 정도 잘 수 있다. 그 사이에 나는 3번, 어떤 날은 4번을 내 뜻과 상관없이 일어난다. 아내의 소변을 빼주기 위해서, 그러니 기껏해야 2시간에서 3시간 간격으로 잠 들었다 깨는 토막잠인데 그걸 또 깨우는 잠꼬대, 가위눌리는 소리가 얼마나 야속한지...
그런데 그 속에 나도 낀다. 일 년에 두어번? 나도 소리를 질러 남을 깨우고, 어떤 때는 기억을 하고 어떤 때는 나도 기억을 못하고 아침에 남을 통해 그런 줄 안다. 그러니 소심하지만 복수를 한 셈인가? 흐흐흐!
사실 자주 악몽을 꾸면서 소리 지르는 단골이 있다. 낮에는 전혀 내색 없이 지내기도 하지만 대개는 살아 온 지난날이 파란만장하거나 고되고 모진 시집살이를 하신 분이 더 자주 그런다는 걸 오랜 병원생활에 얻은 경험통계다. 그런 분들은 이야기를 시켜보면 말이 터진다. 그냥 주고받으며 슬슬하는 게 아니라 쌓인 저수지의 둑이 터지듯 지난날의 괴로움을 홍수처럼 퍼붓는다.
이를 악물고 산 세월, 혹은 슬픔과 좌절을 꼭꼭 씹어가면서 젊은 시절을 보내신 분들이 잠이들어 긴장이 해제되면 속수무책인거다. 마음대로 안 되는 밤의 잠재의식, 쫓기고 죽을 것 같은 두려움과 흐느낌이 터져 나온다. 간혹은 낮동안 친절하고 전혀 고생을 모르셨을 것 같은 분도 그런 경우가 있다. 사람속의 그 많은 아픔을 얼굴만 보고 어찌 알까 싶다.
나중에 세조가 된 수양대군도 왕이 된 후에 심한 악몽으로 늘 잠을 제대로 못 잤다고 한다. 왕이 되기 전 숱하게 죽인 정치의 적들이 악몽으로 나타나 목을 조르고 원한을 저주로 퍼붓는 바람에, 견디다 못해 온갖 위령제도 지내주고, 보상이라도 하려고 살아 있는 백성들에게 호의도 베풀며 몸부림쳤지만 그의 악몽과 가위는 자신도 죽고서야 끝이 났을 정도였다.
“어쩌다 이렇게 다치셨어요?”
“교통사고로...”
“언제 그러셨어요?”
“뇌경색이 두 번이나 왔지요.”
병원에서 오래지나다 보면 얼굴이 익숙해지고, 그러다 인사차 묻게 된다. 한쪽이 마비로 절뚝거리며 정말 힘들게 한 발씩 옮기는 분도 있고, 아예 일어서지도 못해 휠체어에 평생 의지해 살아가는 젊은 사람도 많다. 그런 사람은 대개 교통사고다. 또 일터에서 다친 산재환자들도 종종 본다.
‘저 분들은 죄가 더 많아서일까?’
아무 생각 없이도 보고 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왜 특별하게 작정하고 지은 죄도 아닌데 다른 사람과 달리 뛰지도 못하고, 좋은 날, 좋은 계절엔 소풍도 마음대로 못가보고 살아야하나? 그건 고사하고 공기마시듯 자연스럽게 먹고 보는 화장실 생리마저 약과 손길의 도움을 받아가며 씨름해야하는 불행에 빠져야할까? 그것도 거의 평생을...
성경에도 병이나 장애는 죄와 상관없다고 했다. 자기의 죄나 부모의 죄로 오는 벌이 아니라고 했다. 실재로 착한 사람도 어느날 쓰러지고, 평생 좋은 마음으로 믿음생활하신 훌륭한 목사님도 암이 걸려 돌아가셨지 않은가. 너도 나도 예외가 없을 불행의 구멍에 빠지지 않은 게 내 노력이나 값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할 일인가. 단지 건강한 몸으로 일하고, 편한 상태로 먹고 싸고 잠들 수 있다는 게,
“야! 요즘 점점 좋아지시는데요! 활기차시고 얼굴도 평안해보이시고, 무슨 좋은 일 있으세요?”
“뭐 특별한 일은 없는데, 좋아보여요?”
“예!”
그런데 신기한 경과를 보았다. 똑같은 증상에 비슷한 치료와 약도 먹지만 사람마다 회복의 모습이 다른 경우를 보았다. 새로 입원해서 들어올 때는 잔뜩 일그러지고 온몸에 바늘 갑옷을 입은 사람처럼 예민해서 막 들이받기도 하던 사람이 변하는 것을 본다. 목소리가 낮아지고 얼굴에 자주 웃음이 나타난다. 평안해지는 느낌은 정말 느낌이 아니면 알 수도, 설명할 수도 없다.
그런데 비슷한 치료를 받아도 어떤 분은 전혀 나아지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 차이는 본인의 성품이나 주변의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합작품이라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마음을 열고 터놓거나, 한 번 웃음으로 받아주면 남들도 한 번 더 다가가고 말도 붙이기 쉬워진다. 그러면 또 조금 더 가까워져서 더 빼꼼 문을 열어 제치고, 또 많은 이야기들이 오가고, 그것이 선순환이 되면 마음만이 아니라 몸의 상태마저 굉장히 빠르게 회복이 된다. 대개 밝아지는 얼굴은 나아지는 건강을 부른다는 걸 목격하게 된다.
반대로 악순환도 있다. 냅다 싸우고 남에게 적대감과 비난을 해대면 남들은 꺼려서 또 등 돌리고, 또 갈등을 만들고... 나쁜 스트레스는 결코 좋은 평안도 몸의 회복도 가져오지 않더라는,
아무리 좋은 씨앗이 똑같은 날 똑같이 뿌려진다고 해도 같은 싹을 내지 않고, 같은 성장을 하지 못한다. 성경에도 그러더라. 길가나 가시밭, 자갈밭에 떨어진 씨는 좋은 밭에 떨어진 씨앗과 다른 열매를 맺는다고,
살면서 세월이 쌓이는 만큼 우리는 잠못들고 악몽을 꾸거나 가위눌려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는 것들을 누적해간다. 좋은 저축성 적금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다. 불행했던 일, 끔찍한 순간, 누군가와의 오랜 갈등, 물려받거나 실패로 인한 가난, 느닷없는 병고의 후유증... 얼마나 많은 눈물과 회한의 적금을 불입했던가.
그러나 우리는 털어내야 한다. 낮동안의 치료와 교제와 배움, 노력을 통하여 밤 동안의 악몽을 몰아내야 한다. 밤은 낮의 거울이다. 그냥 좋은 치료나, 좋은 씨앗만 있으면 만사 오케이 할 것 같고 잘 될 것 같지만 아니올시다!를 보다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
누구나 좋은 열매를 많이 맺고 싶어 한다. 그러려면 우리는 문을 열고 누군가 들어오거나 그 문으로 우리도 조금씩 나가야 한다. 사람이 정 못미더우면 하늘을 향해서라도 우리는 선순환의 출발을 해야 한다. 안에 담고는 절대 장사도 없고, 오래 버티지 못한다. 긴 병원생활을 통해 많은 사람들과 한 방에 동침(?)하면서 얻은 결론이다. 부디 풀면서 건강하시라!
제발 잠 좀 잡시다! 나도 남도 깨우지 않으면서 단 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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