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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똥 살 똥...' - 내가 이렇게 살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희망으로 2013. 10. 3. 13:42

<‘죽을 똥 살 똥...’ - 내가 이렇게 살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휴일이라고 모두들 느긋한데 아내와 나는 아침부터 죽을 똥 살 똥살고 있다. 나는 이 말이 그냥 어떤 수식어나 의미로 사용하는 건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말 그대로, 1차원적인 어떤 상황에 대한 표현일 줄이야...

 

아내가 달고 사는 희귀난치병의 후유증으로 온 대소변 장 신경의 마비는 여자의 스타일을 참 많이도 구긴다. 기본적인 활동조차 못하게 하는 치명적 벽, 장애물이 되어서.

 

나는 십분 이십분 배를 두드려가면서 힘쓰고, 아내는 온몸의 힘과 신경을 집중해보지만 잘 안 된다. ‘죽을 똥 살 똥일을 보는 동안 목으로 통증이 올라오는지 많이 아프다고 끙끙거린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나아졌잖아?”

자꾸 힘을 주니 목이 너무 아파...”

전에 폐가 마비되어 어깨와 가슴으로 숨을 쉴 때는 정말 목이 기형이 될 정도로 굳었는데,”

그것도 모르고 의사 샘은 목을 똑바로 해라, 배로 숨 쉬어야 한다! 얼마나 닦달했어...,”

그러게 환자는 안 되서 그러는 걸 쥐뿔도 모르고 말이야

밥 못 먹는 사람보고도 그래도 먹어야 한다, 토해도 먹어라 하지 않나, 자기들이 한 번 아파보지, 되나 안 되나 보게!”

맞아, 그래서 암 걸린 사람을 의사로 뽑아야한다고 누가 그랬지? 남의 속도 모르고 말한다고,”

 

그렇게 합동으로 낄낄거리며 흉보며 피로(?)를 풀어냈다. 하지만 사실이다. 안 되서 못하는 걸 배운 이론으로만 강요하고, 얼마나 힘 드는지, 왜 안 되는지 그 통증이나 불능의 괴로움은 짐작도 못하는 의사들의 매몰찬 말에 많이들 서러워했다. 그런데도 아내는 끝내 이렇게 말했다.

 

하긴, 그 심정, 통증 다 알면 말 함부로 못하고, 그래도 시켜야 달라지는데 독하게 못 시키지, 모르는 게 다행이기도 해

 

남편인 나도 가끔씩 잘난 소리만 늘어놓을 때도 있었다는 쐐기를 꼭 끝에다 달아주면서, 고맙기도 하지, 속으로 미안한맘을 투덜거림으로 얼버무린다. 하기는 그렇다. 안 아픈 사람이 아픈 사람 속을 어찌 제대로 알아주고 헤아려 줄 수 있을까? 애당초 물과 기름만큼 다른 간격을,

 

- 내가 이렇게 살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한 방에서 지지고 볶으며 몇 달, 몇 년을 같이 지내는 식구들이 자그만치 열 명이 넘는다. 9인실 다인용 병실이라 몇 몇은 벌써 3년째 24시간을 한 방에서 지낸다. 하루 세끼, 낮과 밤을 내내, 진짜 가족도 이렇게 긴 시간을 종일 얼굴 마주보며 사는 사람 별로 없다. 다들 직장가고 학교가고, 하다못해 놀러 라도 나갔다 오고 하니,

 

병실 큰 방 안에서 침대가 9, 그 사이 가리는 거라곤 필요 때만 쳤다 걷는 커튼 하나. 그나마도 답답하다고 잘 때도 안 가린다. 옷도 한 방에서 갈아입고, 좀 많이 불편한 사람은 한 방에서 대 소변도 본다. 우리도 그랬었다. 지금도 소변은 여전히 한 방에서 커튼치고 보는 중이다. 민망하지만 다들 서로 이해를 한다. 여러 날 지나다보면 이상하지도 않아지는게 이상하다.

 

그 중 2년 넘게 같이 지낸 한 아가씨가 생일을 맞았다. 또 다른 희귀병으로 고생하는 딱한 상태, 엄마 아빠가 바쁜 하우스 농사일로 모르고 지나가다가, 옆자리 간병인 아주머니가 슬그머니 전화로 알려주어 후다닥 이벤트를 벌렸다. 아침은 그분이 끓여준 미역국으로 떼우고, 한 낮에 꽃 바구니 하나가 택배로 날아왔다. ‘사랑하는 엄마 아빠가라는 리본이 달린 생일축하 화분!

 

저녁에 한 방 식구들이 돈을 모아 피자를 한 판사고 축하를 해주었다. 밤에 도착한 엄마 아빠의 생일음식도 같이 펴놓고 먹으면서, 세상에 태어날 때 아무도 예상 못했는데 살면서 한 가족 된 사람들이, 때로 세상은 이렇게 사람들을 이상한 방법으로 묶어 놓는다.

 

- 내가 이렇게 살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설거지통을 들고 늦은 시간이라 조용해진 싱크대로 갔다. 온 몸에 튕기는 세제거품, 물방울들, 아무리 해도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살림살이. 난 결혼 전에 10년이 넘는 세월을 혼자 자취를 하며 살았다. 그리고 결혼 후 편히 지내다 아내가 아프면서 5년 넘도록 또 비슷하게 산다. 그릇들을 씻고, 과일도 깎고, 빨래도 하고 널고, 좁은 병실 침대 곁에서지만 살림 비슷한 생활을 하는 중이다.

 

누가 들으면 이제는 살림에는 도사가 되었겠다고 할지 모르는데 정말 젬병이다. 해도 해도 늘지를 않는다. 무엇보다 힘든 건 아직도 이 살림살이들이 낮설다는 것, 익숙해지지도 좋아지지도 않는 것, 만약 내 하고 싶은 데로 하라면 달랑 접시나 그릇 하나에 수저 한 벌로 살고 싶다. 그것만 씻고 그것만 가지고 살면 안 될까? 수도자나 거지라고 할라나?...

 

난 정말 설거지가 싫다

난 정말 설거지를 못 한다

난 정말 설거지 안하며 살고 싶다

 

- 내가 이렇게 살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투덜거리며 설거지로 엉망이 된 바지를 털고 좀 쉬자고 앉았는데 깔 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상하네? 이 시간이면 학교 기숙사에 있을 시간인데...’

아빠, 나 뭐 좀 사서 들어갈 것 있어, 좀 나와 줘!”

뭔데?”

커피!”

에잉? 학생이 무슨 커피?”

 

친구 치과 가는데 따라서 외출 나왔다가 저녁 얻어먹고 들어가는 길에 전화를 했단다. 곧 중간고사 시험이라 밤늦게 공부하는데 자꾸 졸려서 못 견디겠단다. 그래서 냉장고에 보관해놓고 조금씩 마시고 싶단다. 완전한 커피 말고 우유가 많이 들어간 카페라떼인지 뭔지를,

 

이런 저런 말리려야 할 이유가 몇 가지나 목 까지 올라오지만 얼굴 보며 만나는 것만도 반갑고, 스스로 공부하겠다는 말만으로도 이미 나는 감동을 먹었는지 쏙 들어갔다. 결국 큰 마트를 들러 몇 종류나 사서 손에 들려 학교기숙사까지 태워주고 돌아왔다. 내가 생각해도 참 많이 변했다. 예전에는 펄쩍 뛰던 상황들인데도 다른 사람이 되고 말았다. 아내는 안 변했는데 모르고 말했다가 핀잔을 된통 먹었지만,

 

- 내가 이렇게 살게 될 줄은 정말, 정말 몰랐다!

 

사람들은 살다보면 살고 싶은 데로 안 되고, 예상한대로 못 사는걸 참 자주 보고 겪는다.

그럼 뭐 어쩌나, 우리를 세상에 보낸 하늘의 아버지께서도 예상 밖으로 사는 우리 꼴을 참고 보며 견디시는 걸, 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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