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끄적/그저 오늘 이야기...

휴업 예고서

희망으로 2013. 6. 18. 08:23

<휴업 예고서>



간밤에 시작한 비가 밤새도록 그치지 않고 내립니다.

이제 겨우 장마 속으로 진입한지 하루인데,

아침부터 핑계를 댈 이유를 하나도 못 찾고도 심히 우울해집니다.

 

그저 싫습니다.

어느 때는 하루 하루가 징벌 같아도 일생을 감사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어느 날은 변덕스럽게 심정이 뒤집어지면 반대가 됩니다.

하루 하루는 다행이고 문제가 없는데도 일생이 원망스러워집니다.

이렇게 일생을 살라고요? 하며 따지는 마음이 몰려와서...

오늘 아침이 그렇습니다.

 

플라스틱으로 찍어낸 웃는 인형처럼 주변 분들에게 생글 방긋 웃으며

자동으로 표정 바꾸며 인사해야하는 것도 짜증이 나고,

늘 먹던 병원 밥상도 받아오면서 반찬투정 시간 투정 미워집니다.

, 정말 일생을 이렇게 말뚝에 메인 짐승처럼 반복에 반복하며

뺑뺑이를 돌며 살아야하는지, 내 인생을 누가 가두었는지 패주고 싶습니다.

 

기본적으로 자유롭고, 기본적으로 건강하고, 기본적으로 생계 위험이 없는 사람들이

생의 고민처럼 고고하게 씨름하는 설교나 훈계가 싫어집니다.

마치 갇힘이나 생존고민, 아픈 질병의 통증쯤은 벌레들이나 하는 저급한 몸부림처럼

원천 무시하면서 추구하는 영적 괴로움, 번민, 운운 나열하는 게 보기 싫습니다.

몸은 영적 수준보다 한참 아래지만 괴로움은 영적고민보다 치사할 만큼 지속적인데 말입니다.

 

그런데 자유를 주시는 분이 제 속에다 한마디 하십니다.

가고 싶은 곳이 없거나 가야할 필요가 없는 사람은 결코 길을 잃지 않는다라고,

무엇을 모르는지도 모르는 사람은 물어볼 것이 도통 없다는 말과 같이,

 

나는 가고 싶은 곳이 있어서 길을 잃었고

나는 날고 싶은 하늘이 있어서 갇혔습니다.

나는 바라는 기쁨이 있어 슬픔에 빠졌고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 미움도 가집니다.

나는 살고 싶어서 종종 죽음을 느낍니다.

나는 알고 싶은 것이 많아서 모르는 것들이 답답합니다.

 

오늘은 절망감이 나를 덮지만 그 깊이만큼 간절해지는 반대편의 희망을 구합니다.

목마른 정도와 반비례로 물이 간절한 사람과 같습니다.

비만 오는 날에 비 개인 햇빛의 하늘을 꿈꾸며 그 간극을 오직 인내로 버팁니다.

강 건너 불구경 하는 사람들은 감사로 버티라고 훈계하지만 잘 안될 때도 잇는 법입니다.

오늘 아침은 말을 잘 안 듣는 고약한 한 순간인가 봅니다.

 

나의 두 모습을 모두 인정하기 싫은 분들은 무척 불편하실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곧 휴업이나 굴속 수련으로 들어가야 할 징조입니다.

비는 쌓이는데 마음은 빠져나가고, 땅은 젖는데 속은 한없이 메말라갑니다.

 

 사진 속의 저 새가 내 심정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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