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가는 길/예수님과 함께 가는 길

은사를 넘어 사랑으로 - 김병년목사님 동영상

희망으로 2013. 2. 3. 20:11

<은사를 넘어 사랑으로>

 

1.가정의 고비를 넘기면서 많이 힘든 사람은 어른도 부부도 아니고 아이들입니다.

 

2.하나님은 각 사람의 환경과 기질, 신학, 소질, 그 모든 것을 사용하여 하나님을 나타내고 사랑을 표현 하신다.

 

3.나라의 경제가 어려워서 교회가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교회안의 성도가 부패하기 때문에 무너지는 것이다. 북한의 적화야욕으로 남한의 교회가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교회안의 부패 때문에 남한 교회가 무너진다.

 

4.가난한 사람들을 돌볼 때 교회는 가장 부흥했었다. 그것은 초대교회와 1900년대 평양대부흥회와 순복음교회의 초기 모습을 보아도 알 수 있다.

 

5.바나바는 사도들이 부활을 증거하자 자기 재산을 팔아서 내놓았다. 오순절 성령이 임했을 때 가장 먼저 남들의 핍절, 가난, 필요가 눈에 들어왔다. 자기의 필요가 아니라...

 

6.성령은 아주 두려운 영이다. 성령은 사랑의 영이기 때문에 성령을 받은 이후의 변화는 모든 것을 팔고 목숨을 다하여 헌신하고 예배를 드렸기 때문이다. 성령이 방언이나 병을 고치고 복을 받는 것과만 연결이 되면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고 성령을 받겠다고 하지만 사실을 알고보면 성령을 받는 것은 한편으로는 무서운 일이기도 하다.

 

7.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아픈 사람들, 장애인들, 노숙자들이 마음대로 갈 수 있는 교회가 한국에도 한 군데쯤은 있어야 한다.

 

8.교회는 영적인 권위가 있어야 한다. 그건 목회자의 지위에 의한 영적인 권위가 아니라 거짓과 성령을 분별하는 성도가 있어야 영적 권위가 생긴다.

 

9.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초대교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현대에도 있다. 조금 헌신하고도 사람들 눈에 많이 하는 것으로 보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만일 하나님이 초대교회처럼 정리한다면 오늘날 교회는 초상집이 될지도 모른다.

 

10.교회에 재산을 헌납하고 죽은 사람이 아나니아와 삽비라다. 거짓헌신을 구별해낸 사도들의 영적 분별력으로 그들은 죽음을 당한 것이다. 세상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교회를 두려워했다. 영적권위란 그렇게 생기는 것이다.

 

11.방언은 순간적인 두려움도 주지만 웃음거리가 되기도 한다. 기적도 순간적인 놀라움을 주지만 사람들을 변화시키지는 못한다. 기적을 일으켜서 자기의 유익을 추구하는 것은 다 좋아하지만 그 이후의 모든 고통과 헌신을 각오하는 것은 잘 하지 않는다. 희생하는 공동체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참된 성령의 역사라고 할 수 없다.

 

12.개화기 1900년 초에 중앙관리들은 부임해가는 지역에 야수교회, 즉 예수교인들이 있는 곳에는 부임하기를 꺼려했다. 그들은 끝까지 불의를 용서하지 않고 정의를 추구했기 때문에 그들이 견딜 수가 없었다.

 

13.세상이 교회를 우습게 보는 이유는 교회가 정의의 기준을 상실했기 때문에, 사랑을 잃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향할 때는 거룩이라는 단어를 쓰고, 사람을 향해 쓸 때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쓴다. 구약과 신약의 표현차이이기도 하다. 구약의 표현에 따르면 청결과 이웃을 돌보는 것도 거룩이다.

 

14.초대교회는 은사 때문에 유명해진 것이 아니고 사랑 때문에 유명해진 것이다. 그들은 금식을 하면서 불우한 이웃을 위해 음식을 내놓고 나누었다. 그래서 유명해졌다. 돈을 줄줄 알면서 그들과 함께 살지 못하는 행태가 현대 한국교회가 욕을 먹는 이유다.

 

15.심한 중증의 자애자도 집에 가만히 두면 환자가 되지만, 사랑으로 밖에 나가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장애는 팔이나 다리 하나를 잃은 것을 말하는 게 아니라 아무도 다가가지 않고 홀로 있게 되는 것을 장애라고 한다.

 

16.이 사랑은 사람에게는 실천할 힘이 없다. 오직 성령의 힘, 성령의 사랑으로만 가능하다. 봉사도 성령으로 하면 즐겁지만 자기 의로 하면 곧바로 불평과 불만이 일어난다. 누군가와의 비교와 억울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