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속이 다 보인다구요?’
간밤엔 딸아이가 무슨 찰흙숙제가 있는데 잘 안된다고 속상하다고 전화가 왔다. 미술시간에 조형물을 만드는데 자기는 김연아의 멋진 피겨장면을 만들겠다고 그 전날 들떠서 말했던 기억이 났다.
그런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보니 철사로 골격을 만들다가 잘 안되었는지 해체를 해버리곤 씩씩거리며 내게 마음을 풀어보려고 전화를 한 것이다.
그런데 아이는 풀기는 고사하고 더 스트레스가 쌓였고, 결국은 엄마에게로 부랴부랴 전화를 넘겨주었다. 아비가 남자 아니랄까봐 이런 방법, 저런 훈계를 늘어놓다가 기어이 아이 입에서 한 방이 날아 왔다.
“아빠, 제발 그러지 말고 좀 많이 힘들겠구나,
잘 안 되서 속상하나보네! 하고 말 좀 해주면 안 돼?“
나는 나대로 부글부글 끓어서 속으로 ‘이 놈의 기집애, 왜 그리 힘든 걸 한다고 목표를 세우곤 안 된다고 난리야? 좀 쉬운 걸 하고, 나중에 단계적으로 조금씩 어려운 걸 해나가면 좋잖아‘ 그렇게 화를 달래며 투덜거렸다.
그래도 겉으로 대놓고 그랬다간 정말 감당을 못 할 테니 꾹 참으며 말했다.
“미안해! 그렇게 말해야하는데 또 맘 상하게 했구나,
그래도 아빠는 널 사랑하는 거 알지? 담엔 잘 해볼께“
그러고 아내에게 넘겨주었다. ‘미워서 못 참겠다! 딸래미 못 키우겠다!’고 아내에게 씩씩거리며 애꿎은 화풀이를 동시에 하면서!
이러는 거 딸이 다 알면 큰일 난다. 정나미 떨어져서 못 살 거다. 그래서 그런 말이 나왔나? ‘너무 많은 걸 알면 다친다!’고...
만약 사람의 눈이 현미경처럼 잘 보여서 모든 걸 보게 되면 못산다. 밥이고 물이고 대장균 우글거리는 게 다 보일 테니, 마찬가지로 소리도 다 들리면 윙윙거리고 시끄럽고, 십리 밖에서 내 욕하는 소리까지 다 들리면 내가 내 명대로 살 수 있을까?
며칠 전 아내를 문병오신 사모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너무 웃었다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하나님 한 번도 날 실망시킨 적 없으시고’라는 찬양곡을 말하면서 그 노래를 작사하신 분이 왜 그렇게 지었는지 아냐고 물었단다.
아내가 잘 모르겠다고 했더니 그 사모님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건 그 분이 대학생일 때 노래를 만들어서 그렇대, 대학생이 무슨 힘든 걸 겪어보았다고 실망을 알겠어?그러니 ‘한 번도 실망시킨 적 없으시고!’ 라는 가사를 붙였지!”
“푸하하~~~! 진짜 그런가요? 그럴듯하긴 합니다.”
그러면서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었답니다. 온갖 병으로 아프면서 칠팔십이 되어서도 힘들게 죽지도 않고 고생을 하는 경우도 있고, 건강하고 할 일이 많은데도 일찍 데려가는 경우도 있다며 하나님의 뜻은 알 수가 없다는 말을,
“아! 그러면 당신이 잠시 대리 관리를 좀 해봐, 하나님이 잘 관리를 못하시잖아? 데려갈 사람은 놓아두고,안 데려갈 사람을 데려가시기도 하니...“
“....”
“당신이 맡아서 정리를 싹 해보라구! 아프다 힘들다 하는 사람들 다 데려가고, 재미있다 더 살겠다 하는 사람 다 냅두고~~“
말을 해놓고 보니 그랬다간 큰일 나겠다 싶어 얼른 취소했다.
그리고 60억이 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이거 해 달라 저거 해 달라, 아프다 배고프다 그러고, 이 놈 밉다,저 놈 밉다, 치워 달라! 부자 되게 해달라!... 그러면?
으으~~! 그 많은 소리들 다 들으면서 어떻게 살어? 하나님도 제 명에 못살고 스트레스 받아 세상 떠시겠다!쯧쯧...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한다면? 어쩌면 볼 때보다 훨씬 편견과 불공평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른다. 만약 우리가 듣지 못한다면? 영원히 변하지 않는 아름다운 소리만을 듣게 될지도 모른다. 많은 것을 보고 듣는 게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아내 투병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죽는날까지 늘어날 채무... (0) | 2012.10.05 |
---|---|
코피 흘리고도 웃어? (0) | 2012.10.04 |
내가 마누라로 보여?? (0) | 2012.09.29 |
고장난 비행기에는 없는 것? (0) | 2012.09.28 |
다발성경화증 동영상 - 아름다운여행 (0) | 2012.08.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