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편지를 읽으면서 가끔 아내와 주고받던 이야기가 생각나서 실실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건 다름 아니고 아침이나 저녁 연속극을 보다가 불쑥 던지는 말입니다. "아니 저 여주인공은 슈퍼우먼인가? 아님 원더우먼?? 사방팔방 다 뛰어다니고 잠도 안자고 먹지도 않아도 기운 펄펄나서 다니네?" 둘다 그 부분엔 공감한다는 듯 죽이 맞습니다. 다른 주제에도 늘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 싶을 만큼! ㅎㅎ
그리고 더 나갑니다. " 맞아! 저 여주인공은 배알도 없고 자존심도 없나봐 천사표야 천사표.. 저게 사람이야? 맨날 당하고도 용서하고 말도 똑 부러지게 따지지도 변명도 안하면서 말이야!" 열이 뻗치기도 합니다. 공연히 샘나고 바보 같은 인내심을 보노라면...
아마 연속극속의 그 여주인공은 틀림없이 고지론자를 넘어선 우뚝 선 고지의 사람일겁니다. 능력도 뛰어나서 사업이면 사업, 작품이면 작품, 뭐 못하는 것도 없고 그렇다고 결실을 몽땅 자기가 가지겠다고 하지도 않더군요. 사람들은 그 주인공을 마침내는 박수치고 좋아라합니다. 대부분은~
그런데 목사님의 고지론과 내용도 제 생각엔 얼핏 비슷한데 왜 이렇게 염려하고 문제가 많다고 보는걸까요? 그냥 가볍게 느끼는 의문 하나입니다. 좀 현실성 없다 느끼면서도 저도 그 여주인공이 참 좋습니다. 그런 주인공이 제 아내이거나 자녀, 혹은 친구였으면 싶기도 합니다. 참 자랑스러울 것 같습니다. 예수님도 좀 현실성 떨어지는 행태를 보이신 삶을 살다 가신 분입니다. 그 예수님을 참 좋아하는걸 보면~~
(아! 김동호목사님도 쬐끔, 현실성 떨어지지만 존경스러운 예수님 닮아가시는 주인공감입니다! ^^*)
- <목사님의 시선으로 힘을 얻는 초짜신앙인>
(두 번째 답장)
좋아하면 닮는다! 고 누군가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도 목사님을 좋아하나봅니다. 그래서 하루에 댓글을 두 개나 올리는 닮은 꼴(?)을 보입니다. ^^*
어떤 사람이 달을 가리키며 '저 달을 봐! 아름답다!' 감탄을 하는데 "각도가 안 맞아!" "손톱밑에 때봐? 지저분하게..." 뭐 이런식으로 딴 말을 하면 본래의 의도가 망가지지요. 때로 본문을 이해하는데 이해를 돕기 위해 비유를 들었는데 비유속의 또 다른 촛점과 꺼리를 계속 꼬리 잡고 토론을 만들어 가면 오히려 본문이 실종되기도 합니다. 요즘 어쩐지 그런 현상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 두 개의 답장을 올리는 건 아닙니다. 제 생각엔 지금 여러 번 말씀해주시는 고지론이 앞으로 오를 사람들에게 이정표로 주시는 말씀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론 이미 고지에 오른 분들, (그것이 1%인지 몇 프로인지는 모르겠지만요) 고지에 올랐지만 하늘도 눈에 안 들어오고 저지도 관심 없이 좌우 옆만 보며 '자기들만의 리그'를 누리시는 분들에게 부디 영향을 미쳤으면 싶습니다.
부유함 자체는 불행과 상관없지만 그 부유함을 자기 품에만 끌어안고 사는 부자에게는 분명 불행이 관련이 있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자녀라는 문패를 달고 사시는 분이라면 죄 없다고도 안하실겁니다. 그분들이 제대로된 고지론자가 되어주신다면 그보다 더 확실하고 좋은 가르침이 어디 있을까요?
좋은 부모는 그 사는 모습으로 자녀들에게 길을 가르치고 힘을 줍니다. 무슨 이론이나 강의로가 아니고! 아마도 그 고지를 향해 갈 젊은이들에게 가장 좋은 스승은 지금 고지에 선 분들의 솔선수범 삶일 것입니다. 목사님의 고지론이 바라는 알맹이를 그 분들이 적용해주신다면, 손톱밑이나 키가 적네 크네 각도가 좀 옆으로 갔네 하지않고 달을 제대로 보며 같이 감탄할 수 있겠지요.
저는 고지에서 먼 저지에 사는 형편인데 남의 동네 살림살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는게 주제가 아니다 싶으면서도 이 말을 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려서요~ ㅎㅎ 좋은 주말 보내시고 행복하시고 평안하소서!
- <목사님의 시선으로 힘을 얻는 초짜신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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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안교회를 시무할 때 동안교회 청년들은 해마다 아프리카 단기선교를 가곤했습니다.
2. 아프리카로 떠나기 전 훈련이 무척 강하고 어려웠습니다. 지하실에서부터 교회 꼭대기 층까지 계단을 오리걸음으로 올라가는 훈련도 받았습니다.
3. 60이 넘으신 장로님도 오리걸음 훈련을 받았습니다.
4. 동안교회 청년들이 가는 아프리카는 차도 들어가지 못하는 오지였습니다. 차가 들어갈 수 있는 곳에서부터 걸어서 꼬박 하루 정도를 들어가야만 하는 곳을 가려고 했기 때문에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강한 훈련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5.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약자를 섬기겠다고 저지로 오는 청년들이 많이 있습니다.
6. 착하고 좋은 마음은 귀하지만 그런 마음과 열정 그리고 헌신만으로 약자를 섬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은 고맙지만 실제로 약자들에게 도움은 안 되는 경우가 얼마나 허다한지 모릅니다.
7. 도움이 안 되는 정도를 넘어서 심한 경우는 실제로 방해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본인들은 그런 사실을 잘 느끼지 못합니다.
8. 그냥 자신들의 순수한 마음과 열정만 생각합니다. 실력은 별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약자 섬김은 힘과 실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마음과 열정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9. 며칠 전에 쓴 글에서도 이야기를 했지만 나물먹고 물 마실 형편만 되도 그냥 누워 있어도 됩니다. 그리고 행복을 느낀다면 상관 없는 것입니다.
10. 그러나 나물먹고 물마실 것 자체가 해결되지 않는 절박한 약자들을 정말로 섬기려고 한다면 그냥 누워있는 것만으로는 절대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11. 평소에는 60이 넘으신 장로님이 오리걸음으로 계단을 올라가는 훈련을 필요없습니다. 그와 같은 체력은 아무 의미없습니다.
12. 그러나 아프리카 오지를 가려면 그런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 체력을 준비하여야만 합니다.
13. 저는 오리걸음으로 계단을 오르는 것을 고지정복이라고 생각하고 부릅니다.
14. 세상에는 자기 자신의 야망을 위하여 오리걸음으로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들은 고지에 오르면 저지를 지배합니다.
15. 그러나 세상에는 드물지만 우리 동안교회 청년들 처럼 아프리카 오지의 약자들은 실력으로 잘 섬기기 위하여 오리걸음으로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들은 고지에 오르는 목적이 저지를 지배함이 아니라 저지를 섬김에 있습니다.
16. 세상에는 오리걸음으로 계단을 오르는 모든 사람을 다 저지를 지배하려고 계단을 오르는 사람으로만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17. 그런데 더 골치 아픈 사람은 힘들고 고통스러워서 오리걸음으로 계단오르는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이 자기를 합리화하기 위하여 오리걸음으로 계단을 오르는 사람을 비판하고 비난하는 것입니다.
18. 저지를 지배하려는 목적으로 계단을 오르는 사람만 비판하면 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19. 정말 약자를 돕고 섬기고 싶으시다면 이왕이면 더 잘 효과적으로 섬기기 위하여 남보다 더 열심히 힘을 키우시는 것이 필요합니다.
20. 오리걸음으로 계단을 오른 사람은 저지로 갔을 때 큰 도움이 된답니다. 고지는 자신을 위하고 약자를 짓누르는데도 큰 무기가 되지만 약자를 돕고 섬기는데도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21. 따뜻한 마음만으로도 힘이 되지만 그 마음에 실력이 더해진다면 섬김의 힘은 폭발적이 될 것입니다.
22. 오리걸음으로 계단을 올라 얻은 고지적인 힘을 가지고 저지로 내려가십시다. 그게 20년 전부터 한번도 변해지지 않은 제 고지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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