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자들을 향한 부자들의 뺏기 싸움에 결투를 신청하셨네요.
부자들을 향한 빼앗기 도전장을 던진 ‘정신 나간 착한 부자’로!
성경에도 그랬지요? 재물 있는 곳에 마음 있다고?
그 말은 바꾸어 말하면 마음 있는 곳에 재물도 있다는 진리입니다.
재물은 등 뒤로 돌아가고 앞면에는 마음만 있는 경우는 속임수이고 사기입니다.
...
마음 주는 것 당연합니다. 그러나 ‘마음만’은 전혀 다른 경우입니다.
우스개소리로 아이들과 아줌마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마음 뿐인 선물’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재물이 없어도 아무 것도 못 나눌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많이나 액수가 아니라 있는대로를 기준으로 보면 그렇습니다. 엘리야를 살린 과부의 밀가루가 그렇고, 과부의 두 렙돈과 오병이어, 칠병이어의 소년이 내 놓은 물고기와 떡이 그랬습니다.
옥합을 깬 여인에게 제자들조차 그 돈이면 가난한 사람을 얼마나 구제할 수 있냐고 야단을 하지만 그건 마음 없이 재물에만 시선을 둔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마음가는대로 일년치 수입인 삼백데나리온도 쓸 수 있는 일치의 여인에게 말 할 자격 없습니다. 그런 말을 할 자격 있는 사람은 평상시에 모든 것을 가난한 사람을 위해 하나도 남기지 않고 나누어주던 사람만이 할 자격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뒷 이야기가 그랬지요. 그 일은 앞으로 너희가 계속해라. 나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별로 없다. 재물과 마음을 따로 보지 않는 예수님의 가치관이었습니다.
또 제 이야기를 예로 드려 죄송합니다. 그러나 소설이 아니라 실체에 근거한 이야기를 드려야겠다고 하다보니...
저는 5년째 10원 한 장도 벌지 못하며 병원에 발이 묶여 지내는 중입니다. 어지간히 번다고해도 전문간병인 한 분을 붙일 월250만원,(아내는 대소변도 받아야 할 중증이라 수도권에서는 하루 10만원, 월300만원은 지불하는 현실입니다.) 과 병원비, 아이들 생활비, 직장을 출퇴근하는 비용, 그렇다고 병원을 안올 수도 없으니 그 비용까지 월 500만원 이상은 벌어야하는데 제 나이에 이 한국땅의 현실은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직접 간병하고 살림하고 최소한으로 줄여서 버팁니다. 당연히 후원자들과 여기저기 형제 친척들의 도움으로...
제 이야기는 이제부터입니다. 그런 제가 피같이 귀하고 금쪽 같은 돈으로도 도저히 쓰지 않을 수 없는 경우가 몇 번 있었습니다. 시골교회에 보내는 십일조야 밀렸다 나누어 조금씩 그렇게하지만 하루 아침에 공사장에서 떨어져 허리가 부러진 다섯식구의 가장을 돕기위한 모금을 제가 아는 신앙모임에서 할 때 보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형편을 너무도 잘 아는 제가 구체적인 비용을 돕지 않으면서 남의 도움은 받는다는게 견딜 수 없는 모순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비슷한 사연으로 떠돌던 병원에서 만나게 되는 순간은 어쩔 수없이 지갑을 찢습니다. 턴다는게 맞나요?
저 같은 경우도 구체적인 금전이 동반해야만 하는 마음나누기를 하는데 돈 없어도 마음만으로... 그런 입장 논리는 먹을게 없다고 돌려보내자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주라!는 예수님의 지시를 정면으로 어기는 것입니다. 정말 아무 것도 줄 수 없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한 때 운영자들의 오점으로 말이 많았지만 음성 꽃동네의 출발점은 거지노인이던 최귀동 할아버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얻어먹을 힘만 있어도 다른 이를 돕던 그 모습에서 말입니다.
마음도 감사하지만 재물도 가야지요. ‘가난한자를 돕는 것은 하나님께 빌려주는 것이다’라고 한 전도서인가의 말씀처럼 말입니다. 그렇다면 기왕이면 최악의 고아나 과부, 병든 가족보다야 건강하고 재능있고 재물있는 사람들이 더 잘할 것이고 큰 힘이 나오지 않을까요? 물론 마음 없이 재물만 나가는 경우도 불행히 생기겠지만요.
‘정신 나간 착한 부자들이 가능하면 재계와 정계 사회문화계를 많이 차지했으면 좋겠습니다.
성경에도 가난한 사람과 고아와 과부를 돌보라고 한 말이 그들에게 한 말일겁니다. 같은 가난한자끼리. 갗은 고아와 과부끼리 니네들이 서로 돕고 살아라! 하지 않으시고...
- <친구라고 부르시는 목사님이 시선을 주는 곳을 따라 하루에 두번씩이나 보는 초짜신앙인>더 보기
부자들을 향한 빼앗기 도전장을 던진 ‘정신 나간 착한 부자’로!
성경에도 그랬지요? 재물 있는 곳에 마음 있다고?
그 말은 바꾸어 말하면 마음 있는 곳에 재물도 있다는 진리입니다.
재물은 등 뒤로 돌아가고 앞면에는 마음만 있는 경우는 속임수이고 사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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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주는 것 당연합니다. 그러나 ‘마음만’은 전혀 다른 경우입니다.
우스개소리로 아이들과 아줌마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마음 뿐인 선물’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재물이 없어도 아무 것도 못 나눌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많이나 액수가 아니라 있는대로를 기준으로 보면 그렇습니다. 엘리야를 살린 과부의 밀가루가 그렇고, 과부의 두 렙돈과 오병이어, 칠병이어의 소년이 내 놓은 물고기와 떡이 그랬습니다.
옥합을 깬 여인에게 제자들조차 그 돈이면 가난한 사람을 얼마나 구제할 수 있냐고 야단을 하지만 그건 마음 없이 재물에만 시선을 둔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마음가는대로 일년치 수입인 삼백데나리온도 쓸 수 있는 일치의 여인에게 말 할 자격 없습니다. 그런 말을 할 자격 있는 사람은 평상시에 모든 것을 가난한 사람을 위해 하나도 남기지 않고 나누어주던 사람만이 할 자격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뒷 이야기가 그랬지요. 그 일은 앞으로 너희가 계속해라. 나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별로 없다. 재물과 마음을 따로 보지 않는 예수님의 가치관이었습니다.
또 제 이야기를 예로 드려 죄송합니다. 그러나 소설이 아니라 실체에 근거한 이야기를 드려야겠다고 하다보니...
저는 5년째 10원 한 장도 벌지 못하며 병원에 발이 묶여 지내는 중입니다. 어지간히 번다고해도 전문간병인 한 분을 붙일 월250만원,(아내는 대소변도 받아야 할 중증이라 수도권에서는 하루 10만원, 월300만원은 지불하는 현실입니다.) 과 병원비, 아이들 생활비, 직장을 출퇴근하는 비용, 그렇다고 병원을 안올 수도 없으니 그 비용까지 월 500만원 이상은 벌어야하는데 제 나이에 이 한국땅의 현실은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직접 간병하고 살림하고 최소한으로 줄여서 버팁니다. 당연히 후원자들과 여기저기 형제 친척들의 도움으로...
제 이야기는 이제부터입니다. 그런 제가 피같이 귀하고 금쪽 같은 돈으로도 도저히 쓰지 않을 수 없는 경우가 몇 번 있었습니다. 시골교회에 보내는 십일조야 밀렸다 나누어 조금씩 그렇게하지만 하루 아침에 공사장에서 떨어져 허리가 부러진 다섯식구의 가장을 돕기위한 모금을 제가 아는 신앙모임에서 할 때 보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형편을 너무도 잘 아는 제가 구체적인 비용을 돕지 않으면서 남의 도움은 받는다는게 견딜 수 없는 모순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비슷한 사연으로 떠돌던 병원에서 만나게 되는 순간은 어쩔 수없이 지갑을 찢습니다. 턴다는게 맞나요?
저 같은 경우도 구체적인 금전이 동반해야만 하는 마음나누기를 하는데 돈 없어도 마음만으로... 그런 입장 논리는 먹을게 없다고 돌려보내자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주라!는 예수님의 지시를 정면으로 어기는 것입니다. 정말 아무 것도 줄 수 없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한 때 운영자들의 오점으로 말이 많았지만 음성 꽃동네의 출발점은 거지노인이던 최귀동 할아버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얻어먹을 힘만 있어도 다른 이를 돕던 그 모습에서 말입니다.
마음도 감사하지만 재물도 가야지요. ‘가난한자를 돕는 것은 하나님께 빌려주는 것이다’라고 한 전도서인가의 말씀처럼 말입니다. 그렇다면 기왕이면 최악의 고아나 과부, 병든 가족보다야 건강하고 재능있고 재물있는 사람들이 더 잘할 것이고 큰 힘이 나오지 않을까요? 물론 마음 없이 재물만 나가는 경우도 불행히 생기겠지만요.
‘정신 나간 착한 부자들이 가능하면 재계와 정계 사회문화계를 많이 차지했으면 좋겠습니다.
성경에도 가난한 사람과 고아와 과부를 돌보라고 한 말이 그들에게 한 말일겁니다. 같은 가난한자끼리. 갗은 고아와 과부끼리 니네들이 서로 돕고 살아라! 하지 않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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