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끄적/길을 가는 사람...

시와 사람과 어머니

희망으로 2011. 4. 21. 23:02

어느 시인이 말했다

아무리 좋은 집과 정원이 있어도

그곳에 사람이 없다면 시가 나오지 않는다고

 

무릉도원 같은 절경이 있고

사시사철 벌 나비가 날아다녀도

그곳에 땀 냄새 나는 사람 하나 없으면

시는 쓸 수 없다고

 

경주시장 진입로 한쪽에 어머니는 좌판을 펴고

봄이면 나물종류를 다듬고

여름 가을 겨울 계절마다

온갖 채소류 반찬거리를 다듬고 만들어 팔았다

 

종일 무릎쑤시고 허리 아픈걸 참고

밤 늦어 학생들 미어터지는 버스에 눈치보며

광주리 서너개 끌어 안고 집으로 돌아오셨다.

아버지는 늦었다 배고프다 닥달을 하시며 기다리는 집으로

 

어쩌다 명절 전날 동행하여 귀가를 하러가면

온 시장 사람들 다 불러 인사시키고

번듯한 옷차림으로 민망해지는 내 속도 모르고

아들이라고 웃기도하고 수줍기도 하며 신이 나셨다

 

땀 냄새는 기본이고

겨울이면 꽁꽁 얼어붙은 손과 발을 기다리는건

부엌 꺼져가는 연탄불에 얼어붙은 물동이들

밥상 한 번 차리고는 쓰러지는 몸뚱이 사람

 

그곳에는 폼나는 집도 정원도 없고

지독한 땀 냄새나는 사람만 달랑 있었다.

시장 바닥 길 한쪽 좌판 행렬엔

폭포도 유람선도 없고 쫒고 쫒기는 생존만 있고...

 

그곳엔 시도 없었다.

잘 입은 아들도 부끄러움일 뿐이고

사람도 없었다.

단지 어머니만

일평생을 참기만 하다 가신 어머니만 있었다

 

삼년도 아니고

삼개월도 아니고

삼주 밖에 안된

영원히 헤어진 어머니의 그림자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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