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르륵!”
손전화의 진동이 치료실에 있는 중에 울렸습니다.
“여보세요”
얼른 밖으로 나가면서 받았습니다.
“...어머니가 위독하다고 연락이 왔는데, 아무래도 같이 내려가기가 어렵지?”
강원도에서 방을 얻어 군무원으로 근무하는 바로 아래 남동생에게서 온 전화입니다.
제게는 사랑하는 두 여인이 있습니다.
한 여인은 기울은 가세로 신경이 날카롭고 지병까지 얻어서 더 사나워진 아버지 곁에서 오랜 시달림에 견디다 못해 한 번은 나와 둘이 도망가자고 기차역까지 나갔다가 한참을 앉아 몇 대의 기차를 보내고 실없이 돌아와 대판 야단을 같이 맞았던 그렇게 착한 엄마입니다.
아버지가 끝내 암의 고통을 못 견디시고 뭉치로 상처를 주고 하늘이 부르기도 전에 먼저 세상을 떠나신 뒤 온갖 홧병과 쌓인 몸의 가시들이 차례로 덥쳐왔습니다.
고집부리며 혼자 지내시더니 요즘은 보기도 드물다는 결핵부터 당뇨, 파킨슨병이 오더니 위암이 퍼졌습니다. 고관절은 골다공증으로 주저 앉아버려 대 수술을 하시곤 다시 못 일어나시더니 두 눈은 당뇨로 실명, 독한 약을 견디다 못해 계속되는 속병, 결국 우리가 모시다 수습이 불가능한 사태까지 가서 시립병원으로 들어가신 뒤 많이 외로우셨는지 치매까지 왔습니다.
자녀가 탈선하지 않도록 온몸으로 막고 끌고 사신 댓가로 얻은 것은 그저 우루루 몰려와서 사흘 나흘을 자고 가주는 다행스런 형제들의 고운 마음 남은 것 뿐입니다.
또 한명의 사랑하는 여인은 벌서 몇 년을 침대를 지고 사는 아내입니다.
온갖 유목민 나그네 같은 가난한 나에게 시집을 와서 마음고생 몸 고생을 불평없이 버티어주다가 덜컥 희귀난치병을 얻어 아내의 표현을 따르면 짐이 되어버린 사람입니다.
아내 역시 그 보따리 지고 이고 떠돌며 살던 젊은 시절과 시골 산밑 동네로 가서 지내는 외로운 생활을 잘도 버티며 아이들 곧고 바른 신앙의 양식으로 키운 하나만 남기고 빈 손인 세월만 남겼습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이 인연이 마음 아프게 얽혔습니다. 늘 딸처럼 어머니를 살피다가 병이 깊어지자 무리하게 공기 좋다는 시골로 불러 모시고 살기 시작했습니다. 어미가 없어진 조카 둘을 데리고 살다 화가 심해지신 분을 조카 둘 그대로 데리고 우리 식구 다섯까지 여덟명 살림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이것 저것 어머니와 서운한 것들이 쌓였습니다. 둘이 직접 부딪힌건은 없었지만 중간에 놓인 조카들이 발단이 되었습니다. 조카둘을 두고 가버린 며느리를 너무 너무 미워하던 어머니는 결국 그 아이들을 호되게 다루기 시작했고 우리는 아이들을 방목하다시피 들어주고 위해주고 했으니 교육방식이 자주 충돌했습니다. 결국은 그것이 직접적인 서로의 서운함으로 발전했습니다. 한달이면 쌀을 한가마니씩 먹어대는 살림을 몇 년째 하면서도 당뇨 인슐린 주사를 직접 놓아주고 몸에 좋은 식단만 끼니마다 따로 차려주던 아내도 답답한 마음을 견디기 힘들어질 때 쯤 병원으로 가셨습니다. 더 방치할 수 없는 상태로 건강이 악화되셨기 때문입니다. 그후로 아내는 끝에 서운하게 보내드린 어머니께 자기가 죄인이라며 여러번 용서를 구했고 어머니는 다 안다 하시면서 달래주셨습니다. 그러나 최근 두 사람은 모두 중환자 상태가 되어 얼굴도 보지 못하고 전화로만 서로를 격려했습니다.
“아무래도 나는 못 내려갈 것 같다. 갑자기 간병할 사람을 구하기도 어렵고, 돈만 많이 주면 사람이야 구할 수 있다 해도 집사람이 워낙 일반 환자 같지 못하고 거동이 완전 불가능한데다 자주 응급실 가는 상태가 일어나서 쉽게 맡으려 하지 않네. ”
동생은 예상했다는 듯 혼자 내려가서 또 연락을 하겠다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사실 사람을 구하는 문제나 상세히 설명을 하면 한 이삼일은 메워줄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제가 우려하는 것은 음식수발과 대소변 처리, 씻기고 보살펴주는 것만이 아니라 아내의 무겁고 불안한 심정상태입니다. 어머니와 관계된 모든 일에 늘 죄책감과 미안함으로 눈물부터 흘리는 사람이 나도 없는 상태에서 운명하신 소식이라도 들으면 아마 몸도 따라 탈이 날것을 짐작하게 됩니다. 아이들은 둘다 부대에서 근무 중이라 오지도 못하고...
아침에 받은 전화로 나도 아내도 벌써 홍역을 치르고 있습니다.
밥도 먹을 의욕이 없어지고 마음은 자꾸 무거워지고 나도 모르게 눕게 됩니다. 어디가 힘든 것도 아닌데 끙끙 앓는 소리가 저절로 나옵니다.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만 보고 있는 아내 또한 쉬운 상태는 아닌가 봅니다. 말이 없어지고 입가에 미소도 사라졌습니다.
이러다 다시 전화벨이 울리는 때면 영락없이 경기를 일으킬지도 모르겠습니다.
쉽지 않은 하루가 진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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