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가는 길/예수님과 함께 가는 길

에바다! 한 노숙자의 죽음앞에서...

희망으로 2011. 1. 21. 06:39

 

 

 19일 오전 5시께 서울 용산구 지하철 4호선 서울역사 12번 출구 통로에서 유모(60.노숙자)씨가 숨져 있는 것을 지하철 역무원이 발견해 119에 신고했다.
역무원은 경찰에서 "노숙자 풍의 60대로 보이는 남성이 이불을 덮은 채 숨져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유씨에게 타살 흔적이 없는 점 등으로 미뤄 추운 날씨에 노숙하다 동사한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인을 규명하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할 예정이다.


한편 CCTV에 찍힌 동영상을 확인한 결과, 노숙자가 누워 있는 통로 옆으로 수많은 시민들이 지나갔지만 아무도 이 노숙자에 대해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경찰에 신고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지하철 역사에서 한 노숙자가 얼어죽었습니다.

너무도 추웠던 어느 날

분명 그가 추위로 서서히 얼어 죽어갈 때에

누군가는 그를 스쳐지나갔을 것입니다.

그 사람이 무인도에서 고립된 것도 아니었고

깊은 산 속에서 조난당한 것도 아니었으니 말입니다.

 

어쩌면 그 사람은 죽어가면서

신음소리를 내었을지도 모릅니다.

또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웅크리고 또 웅크리며 애벌레처럼

몸을 말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 사람의 신음소리를 듣지 못하고

아무도 돌돌 말려가는 그 사람의 몸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아니면 그 사람이 투명인간처럼 누구에게도 안보였는지도...

그래서 당연히 아무도 그에게 한마디도 말을 안했는지도 모릅니다.

여기서 이러다간 죽을지도 모른다고 파출소든 어디든 가시라고!’

 

영적장애인들이 생활장애인을 돕지 못하여 죽어간 사건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스스로를 위로할 수도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노숙자를 우리가 다 재우고 먹여야 하는냐? 라든가

그들이 게으르고 일하지 않는 것이 더 문제라든가

혹은 그 사람이 술을 먹고 잠들었으니 죽었을거라든가...

그 모든 것이 원인도 맞고 맞는 말이긴 할지 몰라도

그렇다고 우리가 잘한 일이 될 수는 없습니다.

 

노숙자가 얼마나 많은가가 우리가 무엇을 하거나 못하거나의

출발점이 될 수도 없고 기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지,

얼마나 할 것인지 언제 할 것인지는 그 숫자와는 전혀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누구나 순식간에 닥치는 불행이나 무기력에 빠질 때

가진 여건이 얼마나 초라한 것이 되는지와

자기의 능력이나 의지라는 것이 얼마나 보잘 것 없어서

감당해내지 못하는가는 겪어본 사람이 아니면 모르기도 합니다.

어이가 없을 정도로 수렁으로 떨어지면 모든 보호벽이 맥을 못춥니다.

 

술을 마셨다는 그 하나가 하나님이 만드신 생명이 죽어도 살만큼

당연한 죄이거나 모른 체 해도 되는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외면한 사람들의 면죄부가 되어서도 안 됩니다.

그것은 그 사람이 고쳐야 할 문제지

우리가 그에게 징벌을 내릴 자격이 생기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은 사람들이 듣지 못하는 사람을 불쌍히 여깁니다.

또 보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깁니다.

그러나 신체의 장애보다 영적장애인이 얼마나 더 불쌍한지는

정작 당사자들은 전혀 모릅니다.

신체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내면으로라도

보고 듣고 말하며 웃음도 웃고 꿈도 꾸며 행복할 수 있지만

영적장애를 가지면 내면으로도 웃지 못합니다.

아름다운 색깔로 그림도 못 그리고 행복을 느끼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더 불쌍하고 더 불행한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은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보시고

하늘을 우러러 탄식을 하셨습니다.

얼마나 그 장애가 안타까웠으면 그랬을까요?

단지 신체장애일 뿐인데도 그러셨으니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구나!‘

하고 말씀하셨을 때는 더욱 안타까웠을 겁니다.

마침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에바다!’

열려라!’

 

그래서 그 사람은 듣고 말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말씀을 오늘 우리에게도 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열렸으면 좋겠습니다.

자존심 때문에 숨기는 사람들의 말 속에서도 신음을 듣게 하시고

말해야할 때 꼭 필요한 말 한마디를 주저하며 더듬지 않고

따뜻하게 할 수 있도록 해주시고

보이는 것들이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지 않도록 해주셔서

남의 고통도 허우적거리고 있는 수렁도 보이게 해달라고!

 

에바다! 열려라!’

 

오늘 나의 기도는 살기 위한 몸부림입니다.

나도 남도 다 살아나는 생명회복의 바램입니다.

 

<마가복음 734-35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여졌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