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들어 바다에 던질 수 있습니까?
중국에 산을 옮긴 우공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신념만 가지고도 오랜 세월에 걸쳐서 산을 옮겨 놓고 만
우공이산!
하물며 신념보다 높은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산을 들어 바다에 던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잘 안될 것입니다.
‘내가 산을 바다에 던지는 걸 잘 봐!’
이렇게 보여주려고 던지는 사람들은 잘 안됩니다.
‘이게 과연 던져질까?’
이렇게 고개를 갸우뚱 하며 설마! 하는 사람도 잘 안됩니다.
’그건 과학적이지 않아! 그냥 상징적인 비유지!‘
이렇게 의미로만 받아들이는 사람도 잘 안됩니다.
‘정말 필요하고 주님이 허락하시면 기도로 옮길 수 있다!’
욕심 내지 않고 믿는 사람만 옮길 수 있습니다.
본래 제사를 위한 제물들을 처음에는 각자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먼 길을 오는 동안 상하기도 하고 흠도 생겨
성전 안에서 바로 사서 제사를 드리도록 허용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본래의 뜻이 점차 변질되어 본의 아니게
제물을 정성껏 선별하고 준비하는 마음은 없어지고
편리함과 돈의 위력만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윤을 추구하는 욕심과 집단권력만 양양해졌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뒤집어 엎으셨습니다.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더럽히는 장사치는 나가라!’고,
그렇습니다.
본래 돈이 있는 곳에 마음이 갑니다.
그래서 돈이 주인이 됩니다.
마음이 있는 곳에 돈이 가면 마음이 주인이 되는데...
그래서 천천의 양과 만만의 염소가 소용없다!
가증한 것을 치우고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라!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하나님의 질타가 나왔습니다.
하늘아버지는 아무 고난도 없고
행함을 따르다 갈등과 핍박도 받지 않으며
그저 상채기 없이 살면서 드리는 예배를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잎사귀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와 같다고 했습니다.
고난과 시련이 닥쳐도 회피하지 않으며 의로운 길을 가고
몸과 마음이 고단해질지라도 말씀의 본질을 지키며 살고
함께 나누다 주머니가 가벼워지더라도 기꺼이 그 길을 가면서 드리는
참 제사를 기뻐하신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하신 하나님이
믿음으로 따른 아브라함에게 다른 제물을 준비했다고 하셨습니다.
그 일로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 제물로 예수님이 오셨고,
정말 더도 덜도 아닌 죄와 이기심 욕심 두려움과 게으럼
그 모든 불신의 화목제로 죽임당하여 제물로 돌아가셨습니다.
혈연의 족보는 예수님으로 끝이 나고
더 이상은 혈연의 족보가 아니라 믿음과 행함의 족보로
세상은 이어졌습니다.
산들을 들어 바다에 던질 수 있다!
믿음을 가지고 살라고 무화과나무를 가지고 말씀하십니다.
종교지도자들인 제사장과 유대인 바리새파 사람들이
그렇게 살지 않으시니까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좋은 곳 안전하고 편한 궁전 안에서 돈 있는 곳에
마음두며 사는 이들의 제사를 물리치고
빈 들판을 오르내리며 이 마을 저 마을을 돌아다니시며
병들고 냄새나고 차림도 형편없는 이들과 어울려 고단하신
예수님의 먼지 뒤집어 쓴 제사를 받으셨습니다.
제자에게 배신 당하고 군중들에게 버림받은
상처와 외로움으로 상채기 난 피묻은 예수님의 몸을 제물로 받으셨습니다.
그 길을 따라 살면 나보다 더한 일도 할수있다고
주님이 힘주어 말씀하셨습니다.
제발 이 길을 같이 가면서 믿고 살자고...
<마태복음 21장
2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22.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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