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투병일기

성경에서 본 환자 가족이나 성도가 가져야 할 믿음!

희망으로 2010. 12. 3. 06:44

성경에는 가족이나 주위의 사람들로 인하여

병이 낫거나 심지어는 죽음에서 다시 살아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만큼 중보기도나 지극한 사랑은 기적을 불러옵니다.

그 이야기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웃을 네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이유를 알게 하십니다.

많은 투병 중인 사람들이 가족이나 주위의 지극한 사랑으로

병에서 회복되는 기적 같은 사례를 보이기도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몇가지 이야기를 생각해봅니다.

 

하나는 백부장의 이야기입니다.

(누가복음 71-10)

1. 예수께서 듣고 있던 사람들에게 이 모든 말씀을 마치고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셨습니다.

2. 그곳에는 백부장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신임하는 종 하나가 병이 들어 거의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3. 백부장은 예수의 소문을 듣고 유대 장로들을 예수께 보내 자기 종을 낫게 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4. 장로들이 예수께 와서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이 사람은 선생님이 그렇게 해 주실 만한 사람입니다.

5. 그는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우리 회당도 지어 주었습니다.”

6. 예수께서는 그들과 함께 가셨습니다. 예수께서 그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르렀을 때 백부장은 친구들을 보내 예수께 이렇게 아뢰도록 했습니다. “주여, 더 수고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주를 제 집에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7. 그래서 제가 직접 주께 나아갈 엄두도 못 냈습니다. 그저 말씀만 하십시오. 그러면 제 하인이 나을 것입니다.

8. 저도 상관 아래 있으면서, 제 아래도 부하들이 있는 사람입니다. 제가 부하에게 가라하면 가고 오라하면 오며 하인에게 이것을 하라하면 합니다.”

9. 예수께서는 이 말을 듣고 백부장을 놀랍게 여겨 돌아서서 따라오던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스라엘에서도 이렇게 큰 믿음을 본 적이 없다.”

10. 백부장이 보냈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보니 그 종이 벌써 나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진작 병든 백부장의 종은 얼굴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가 무슨 병이 들었는지, 병든 종이 얼마나 낫기를 원하고 열심히 기도했는지,

믿음이 어땠는지는 전혀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백부장이 그렇게 슬프고 아픈 마음으로 간절히 병 고쳐주기를

애원하는 것을 통해 사랑을 받는 신실한 종이었을 것으로 짐작이 될 뿐입니다.

우리도 함께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간절한 기도가 필요함을 말해줍니다.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도 성경에서 배웁니다. 알면서 살지 않는 것은 계명을

어기는 것과 같습니다. 네 이웃을 네몸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을!

 

두 번째 이야기는 과부의 이야기입니다.

(누가복음 712-15)

11. 그 후에 예수께서는 곧 나인이라는 마을로 가셨습니다. 제자들과 많은 무리가 예수를 따라갔습니다.

12. 예수께서 성문 가까이에 이르셨을 때 사람들이 죽은 사람 한 명을 메고 나오고 있었습니다. 죽은 사람은 한 과부의 외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마을 사람들이 그 여인과 함께 상여를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13. 주께서 그 여인을 보고 불쌍히 여기며 말씀하셨습니다. “울지 마라.”

14. 그러고는 다가가 관을 만지셨습니다. 관을 메고 가던 사람들이 멈춰 서자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한다. 일어나거라!”

15. 그러자 죽은 사람이 일어나 앉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를 그의 어머니에게 돌려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길을 가다가 너무도 슬피 울며 상여를 따라가는 과부를 만났습니다.

그 당시 과부의 운명이란 재혼도 쉽지 않고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유일한 의지 였던 아들을 잃은 과부는 더욱 상심이 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과부의 아들을 본 적도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과부의 아들은 자신의 회복이나 구원을 직접 기도도 할 수 없는 사망의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지 과부의 깊은 슬픔과 울음을 보시고 안타까이 여겨 그 아들을 살리셨습니다. 어머니의 애통하는 마음은 죽은 아들도 살리는 기적을 부른 것입니다.

 

세 번째 이야기는 죽었다가 동료과부들의 간청으로 살아난 다비다의 이야기입니다.

(사도행전 939-41)

39. 그래서 베드로는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갔습니다. 그가 욥바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다락방으로 안내했습니다. 모든 과부들이 베드로를 둘러서서 울며 다비다가 살아 있을 때 만든 속옷과 겉옷을 보여 주었습니다.

40. 베드로는 사람들을 모두 방에서 내보낸 후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그러고는 시신을 향해 몸을 돌려 다비다여, 일어나거라.” 명령하자 다비다가 눈을 뜨고 베드로를 보며 일어나 앉았습니다.

41. 베드로는 손을 내밀어 그 여인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우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다비다가 살아난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다비다의 죽음을 슬프한 과부들은 베드로를 청하여 그의 살았을 적 이야기를 하면서

이구동성으로 울면서 간청을 했습니다. 밖으로 나가 기다리는 동안 동료과부들이 힘써 기도했을 것음 너무도 빤한 일입니다..

베드로는 무릎을 꿇고 기도함으로 죽었던 다비다를 살렸습니다.

주위의 동료들이 지극한 마음으로 원하고 행동하고 기도함으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어쩌면 다비다가 다시 살아난 것 못지 않은 흐뭇한 기적은 그들의 사랑하는 마음 그 자체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살아난 다비다는 언젠가 다시 죽었지만 그 일만큼은 오래도록 남아서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남겼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네 번째는 야이로의 딸이 다시 살아난 이야기입니다.

(마가복음 522- 40)

22. 회당장 중의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

23. 간곡히 구하여 이르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하거늘

24. 이에 그와 함께 가실새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더라

 

35. 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이르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36.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37.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 외에 아무도 따라옴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38. 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사 떠드는 것과 사람들이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

39. 들어가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40. 그들이 비웃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다 내보내신 후에 아이의 부모와 또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사

41.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

42.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가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43.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그들을 많이 경계하시고 이에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라

간곡히 구하는 야이로를 보시고 예수님은 그의 딸을 다시 살려 일으킵니다.

달리다굼! 아이가 다만 잔다. 일어나라! 하시고 아이에게 먹을 것을 주라 명하십니다.

간곡히 구한 야이로가 어떻게 예수님을 움직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정말 진심으로 청했을 것입니다. 공동번역 50절에는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50.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야이로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러면 딸이 살아나게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만약 야이로가 두려움을 떨치고 믿지 않았다면 과연 딸이 살아났을까요?

믿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남들이 비웃는 것도 개의치 않고 그의 집을 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아이의 청을 직접 들은 것도 눈으로 본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야이로의 간청과 믿음을 보고 그런 기적을 베푸신 것입니다.

 

다섯 번째는 가나안 여자의 믿음입니다.

(마태복음 1521-28)

21.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23.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2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25.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26.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27.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귀신들린 딸을 둔 가나안여자는 예수님께 병낫기를 구하다가 라는 소리까지 듣습니다.

어떻게보면 수치스럽고 청을 포기할 만큼 모욕적이기도 합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정서를 그대로 표현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딸을 위한 간절한 어미의 기도는 중단하지 않습니다.

개라도 좋으니 부스러기라도 주십시오! 하고 기도합니다.

이에 감동한 예수님은 그 귀신들린 딸을 고쳐주십니다.

정작 그 딸은 기도도 하지 못하고 무슨 믿음의 해위도 할 수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대신 간구하는 중보기도와 사랑의 힘은 늘 기적을 부르고 모두가 구원을 받습니다.

 

이상의 다섯가지의 이야기를 통해서 병든 사람이 비록 자신을 위한 처절한 기도나 간청을 할 수 없는 상황일지라도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의 기도로도 회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같은 교인, 같은 동료의 입장에서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봅니다.

해야만 하는 당위성도 보고 된다는 사례도 봅니다.

나는 자주 아내의 병이 회복되기를 기도합니다.

때로는 정작 당사자인 아내가 지쳐서 찬송과 감사의기도, 말씀에 매달리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 원망도 했습니다. 죽기 살기로 왜 안 매달리는냐고...

그러나 아내는 환자의 고통을 버티고 인내해 주는데만도 온 힘을 다 쓰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온전히 간청의 기도를 드리고 두려워 하지 않으면서 나을 것을 믿고 기다리는 것은 가족된 나의 할 일임을 말씀을 통해 배웁니다.

자주 지치고 그만두고 싶다가도 위의 말씀들을 생각하면 그만 둘수가 없습니다.

내 부족한 믿음과 모자라는 기도 때문에 다시 회복될 사랑하는 사람이 영영 못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 때문입니다.

환자를 둔 가족들에게 나누고 싶은 마음이 이것입니다.

조금만 더 기도하고! 조금만 더 믿으며 기다립시다!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