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투병일기

첫눈 오는 날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고 물으며...

희망으로 2010. 11. 29. 02:51

 

또 설사를 했다.
방금 전 기저귀를 갈고 욕창을 방지하느라 클렌징폼으로 세척을 하고
수분보호 크림을 잔뜩 바르고 다시 자리에 누운 지 20분이나 되었을까?
벌써 오늘  몇 번째 설사인지 셈도 놓쳐버렸다.
새어 나온 변으로 얼룩진 환자복을 조용히 빨아서 들고 와 시계를 보니
새벽 두 시가 다 되었다.
밖에는 첫 눈이 하얗게 내려 길을 덮었다.
첫 눈이 내린 날 기억할 추억으론 너무 속상하다.

지지난주 토요일부터 이던가?
10여일이 가깝도록 열이 오르고 복통으로 끙끙거리고 설사를 줄줄이 한지가...
항생제에 포도당에 아미노산 영양제에 다시 수액에,
주렁주렁 달고 넣은 주사만도 열 개가 훨씬 넘는데도
한 이틀 반짝하고선 내리 그치지 않는다.
항암주사와 면역억제 치료를 계속하는 중이라
면역기능이 바닥을 치도록 내려놓았기 때문에
사소한 잔병 하나도 곱게 안 넘어간다.

오늘은 감사헌금을 두 가지나 했다.
한 가지는 아픈 중에 아내가 꿈처럼 들었다는 ‘
보라, 내가 새날을 너에게 주노라!’ 하는
말씀을 받은 감사로!
또 한 가지는 15주, 석달 열흘의 훈련을 무사히 마치고
부사관으로 임관해서 제복을 입고 병원으로 온 둘째 아들이
가까운 이천으로 자대배치 되었다는 감사로!

그런데 정말 하나님은 계신걸까?
이렇게 장염 증상이 열흘이 가깝도록 떠나지 않아서
우리 두 사람을 녹초가 되게 하시고
감사 헌금을 내도록 하시다니 정말 이해 할 수 없는 계획이시다.

‘내가 졌다. 니들 맘대로 해라! 이 더럽고 나쁜 사탄 마귀놈들아!’
한숨이 절로 계속 나더니 속에서 분이 솟는다.
자꾸만 악이 받치고 욕이 계속 나온다.
정말 십년에 한 번도 안 써보던 쌍스런 단어들도 튀어나오며,
그러다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다.
참지 못하고 화를 쏟아내는 중에 나도 모르게 한편 뒤쪽으로
하나님을 원망하는 말이 동시에 계속 나오고 있다. 생생하게 말로도...
‘하나님이 어디 있어! 있다면 이렇게 할 수 없지, 정말 사기당하는 건지 몰라.
있다면 정말 이상한 분이다.
죽이던지 살리던지 빨리 하시지 이게 뭐야? 투덜투덜...‘

아내가 한 두 마디를 들었나보다.
풀이 죽은 목소리로 ‘그냥 탈이 난거지 뭔 심한 소리를 그렇게 해...’ 그런다.
미안하다. 나도 모르게 주루룩 나온 말들이 아내를 민망하게 했나보다.
안 그래도 나갈 힘도 없어서 방에서 계속 냄새를 피우며 처리를 하는 중에
곤혹해하고 있는 아내를 나까지 벼랑으로 밀어부친 꼴이 되었다.
그러나 정말 속 상한다.
바깥으로 나가는 말은 닫아야지 벌 받겠다고 다짐을 하면서도
자꾸만 속삭이는 생각들이 나를 가만 두지 않는다.

이렇게 끝없이 돌아가며 애간장을 태우고 목을 조일거면 차라리 한 번에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는 것과
내가 이러다 미쳐서 심하게 원망하고 하나님이 싫어! 하고
고함이라도 지를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몰려와서...
나나 아내가 죽을 때까지 조여들려고 마귀들이 작정한걸까?
하나님은 우리를 내어 주신걸까?
이제까지 간신히 버티고 말씀이 믿어져서 그 힘으로 감사하며 왔는데
서서히 지쳐가니 의심이 자꾸 뿌리를 내린다.
이대로 가면 마귀가 이기게 생겼다.
그런데 이제 나는 더 방어할 무기도 체력도 없다.
말씀도 듣고 새벽마다 기도도 했고 영생도 한 점 흔들리지 않고 믿는데,
심지어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버렸다! 생각할지라도 천국은 변함없다고!
단지 내가 못갈 뿐이지 변함없이 그곳에 있다고 믿는다.

좀 기운이 났으면 좋겠다.
전에 지금보다 훨씬 안 좋은 상태일때도 이렇지 않았는데,
사경을 넘나들때도 믿고 맡기고 감사했는데,
이 가랑비 같은 사소한 일에 이렇게 뻗어버릴 것 같다니??
기도도 시작이 안되고 찬양도 목을 넘어 오지 못하고 있다.
누가 좀 대신 기도해주면 좋겠다.
누가 나 대신 하나님께 이 불손한 절망을 용서를 구해주었으면 좋겠다.
성령님은 쉬지 않고 중간에서 나를 위해 기도하고
내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준다고 하셨는데 아마 주무시나보다.
안 그럼 이렇게 까지 패배감이 나를 덮을 리가 없다.

세상은 여전히 눈도 깜박 않고 돌아 가고 있다.
나와 아내가 미어지고 힘들어 헉헉거려도 상관없이 히히덕 웃고
맛난 음식들을 먹고 즐거운 구경들을 하러 오간다.
같은 병원, 한 방의 사람들조차 그러는데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
창밖으로 소리 없이 내리는 첫눈을 보며
이 새벽 두시를 오래도록 나는 또 기억하게 될 것 같다.
몸부림을 치고 잉잉거리며 이 순간들을 간신히 넘긴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