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3년째 병실에서 맞이하는 명절,
올해도 2월 달에 다녀오고 7개월째,
그때도 2년을 엄마 아빠 없이 혼자 떼우고 졸업하는
막내 딸 졸업식마저 혼자 보내게 할 수 없다는,
죽기 살기 식 병원 밖으로! 탈출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때도 다녀오자마자 드러눕고 3일을 앓다가
결국 구급차에 실려 다시 국립암센터 응급실로 직행!
피검사 MRI촬영검사 판독이 9번째 재발...
그 비싼 250만원짜리 항암제까지 맞고 일주일 입원!
그 뒤로 다시는 집으로 다녀올 생각 안했다.
그런데 이번 추석에 또 슬슬 고민이 되었다.
아이도 벌써 두 달째 못 오고,
운동 치료를 계속 받아서 그때보다는 나아진 것 같고,
결정적인 건 너무 긴 추석 휴가였다.
병원자체도 길게 쉬지만 차량도 분산되어 편하리라 싶어서...
결과는?
집 나가면(병원이 집 된지 오래다보니) 개고생!
갈 때 5시간 20분이 넘도록 도로에서 고생했다.
허리 다리 아파 뒤트는 아내를 어찌할 도리 없이
괜찮냐 참아라! 만 반복하면서...
집사람도 연신 ‘미안해!’를 연발한다.
안 된다는 나를 고집부리며 설득해서 출발했기 때문에,
그렇게 죽지 않을 만큼 고생해서 도착하여
방으로 들어 간 나는 말을 잃어버렸다.
세상에... 마음도 아프고 속도 상하고,
컨테이너를 개조해서 만든 딸아이 방안은 그야말로
곰팡이들의 보금자리!
이불은 모서리마다 새까맣게 곰팡이가 피어서 진동하고
이불장 옷장마다 입던 옷을 넣어서 하얗게 얼룩이 피고...
세면장으로 만든 작은 공간과 복도엔 수북히 쌓인 빨래감 그릇들...
이런 환경에서 병도 안나고 잘 버텨주었구나 싶어
나눔이를 몇 번이나 끌어안고 고맙다! 고맙다! 해주었다.
외할머니도 계시지만 워낙 연로하시고 고혈압으로 아프셔서
원망도 탓도 할 수가 없었다.
하려면 정작 아이가 제 손으로 해야 하는데
아침 6시30분에 일어나 7시 첫 버스 타고 나가서
밤 9시 막차 타고 들어오는 생활에 쉬운 일도 아니리라.
그나마 둘째 아들 기쁨이가 있을 때는 좀 나았는데
군대를 가버리고 혼자 남아 지낸 두 달여가 문제였다.
이미 닥친 일, 열을 내거나 통곡한다고 될 일도 아니고
결국은 녹초가 되어 도착한 나에게 내려진 야간 잔업 지시서!
몽땅 걷어내어 100리터 쓰레기봉투 4개에 다 담았다.
이불 몇 겹, 빨아도 불가능해진 옷들 무더기를!
다 버리고 쓸고 닦고 정리하고 나니 꼬박 늦은 밤.
다음 날 쉬지 않는 롯데마트를 가서 이불 요를 사다가
새로 싹 깔았다.
그리고도 너무 냄새가 심해
꼬박 이틀을 보일러를 돌리고 페브리즈 뿌리고,
석유 걱정을 하는 어른들을 생각해 한 드럼 20만원어치
기름까지 채워 드렸다.
선풍기 틀고 문 다 열어놓고...
그 와중에 혼자 지내기 적적하다고
어떤 먼 친척분이 갖다 준 고양이는 오르내리고 기어다니고...
그 고양이 버리라는 말에 딸아이는 눈물 짖고!
마음 약해진 내가 또 자세히 보니 매력 있는 놈이네! 해서
풀어주고...
이번에 확인한 거지만 보통 건강한 사람이 사는 집이
장애인, 그것도 1급 장애인에게는 지내기가 얼마나 힘든지
구석구석 실감했다.
화장실 문제는 기본이고, 들어서는 진입로도 언덕에 울퉁불퉁,
현관, 방마다 턱 때문에 낭패고 침대도 등받이가 세워지지 않아서
그냥 누워만 있거나 너무 답답하면 등에다 이불 배게를 끼워서
앉아야만 하니...
밥 먹을 때마다 쟁반에 담아서 가져오고,
잠잘 때는 부축하고 가서 침대에 눕혀야 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춤을 추듯 앞에서 안다시피 부축하고 걷는 집사람을
옆에서 보던 딸,
‘어! 엄마가 걸어요!’ 감탄사를 한다.
하긴 예전에 드러누워 손가락 발가락도 꿈틀거리지 못하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내 대신 간병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그럴 만 하다.
겨울 방학동안 기도원에 와서 한 달을 엄마 수발을 들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에 비하면 지렁이가 용 된 정도니!
그렇게 또 하루가 가고 오늘은 올라오려고 준비했다.
아침밥을 먹고 약 먹이고 양치질에 옷 갈아입히고...
아침 11시!
풀어 놓았던 짐을 다 챙기고 차에 다 옮겨 실었다.
아직은 따가운 가을 햇살을 온 몸으로 맞으며!
이제 아내만 휠체어에 태우고 차에 올리면 출발이었다.
그런데 좋은 일에는 어김없이 왔던 예전처럼 궂은 일이 왔다.
갑자기 쿵! 하는 소리가 문 밖 10여미터가 되는데 까지 들린다.
‘이게 무슨 소리지?’ 생각하는데
나눔이 외할아버지가 총총걸음으로 방으로 뛰신다.
순간 스치는 불안감...
‘왜 그래?’
뛰어 들어간 방에는 믿고 싶지 않은 모습이 보였다.
얼굴을 방바닥에 거꾸로 쳐박고 신음하고 있는 집 사람...
기겁을 한 나는 얼른 아내를 품에 안고
머리 다리, 팔을 차례로 살폈다.
어디 터지고 부러진 곳은 없는지 확인을 하느라고...
일단 뇌진탕이 걱정되어 계속 말을 시켰는데
좀 멍하기는 해도 대답은 한다. 다행이다.
다음으로 뒤틀리며 다리나 팔이 부러지지 않았는지 하나씩 만져보았다.
그것도 다행히 이상이 없었다.
다음으로 만진 허리가 고장이 나버린걸 알았다.
들 수도 없고, 세우지도 만지기도 힘든 통증이 왔다.
이만하기가 다행이라고 놀란 가슴 달래며 물 먹이고,
괜찮다, 괜찮다! 하는데 아내가 주루룩 울기 시작한다.
‘이게 뭐야, 바보 같이...’ 그러며,
나를 돕겠다고 혼자 낑낑 매며 겉옷도 입고 양치질도 하고
그렇게 앉아 있던 아내가 침대에 걸터앉아 움직이다 처박힌 것이다.
시내 응급실로 가서 사진 찍고 검사도 하자는데 한사코 반대다.
조금만 있어보고 못 참을 만하면 말하겠단다.
결국은 파스 바르고 찜질하고 그렇게 5시간을 누워서 더 보냈다.
오후 4시40분,
더 있다가 밤중에 아프면 고생하겠다 싶어 무리해서 출발했다.
있던 병원에 와서 검사도하고 심하면 주변 종합병원을 가기로하고,
이제 병원에 돌아와 간호사실에 사실을 이야기하고
내일 아침에 엑스레이 찍고 치료하기로 했다.
밤중에는 아프면 진통제 주사를 맞기로 하고!
이렇게 이번 추석은 또 하나의 기억을 남기고 넘어간다.
딸아이 나눔이는 떠나오기 전 또 울먹였다.
‘이게뭐야, 나 때문에 지난번 졸업 때도 아팠고,
이번에도 나보러 왔다가 다치고 올라가고...‘ 이러면서...
너 때문이 아니고 실수나 사고 같은 거라고,
누구나 있을 수 있는 일이고 누구 잘못이 아닌데
그렇게 자책하고 불행하게 생각하면 일생을 살기 힘들다고
말해주며 달랬지만 한참을 더 울었다.
‘엄마가 걷는다!’ 좋아하고 기뻐하던 아이가 하루 만에 울 줄은,
우리네 산다는 게 늘 그런 연속에 있는 줄은,
아무리 겪고 다짐해도 익숙해지지도 무뎌지지도 않는 게
참으로 힘든 하루였습니다.
그래도 올라오면서 차안에서 이런 이야기를 주고 받았습니다.
‘여보, 예전에는 집에를 다녀온다는 건 꿈도 못 꾸고,
설사 가겠다고 해도 병원이 허락도 안 해주었는데
이제는 가야하나 안 가야하나를 선택사항으로 고민한다는 게
정말 많이 진전되었네! 이게 얼마나 행복이야!‘ 하면서...
정말 고맙습니다! 하나님!
심하지 않은 것도 감사하고,
이렇게 다녀올 생각을 할 만큼 회복되어 가는 것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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